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인가 억지인가?

Obedience or Manipulation?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에게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주장했다.

왕과 동족들이 바벨론 군의 잔인한 살육을 당하는 것만이라도 피하게 하려고.

유다는 이미 기울어진 망하기 직전의 나라.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은 2차에 걸쳐서 두 왕 여호야김, 여호야긴과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잡아갔다.
지금의 시드기야왕은 유다의 마지막 왕.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세운 허수아비 왕이다.
(역대하 36:5-21, 열왕기하 24:1-25:26 참조)

(역대하 36:5-7,10)
5. 여호야김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년을 치리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6.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올라와서 치고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7. 느브갓네살이 또 여호와의 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가 바벨론에 있는 자기 신당에 두었더라
10. 세초에 느브갓네살이 보내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여호와의 전의 귀한 기구도 함께 가져가고 그 아자비 시드기야를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을 삼았더라

그런데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에 항복을 하지 않고 대항한다.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의존한 것이다.
국제 정세의 오판이었다.

그렇게 하는 데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도 기여했다.
그들과 많은 국민의 눈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매국노였다.
레미야의 적중한 예언들이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 인 것을 증명할 뿐이다.

시드기야 9년 10월에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하여
1년 반 지난 11년 4월 9일에 예루살렘이 함락된다.
1년 반 동안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예루살렘을 공성한 피에 굶주린, 분노한 바벨론 군대.
유다 백성들은 처참하게 살육, 유린을 당한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시드기야 왕.
그는 먼저 포로 되어 끌려간 유대인들에게 당할 수치가 싫어서 체면 때문에, 항복하지 않았다.
결국은 두 눈을 뽑히고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는다.
두 눈을 뽑히기 전 그가 마지막 본 것은 그의 아들들이 목 잘려 죽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예레미야 애가에 기록 되어있다.

(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강하게 외친 예레미야는 민족주의적 견해로 보면 매국노이다.
그러나 동족의 비참한 운명을 확실히 알아서 그런 것이니 그는 동족을 사랑하는 애국자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애국자이다.
요즈음의 한일 간 민족 감정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나는 정치 잘 모른다]
)

(예레미야 39:1-2)
1. 유다 왕 시드기야의 구년 시월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2. 시드기야의 제 십일년 사월 구일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베벨론왕 느브갓네살은 유대인을 잡아가고
그다랴를 사람을 유대 총독으로 세운다.
그런데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유대 총독으로 세운 그다랴를 죽인다.

(예레미야 41:2-3)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한 모든 유다인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그다랴를 죽인 이스마엘은 형세가 불리해 지니 암몬으로 도망한다.

남은 유대인들은 바벨론 군대를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가려고 마음을 정한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 군대의 잔인함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 달라고 요청한다.

(예레미야 42: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나님의 뜻이 그들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 순종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애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야” 라고 결정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이후 결코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이미 여러 번 경고하셨고
이번에도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애굽으로 가지 말고 유대 땅에 남아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예레미야 42:10-14)
10. 너희가 이 땅에 여전히 거하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
12.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여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13.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복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거하지 아니하리라 하며
14. 또 말하기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식물의 핍절도 당치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결단코 들어가 거하리라 하면 잘못 되리라

그러자 그들은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사람 (바룩)의 충동질이라고 반박한다.
그리고 애굽으로 다 같이 떠난다.
원치 않는 사람도 잡아가지고 강제로 갔다.

그들의 인간적 판단으로는 앞으로의 결과는 분명했다.
바벨론 왕의 총독(그다랴)을 살해했으니.
바벨론 왕의 군대가 돌아 와서 남은 유대인들을 학살할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그다랴를 직접 죽이지 않았어도 바벨론 왕으로서는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바벨론 군대가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명백히 다가오는 학살을 피해서 바벨론에서 멀리 떨어진 전쟁이 없는 애굽으로 피해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이었다.
모두들 애굽으로 피난 갈 것을 당연하게 마음속에 결정했다.

그런데 그러고도 못 미더워서, 확인을 하려고
그동안 백발백중 맞는 예언을 했던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봐 달라고 한다.
마음속으로 “이번에야 말로”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애굽으로 가지 말고 유대 땅에 남으라고 하는 것이다.
바벨론의 잔인한 군대가 분노하여 돌아 올 것이 분명한데 그 칼에 죽으라고?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도 믿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라고 강하게 반박한다.

(예레미야 43;2-3)
2.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및 모든 교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애굽에 거하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3.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꼬드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인의 손에 붙여
죽이며 바벨론으로 잡아가게 하려 함이니라 하고

그러려면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지나 말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읽지나 말지)

그런데…
이것이 나를 포함한 우리가 명백한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 최면에 의해 거역하는 과정이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은 먼저 결정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이미 마음속에 자기가 어찌할 것을 미리 정해 놓고
하나님께 내가 불순종 하지 않도록 내 뜻대로 해 주시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불순종하지 않게 이것 눈감아 주세요. 허락해주세요”
“아니면, 저 부득이 불순종하고 말 겁니다”
“아니면, 저 말이지요, 죽어 버리고 말겠어요”
“죄, 그거 딱 이번 한번만 짓겠어요”
라고
하나님께 협박, 뗑깡을 쓰는 것이다.
물론 대 놓고 뻔뻔하게 주장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
상담 할 때 Counseler는 자기 의견을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잘 듣고 있으라는 말이 있다.
상담을 요청한 사람이 마음속에 이미 결론을 갖고 있으며
자기의 소신을 굳히고 싶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로 그렇다.
)

이것이 우리(나)의 자기 합리화와 자기 최면의 과정이다.
나 자신이 이런 때가 많아서 너무나 가슴이 답답하고 민망하다.
이런 것을 교묘하게 거역한다고 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낯 뜨겁고 부끄러운 우리(나)의 실존이다.

(시편 106:43)
[개역개정] 여호와께서 여러 번 그들을 건지시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개역한글] 여호와께서 여러번 저희를 건지시나 저희가 꾀로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인하여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자기 최면 과정]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주시면 참 좋겠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주실지 몰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
하나님께서, 어렇게 해 주실 거야.
이것은, 하나님의 뜻임이 틀림없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야.

자기가 믿고 있는 말씀만이라도 진실하게 순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조차 거부하고 자기를 속이는 것이 인간의 죄악 된 슬픈 자화상이다.
“나는 그렇다 치고 너나 잘해라”하는 것이 인간의 일그러진 위선적인 모습이다.
“None of your business”라는 말도 하지 않는가?

나를 포함하여 인간은 간교하다.
자기가 자기를 속인다.
나의 잘못을 남의 책임으로 돌린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라는 기도는 언제나 필요하다.

(마태복음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괴롭다.
내가 바로 그런 인간인 까닭이다.

나만 그럴까?

(
사족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많은 사람,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조작 변질 왜곡시키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리고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며 가르친다.
그 말의 진실여부는 그 주장으로 혜택(예를 들면, 돈)을 누가 받는지 보면 안다.

지도자 된 사람은 이래저래 참 어렵다.
영광보다 책임이 더 크다.
그런데 지도자 되려는 사람은 영광과 권리만 보는 것 같다.
질책과 책임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하나님 앞에서만 책임을 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주의 “종님“이라 하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은 매우 싫어하고 대접(영광)을 받기 원한다.
물론 대놓고 말은 하지 않는다.
“사람, 너희들은 아무 말 말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 사회, 기독교계 다 마찬가지다.
고난의 길만 있다면 누가 지도자가 되고 싶을까?
진정으로 사람,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
그 길을 가신 분은 오직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시다.

반면에 교회에서 섬김은 없이 이것저것 요구만하는 자(교인?)도 참 많다.
이래저래 종교의 모습을 가장한 추한 세속적인 모습이다.
사족 끝
)

(잠언 20:6)
많은 사람은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해야 하는 명령이지
내가 교묘하게 조작 변질 시키는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 말씀에 대하여
(나는)
순종인가 억지인가? (Obedience or Manipulation?)

그런데, 이런 시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왜,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셨을까?
다음 기회에…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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