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누구가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오늘 아침 누구가

먼저 일어나
기쁜 찬송 부르나
알아봅시다.

참새들은 짹짹짹
비둘기는 구구구
바둑이는 멍멍멍
모두모두 불러요


오늘 아침 누구가

먼저 일어나
예배당에 나왔나
알아봅시다.

장미꽃은 빨갛게
백합화는 하얗게
채송화는 예쁘게
모두모두 피어요

내가 여름성경학교
유치부 교사 때, 어린이 찬송가다.
참나-
남자가 여름 성경학교에서 유치부 교사를 했다.

요사이 이 어린이 찬송가를 통 들어 볼 수가 없다.
아쉽다.
할아버지 되서 직접 부르기도 그렇고.

– 나는 이 사진 중 누구? (1970년) –

시편 19편을 보면…
하나님의 지으신 우주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노래했다.

하나님의 지으신 생물도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하나님을 참 다양하시고 창의적이시다.

이 찬송가처럼…
참새도,
비둘기도,
바둑이도,

장미꽃도,
백합화도,
채송화도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말씀과 같이…

참새가 찬송한다면 “짹짹짹” 할 것이다.
“멍멍멍”하고 찬송하는 강아지가 참새 보고
“그게 뭐냐?“하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참새가 할 수 있는 찬송은 “짹짹짹“ 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 그것이니까.

우상숭배를 할 때 북치고 피리 불고 제사지냈으니
그리스도인은 찬송할 때 북치고 피리불고 하지 말자 할 것인가?
KISS Group, Rock Music에서 Elec Guitar, Drum 치고 난리니
찬송할 때는 Elec Guitar, Drum 쓰지 말자고 할 것인가?

그렇게 하면 찬송이 마음으로부터 잘 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그렇게 찬송을 하는 것을 받아 주는 것이 좋다.
나는 원칙적으로 불만이 없다.
내가 늙은이 구세대라서 불편 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
나는 성격상 요란스레 하는 찬송이 거북하다
그러나 결코 그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게 찬송하는 분들의 흥을 깰 의사가 전혀 없다.
비슷하게 요란스럽게 찬송할 것이다.
)

몇 년 전에
아프리카 탄자니아 현지 교회를 다녀왔다.
그 분들 예배 분위기 매우 역동적이다.
내 기준으로는 난리도 아니다.
모두 다 몸을 흥겹게 크게 흔들며 춤을 추며 찬송한다.
그들은 그렇게 해야 하나님께 찬송이 잘 되는 것이다.
참 좋았다.

바둑이는 참새의 찬송을 흉보지 않는다.
나도 탄자니아 교인들의 예배와 찬송을 흉보지 않는다.
나와는 스타일이 다른 남을 인정하는 것 중요하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 앞에서 찬송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아름답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마음을 다해, 큰 소리로, 온 몸으로
찬송하는 것, 아름답다.

어디 찬송뿐이랴.
우리의 생활 방식도
예배 방식도
주님을 섬겨 사는 방식도
모두 다 조금씩 다를 수 있을 것이다.

(
그게 정 싫으면
바둑이는 바둑이 끼리
참새는 참새 끼리
찬송하면 된다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 할 것이 아니다.
)

잘못 된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다 (Not wrong but different)

(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정확하게)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관대하게)
모든 일에는 사랑으로
-아우구스티누스-

나는
성경이 반복해서 여러 번 말하면 본질적인 것,
아니면 비본질적인 것이라 정의 한다.
비본질적인 것으로 다투는 것은 의미가 없다.
)

개인적으로는…
모여서 함께 하는 찬송은 크게
누군가 함께 있을 때 개인 기도는
작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
남에게 덜 방해 되게…
하긴 몰아 지경에서 크게 외치며 기도하는 걸 뭐라 하겠는가?
내가 이해해야지
)
그 반대는 좀 별로라고 생각.
(남이 있을 땐 크게, 혼자 있을 때는 하는 듯 마는 듯)

(
베토벤은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에서 미친 듯이 그것을 표현했다
여성 소프라노가 높이 올라가다 중간에 숨이 끊어지듯 잠시 멈추는 부분이 있다.
(제 느낌 입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

다윗 왕은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알몸을 들어내며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잠시라도 그렇게 살면 얼마나 멋있을까?
인간적인 체면과 가식 …
모두 벗어던지고…
그런 것 뒤집어쓰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
하나님은 벌거벗은 추한 내 모습을 다 아신다.
그런데도 나를 기쁘게 받아 주신다.
감사하고 감격스럽지 않은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그 의 영광과, 그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참새, 바둑이, 어린이, 다윗 왕과 같은 태도로
탄자니아의 교우들과 같은 태도로
숨이 넘어가듯이 기뻐하며 춤을 추고
찬송을 한 듯 그게 어떨 것인가?
바둑이는 주인 앞에서 미친 듯이 뛰논다.
나만의 생각일까?

(사무엘하 6:14-16, 20-21)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16)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가로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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