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0:26의 이해에 대한 생각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성경 문맥의 흐름을 무시하고
나름대로의 선입관, 편견으로 이해하고 해석을 하면
성경과 어긋난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히브리서 10:26은 아마도 난해 구절에 속할 것이다.
히브리서 6:4-6과도 관계있어 보인다.
[히브리서 6:4-6]
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브리서 10:26-29]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신 주님께서 어떻게 이런 말씀을?
[마태복음 18:22]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
사람에게는 이렇게 하라고 교훈 하시고 다른 성경에는 그와는 다르게 용서 받을 수 없다고?
모순이 아닌가?
하나님은 절대권자이시니 그래도 할 말이 없어야한다는 것인가?
성령을 훼방하면 영영 용서 받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이것인가?
[마태복음 12:31,32]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온갖 생각을 다하게 된다.
정말 그런가?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사람들 …?
그런 사람들 참 많이 보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서 뻔뻔하게 죄 가운데 사는…
지도자이건 그냥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건 간에 말이다.
그런데 이 성경 구절은 그런 뻔뻔한 사람을 경고하기에 꼭 좋은 말씀이다.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
“믿는다면서 죄를 밥 먹듯 지으면 지옥행이다”이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런데 이것은 요한복음 10:28,29 에 하신
주님의 선언과 정면 대치되는 것이 아닌가?
[요한복음 10:28,29]
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그래서 히브리서를 다시 읽어본다.
성경의 문맥을 살펴보는 처음 단계이다.
먼저 히브리서의 개요(내 말이 아니다)
(
본서신은 개종한 유대인 성도들을 위해 구약의 율법과 각종 제사 제도들이
신약의 그리스도에게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는 변증적 성격을 띤 서신이다.
그래서 본 서신만큼 구약성경 구절이나 구약의 제사 제도가 많이 언급된 성경도 드물다.
이런 측면에서 본서신은 ‘신약의 레위기’,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 변증서’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저자는 본서신을 통해 구약의 율법, 구약의 제사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예표이며,
그리스도야말로 하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히브리서 [HEBREWS]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
히브리서는 읽는 대상이 구약의 제사 제도에 매우 익숙한 히브리인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이다.
속죄의 제사제도가 몸에 배지 않은 이방인 그리스도인과는 생각이 아주 다르다는 말이다.
1-6장 까지는 예수님이 속죄의 제사를 담당하시는 대제사장임을 선언한다.
[히브리서 6:4-6]
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문제의 구절이 등장한다.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니”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음”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아마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속죄제의 대제사장이 되어
속죄의 제사를 드리셔서 구원 얻게 하셨는데
그것을 알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사를 거부하면
속죄가 불가능한 가 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간다.
이방인 이라면 속죄 제사 전혀 감이 없으니
“예수 믿고 구원 받은후 성령의 은사(?) 방언도 해보고
타락하여 예수 믿는 것을 거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방인으러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원래의 수신인인 속죄 제사 제도에 익숙할 대로 익숙한
히브리인 교인이라면 곧 이 말씀을
“예수그리스도의 속죄 제사인 십자가의 구원을 들어 보고도 거부한 것”
이라고 이해할 것이다.
계속해서 읽어본다. 7,8,9장
계속 주장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속죄제사의 대 제사장이라는 말씀이다.
[히브리서 9:12-14]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염소 송아지의 피가 아닌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자기의 피로 속죄의 제사를 드려서 구원을 받게 하셨다고 선언하고 있다.
히브리인 그리스도인이면 이 구절이 가슴에 절절히 와 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