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나무의 길 (그대가 바라는 영원?)

다 아는 이야기다. 그래도…

(창세기 3:4-6)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세기 3:22,23)

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창세기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

처음: 아담의 실낙원과 함께 사라진 생명나무가 (창세기 3:24)
마지막: 예수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등장한다. (요한계시록 22:1,2)

(요한계시록 22:1,2)
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하나님을 떠난 (영원한)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이기에
생명나무는 인간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없는) 인생은 고해(苦海:고통의 바다)라는 말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Physically)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그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때
생명나무는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리라.

나는 내게 묻는다.

“그대가 바라는 영원”은 무엇인가?

(1)
복음서의 부자 청년 (마가 10:17-22, 마태 19:16-30, 누가 18:18-30)

(마가복음 10:17-22)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 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그 부자 청년은…
젊었다
부자였다
관원이었다 (권력이 있었다는 뜻)
겸손했다 (거지나 다름없는 모습의 청년 예수께 달려와 무릎을 꿇을 정도였다)
아마 아름다운 아내도 있었을 것이다.
주위에서 칭찬과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여기부터 내 생각. 성경에는 이렇게 써 있지 않다)
그에게 아쉬운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건“영생”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달려와 겸손히 무릎을 꿇고 물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가진 것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니

이 부자 청년은
(부, 권력, 아름다운 아내)에 덧 붙여서 (영생)을 기대 했는데
(이 좋은 것들을 영원히 누리려면 영생이 꼭 필요했다)
(영생)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고 다른 모든 것을 순위에서 제거하라는 주님의 말을 듣고

자기가 누리고 있는 부, 권력, 아름다운 아내 등을 돌아보고
눈앞에 있는 거지나 다름없는 청년 예수와 그 제자들을 보고
이 둘을 마음속으로 빨리 저울질해 보고
아쉽지만 앞의 것들을 택하고
(
영생은 포기했다.
이 좋은 것들을 누리지 못한다면
영생이 뭐가 좋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슬픈 표정으로 예수님을 떠나갔다.
그리고 영영 사라졌다.

내게 묻는다. “그대가 바라는 영원”은 무엇인가?

(2)
중국 진나라의 초대 황제 진시황은
세상의 모든 권력, 부유함, 삼천궁녀
모든 것을 누리고 살았다
그에게도
아쉬운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영생”이었다.
그래서
동남동녀를 세상 곳곳에 보내어서
불로초를 구하게 했다.
물론 실패하고 죽었다.

내게 묻는다. “그대가 바라는 영원”은 무엇인가?

고통 중에서 욥은 하나님께 죽기를 갈구했다.
고통 중에 사는 것은 죽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삶이 고통의 연속일 것이라고 믿으면 오래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은
언젠가는 편하게 행복하게 살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 희망.
확실하게 고통만 있다면 누가 오래 살기를 바라겠는가?

(
그리고 나만 오래 오래 살고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은 내 곁에서 차례대로 죽어 간다면
사랑하던 아내가 떠나가는 것 같이,
반려견이 죽어서 내 곁을 떠나가는 것같이,
영화 “하이랜더”, “별에서 온 그대”가 그렇던데…
그건 축복인가 저주인가?
좋은 사람이 다 같이 오래 살아야 축복인 것이다.
하나님 없는 영생은 축복이, 영생이 아니다.
)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만족이 없다 곧 허무해진다.
유명인들, 큰 부자들이 마약을 하는 이유가 아마 그럴 것이다.
들은 말로는 미국의 부자들 비밀 파티에는 코케인이 나온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유명 연예인들의 마약파티 뉴스가 종종 나오고…
솔로몬의 가능한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린 결론은
“헛되다”, “허무하다”라는 것이었다.

하긴…
허무를 느껴도 좋으니
솔로몬 비슷하게 온갖 부귀영화를 누려보고 싶은 것이
어리석은 내(우리) 마음 아닌가?

“경험 해 봐야 나쁜 줄 알지.
나는 한번 해보면 않되?”
나만 꼭 이렇게 지지리 살아야 해?
목사는(난 목사 아니다) 부자로 살면 않되?
내가 일구어 낸(?) 교회재산(?), 왜 아들에게 물려주면 않되? (내 이야기 아니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 그러니까 한번 눈감아 주시면 안되세요?”
라고 기도하겠지.

아마 하나님께서는

“너 꿈속에서 많이 해봤지 않느냐?
그걸로 부족하냐?
꿈을 깨면 에이 꿈이로구나 하고 웃어넘기기나 하지
그런 일이 현실에 생기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더욱 허전해지고 싶으냐?
더욱 미칠 것만 같은 깊은 절망을 경험하고 싶으냐?
이게 꿈이면 제발 깨게 해달라고 부르짖고 싶으냐?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받고도 영혼이 파리해 지고 싶으냐?“
라고 답변하지 않으실까?

(시편 106:15)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선언한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내게 묻는다. “그대가 바라는 영생”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 없이 영원히 사는 것인가?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
(믿음으로, 마음에 모시고 삶으로 아는 것)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함정이 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믿어서) 내게 계시니…
거기다 “부자청년의 부요함이 더 있으면 않되?“라는
생각이 파고드는 함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미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는 계실 자리가 없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이 의심 받게 하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저 자는 하나님 일꾼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하면서 탐욕으로 교활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구원을 취소하셨을 거야, 취소해야 마땅해” 이런 말을 듣는 것이다.
직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영원한 구원의 취소는 잘못된 개념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어리석은 생각은 유혹의 주위를 한없이 반복하여 빙빙 돌고 있다.
성경은 그것을 교묘하게 꾀로 하나님을 거역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편 106:43) 개역개정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깨어 있어야 한다.

주님 저를 이런 마음의 죄에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언제든지 유혹에 넘어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라고 가르쳐주신 대로 지켜 주시옵소서.
)

내게 묻는다. “그대가 바라는 영생”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세상사람(나를 포함)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실 때,
하나님께서 그 죄에서 얼굴을 돌리셨을 때
따라서 예수님으로부터 얼굴을 돌리셨을 때
하나님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다.
(마태복음 27:4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는 한 순간일 지라도 하나님과 끊어지는 고통이 그 어느 고통보다 컸기 때문이리라.

하나님 없는 영생은 영생이 아니다.
하나님 독생자이신 예수님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아셔서 외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집에서 기르는 개는 주인만 있으면 행복하다.
늙어서 힘이 없어도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든다. 반갑다고, 행복하다고.
그런데 나는(우리는) 뭔가?
하나님은 기본이고 그 외에 무엇이 더 있어야만 행복하다고 졸라댄다.
나의 믿음이 개만도 못한 적이 꽤 많다는 말이다.

그, 주님 말고도 더 있었으면 좋다고 달라고 졸라대는 것들
(주님, 주세요, 주세요, 주세요 … 하는 것들)
주님께서 생명나무로 가지고 오신다.
주님이 계시면 다 있는 것이다.
여기에 또 믿음이 필요하다.

어차피 주님 안 계신 이 세상에는 생명나무는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나무는 예수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나타나
그 풍성한 열매와 함께 나에게 다가 올 것이다.

(요한계시록 22:1,2)
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아멘, 주여 오시옵소서”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슬픔도 없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승리만 있네
고통은 모두다 사라져 버리고 영광만 가득하겠네
우리의 주님과 나 함께 있을때 영원한 기쁨 넘치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기쁨 넘치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찬송 넘치네
세상의 근심은 사라져 버리고 영광만 가득하겠네
우리의 주님과 나 함께 있들때 영원한 기쁨 넘치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즐거움 있네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사랑 넘치네
인간의 욕심은 사라져 버리고 영광만 가득하겠네
우리의 주님과 나 함께 있을때 영원한 기쁨 넘치네

요한계시록을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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