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중에서)
요세푸스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과 순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아마도 이것은 당시 유대인 랍비들의 생각 혹은 믿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가히 충격적인 감동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 전문을 다음에 옮겨 적는다.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1 권 13 장
“아브라함의 적자 이삭“
1.
아브라함은 이삭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노년에 낳은 독자이기 때문에 그를 몹시 사랑했다.
이삭은 또한 모든 덕을 갖춘데다가 부모에 대한 효심이 극진했고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부모의 사랑을 받았다.
아브라함은 또한 그가 죽더라도 든든한 아들을 두었다는 점에서 행복했다.
아브라함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의해 얻은 것이었다.
하나님이 자기를 향한 아브라함의 종교적 성향을 시험해보기 원하셔서 그에게 나타나
그가 받은 모든 축복을 열거하면서 하나님이 그를 적들보다 훨씬 뛰어나게 하셨으며
현재 그의 최대 행복인 아들 이삭까지도 주었으니
그 아들을 제물과 거룩한 공물로 바치라고 요구 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끌고 모리아(Moriah)산까지 가서 단을 쌓고
그를 단 위에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다.
만일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의 생명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더 우선으로 여긴다면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종교적 성향이 밝히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2.
살아있는 모든 생물이 하나님의 섭리와 자비로 삶을 향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어떠한 삶의 환경에서도
그를 섬겨야한다고 아브라함은 생각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명령과 아들을 드리려는 자신의 의도를
아내와 그 밖의 모든 하인들에게 비밀로 했다.
그리하지 않았다면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두 종을 데리고 제사에 필요한 것을
나귀 등에 지우고 모리아 산을 향해 떠났다.
이틀까지는 두 종이 아브라함과 동행했으나 제 삼일에 모리아 산이 보이자
두 종을 평지에 남겨두고 아들 만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후에 다윗 왕이 성전을 건축 한 곳이 바로 이 산이었다.
그들은 제물로 드릴 동물만을 제외하고는 제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올라갔다.
그때 이삭의 나이 25 세였다.
이삭은 단을 쌓으면서 제물로 드릴 동물이 없으니
무엇을 제물로 드릴 것인가라고 아버지에게 물어 보았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없는 자들을 위해 넘치게 준비 하실 수도 있고
이미 갖고 있는 자들에게서 빼앗을 수도 있는 분이므로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그가 손수 제물을 예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제사에 임재하시고 열납하시기를 기뻐하신다면
그가 친히 제물을 준비하실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3.
아브라함은 단을 쌓고 나무를 올려놓은 후 모든 것이 빠짐없이 준비되자 아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아들 아 나는 너를 얻기 위해 수 없는 기도를 하였다.
네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너를 양육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네가 어른으로 성 장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한 행복은 없었다.
따라서 나는 내가 죽은 후 나의 통치권을 네게 넘기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네 아비가 된 것도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기에
이제 내가 너를 포기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 이니
하나님께 너를 바치는 것을 아량으로 받아주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나의 신앙을 시험해보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나는 나의 후원자 요, 보호자인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로 인해 너를 하나님께 맡기려고 한다.
내 아들 아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세상을 떠나지 말고
네 아비보다 먼저 희생 제물로 만민의 아버지 이신 하나님께 가도록해라.
나는 하나님이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병이나 전쟁이나
다른 어떤 무서운 방법으로 죽음을 맞지 않게 하시고
너를 이 땅에서 부르셔서 기도와 종교의 거룩한 예식 가운데서
네 영혼을 영접 하시고 자기 곁에 두시고
나의 노년에 너를 나의 후원자와 보호자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까닭으로 나는 너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너 대신에 하나님이 나의 위로자가 되실 것이다.?“
4.
이삭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처럼 관대 한 자였기에 아버지의 이 말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만일 제가 하나님과 아버지의 결정을 거부하고
두 분의 기쁘신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태어날 가치조차도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아버지께서 혼자 그렇게 결정 하셨다하더라도
순종하지 않는 것은 도리가 아니겠지요”
라고 말했다.
이삭은 제물이 되 기 위해 즉시 단으로 올라갔다.
만일 하나님께서 막으시지 않았다면 이삭은 제물로 바처졌을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고 아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막으셨다.
그리고 말씀 하셨다.
“내가 너의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 한 것은 인간의 피를 탐냈기 때문이 아니었다.
또 한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빼앗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네가 그런 명령을 순종하는지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이제 내가 너의 민첩성에 만족했고 너의 놀랄만한 믿음을 본 이상 너에게 큰 축복을 기꺼이 베풀 것이다.
너는 부족한 것이 없을 것이며 다른 자녀들도 보게 될 것이며
네 아들은 크게 장수 할 것이고 행복을 누릴 것이며
그의 자녀들에게 큰 나라를 남겨 줄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식구가 번창하여 열국을 이룰 것이며 족장들은 영원한 이름을 남길 것이고
가나안 땅을 소유할 것이며 만인의 부러움을 사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 하셨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 하시고 조금 전까지도 보이지 않던 수양을 제물로 주셨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의외로 함께 살게 된데다가 그런 큰 축복의 약속을 얻은 데
감격하여 서로를 힘차게 껴안았다 그들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사라에게로 되돌아 왔고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소원을 들어 주셨기에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
(창세기 22:11-12)을 요세푸스가 설명한 내용이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4)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매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성경은 꼭 필요한 최소한도의 것만 기록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이해의 정도에 따라 (믿음의 정도와 성향에 따라) 이해한다.
요세푸스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 하나님 자녀,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서술한 내용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요세푸스의 기술은 이 사건에 대한 히브리서의 해석과도 일치한다.
요세푸스가 히브리서를 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히브리서 11:17-19)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또한 나를 포함한 우리의 믿음이
그 개념에 있어서까지도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및 바리새인이라고 비난하는
다른 랍비들에게도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산다고 하면서…
요세푸스의 기록은
현대를 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무 하시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광신적이다“,
“이삭은 어떻게 순순히 제물이 되었을까?”
하는 등등의 의문에 합리적인 답변을 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 하나님이 절대 주권의 소유자이시며 절대 선이시라는 믿음 –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순종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절대 선(善)이시라는 믿음과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자 이신 순종해야 할 분이시라는 것을.
그러한 믿음이 없는 가운데서도 복종은 할 수 있으나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은 불가능 할 것이다.
또, 그러한 믿음과 복종을 사람이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침범하는 죄악이라는 것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사람이 사이비 교주이며 사이비 광신도가 되는 것이다.
물론 요세푸스의 그 외의 다른 견해도 모두 옳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안 읽는 내가 어쩌다 한권 읽어 가면서 뭔 말을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