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맥의 흐름을 떠나 선입관, 편견으로 이해, 해석 하면
성경 원뜻에서 벗어난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 중 하나가 마태복음 7:21 -23 이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것은
마태복음 7:15-23 에 거짓 선지자를 경계하는 주님의 말씀 중 나오는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양의 탈을 쓴 늑대를 경계하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 펴서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거짓 선지자, 양의 탈을 쓴 늑대) 마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짓으로 말씀을 왜곡해 선포하고 기적도 행하는
거짓 선지자를 질타하신 말씀인데…
엉뚱하게 교회에서 회중들에게
적용하여 소리치면 양의 틸을 쓴 늑대라는 말이다.
이런 예를 가정해 보자.(실제로 이런 일 있었다는데)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다“리고
요구절만 딱 떼어 내서 교인들에게 외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여기 있는 이 중에 천국 갈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사람만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을 말 안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그러면 성경 주의해서 안 읽은 교인들은 속으로 찔끔 한다.
자기가 읽어 보아도 성경에 그 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성경을 제 생각에 맞추어 말하고
(성경을 제대로 읽을 리가 없다)
듣는 교인도 제대로 안 읽었다.
자기의 원하는 생각대로 말하고
자기의 잘못된 선입관대로 듣는 것.
이런 사람 불러서 (강사료 줘 가며) 기분 나쁜 거짓말 들을 수 있다.
탈 쓴 늑대인 저 자신에게 해당되는 성경 구절을 교인들에게 들이 댄다.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라고 하신다고.
정말 기막힌 일이다.
[마태복음 7:15-23]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바로 앞의 7:15절부터 계속되는 이야기이니
7:15-20 을 읽어보면 주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노략질하는 이리다“ 라고 하셨는데
그 노략질하는 이리가 말하기를
주님께서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연결되는 문맥인
7:15-20 은 완전히 무시하고 7:21-23 절만 딱 떼어내서
“여기 있는 이중에 천국 갈 수 있는 사람은 딱 두 사람만 있다”
라고 한다면 이상하지 않나?
그리고 7:22 의 …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 행을치 아니하였나이까”
이런 말들은 스스로 주의 종(?)이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
믿음이 어린 성도가 하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조금만 생각하면 성경 잘 몰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7:21-23 만 딱 떼어서 이런 설교를 한다면
“나는 양의 탈을 쓴 이리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모른다는 말이고
이렇게 기분이 찜찜한 구절을 가지고 어떻게 남에게 설교할까?
말하는 자신도 성경 주의해서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누워서 침 뱉기인데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른다는 뜻.
(이 글 쓴 나는 욕 많이 먹게 생겼다)
이것이 성경의 문맥을 무시한 가짜 해석이며 거짓된 이해이다.
속지 마십시오.
이것과 비슷한 (엉터리)설교 참 많다.
(
Youtube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를 찾으면 많이 나옵니다.
재미 삼아 한번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런 말 믿지 마십시오.
)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할 설교인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반성하고 돌이켜야 할 내용을
청중(교인)에게 들이대며 주님께서 모르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 말 듣지 마십시오.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이해하면 이렇게 된다.
(
말이란 앞과 뒤를 다 연결해서 이해해야 되는 것이다.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 아닌가?
)
멀리도 아니고 몇 구절 앞만 읽어보고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성경을 열심히, 잘 읽어야 한다)
성경 문맥의 흐름을 무시하고
선입관, 편견에 의하여 이해, 해석을 하면 위험하다.
(
비슷한 내용이라도
누가복음 13:24-27을 인용하여 말하면 문제가 별로 없다.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설교의 내용도 많이 달라져야한다.
누가복음 13:24-27은 극적인 효과가 떨어지는지
마태복음 7:21 보다는 덜 인용 하는 것 같다.
[누가복음 13:24-27]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이 사람들은 베드로전서 5:1-4 가지고는 설교 안할 것이다.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이 글을 읽고 나면 마태복음 7:21-23 으로도 설교 안하겠지만
덧붙일 말이 있다.
마태복음 7:21-22로 위와 유사한 내용의 설교를 하는 분이
모두 “양의 탈을 쓴 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너무나 불쌍하다.
하나님께서 너무 가슴 아프실 것이다.
그러나 탈 쓴 늑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는 자기 직업의 기본이 되는 성경을 부주의 하게
잘 못 이해하고 있다는 비난은 면할 수 없다.
자질 미달 이라는 말이다.
속된 말로 피나게 훈련, 연습하는 프로 운동선수나 아이돌 가수보다도
기본자세와 자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내 어머님께서 초등학교도 못나온 무학이지만
항상 어머님이 애틋하고 어머님을 존경한다.
우리 자녀들을 낳으시고 사랑하시고 위하여 희생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자질이 좀 떨어져도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를
마음으로 부터 헌신적으로 사랑하느냐 아니면
“양털과 고기를 얻으려는 생각만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