100세 시대와 성경 통독 (35회)

(2118.12.25)

 

 

큰활자 개역개정판으로 바꿈. (2018/12/3)

 

구약을 읽기 위한 구약성경 연대기표

2018년 3회, 전체 35회 통독. (2018/12/25)
해가 가기 전 한 번 더 읽으려고 좀 무리했습니다.

눈이 많이 나빠져서
성경을 개역개정 큰 활자 성경으로 바꾸었습니다. (2018/12/3)

평가를 해 봅니다.

시력이 상당히 나빠졌고,
기억력도 매우 나빠졌습니다.
앞으로 기억력의 질은 더 나빠질 것입니다.
이해도는 자신의 경험과 비교해 이해하게 되니 좋은 편이었습니다.
이해도는 앞으로 어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
아모스 8:11절이 성경의 문맥과 상관없이 떠오릅니다.
[아모스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 나에게 이런 날이 오고 있구나
성경을 읽어도 바로 전에 읽은 내용이 기억이 나질 않으니…
“성경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지금의 내 상황과 무엇이 다른가?
생각합니다

나의 경우,
나이 들어 기억력 나쁜 상태에서 10번 읽는 것은
기억력 좋았을 때 한번 읽은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억력 좋고 체력 좋은 젊었을 때 많이 읽어 둘 것을…
하고 후회도 해 봅니다 만
그게 바로 어리석은 저라는 것도 인정해야 겠지요.

그래서, 또 생각합니다.
앞으로 내가 얼마를 더 살게 될지 모르나,
(
100세 시대라는 데 왜 나는 이렇게 생각 할까요?
pessimist 일까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는 것일까요?
)
어찌 되었든
앞으로의 내 삶에 있어서 바로 오늘이
내 생애의 최상의 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력도, 기억력도, 건강도, 판단력도…)

“열 번 읽어야 한번과 비슷하다면 지금 열 번 읽어야 하겠다”
속으로 다짐합니다.
물론 그렇게 다짐했다 해서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겠지요.
내년 (2019년) 말에 한번 또 살펴보면 알게 되겠지요.

통계는 통계이니 내가 더 일찍 세상을 떠날지
100세 이상 건강히 살지 그 건 모릅니다.

시간이 있고,
책상 앞에 앉을 수 있고
눈으로 읽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지금
그냥 읽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순종, 실천 잘하고 그리고
제 인격과 직결되는 것은 물론 아닐 겁니다.
순종, 실천을 않으면 위선자라는 부끄러운 이름을 얻겠지요.

저를 가까이에서 보고 잘 아는 사람은
제가 실천보다는 생각과 말이 앞서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으면 뭐하나?”
“순종, 실천 못하는 위선자인 걸…” 하는 생각 들 때 많습니다.

순종, 실천을 못해 위선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성경 읽기를 꺼려하지 아니하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꼭 연관 시켜야할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과 저것을 연관 짓는 것은
성경 말씀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속삭임이라 생각합니다.

혹, 그런 말을 들어도
꿀 먹은 벙어리 같이 잠잠히
그냥 읽으려고 생각합니다.

아내에게 고맙습니다.
아내가 집안일을 하니 제가 성경 읽을 시간이 있습니다.
물론 취미 생활 할 시간도 있구요.

모두들 희망을 말 하는 이 시기에 무거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타협주곡 ”안달루시아”가 스피커에서 들려옵니다.

(
유감스러운 것은, 개역개정판 성경을 읽다 보니
번역이 부실한 곳이 많이 보입니다.

한 가지 만 예를 들면, 베드로전서 5:3. 같은 구절은
반드시 새로 번역해야 할 구절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대로 있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主掌)하는 자세(藉勢)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기서 …
주장(主掌) 책임(責任)지고 맡아서 함 (掌:손바닥 장)
잘 쓰지 않는 어려운 한문 단어 / 제 손에 쥐고 맘대로 한다는 뜻
이것을
주장(主張) 자기(自己) 의견(意見)을 굳이 내세움 (張:베풀 장)
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한자를 쓰지 않는 지금 혼동하기 쉬운 거의 쓰지 않는 단어라고 보면 됩니다.

자세(藉勢): 어떤 권력이나 세력 또는 특수한 조건을 믿고 세도를 부림
어려운 한문 단어인데 그대로 두었습니다. 거의 쓰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구요.
모두 자세(姿勢)라고 오해할 겁니다.
자세(姿勢): (1) 몸을 움직이거나 가누는 모양. (2) 사물을 대할 때 가지는 마음가짐.

결국은 속된 말로 “양 무리에게 ‘갑질’하지 말라”가 되는데 그냥 두었군요.
어째서 그냥 두었을까요?

더 잘 다듬어진 더 나은 번역판을 기다려야할 듯합니다.
만드신 분들이 수고를 하셨는데도 말입니다.
그래도 영어 성경 읽는 것 보다 훨씬 쉽고 정서적으로 이해가 빠르니
이걸로 열심히 읽어야 하겠지요.

부실한 번역을 발견하는 것은
나의 이해도가 높아져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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