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1)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2)
카라바조의 이 두 그림에서
다윗은 어렸을 때의 자신의 얼굴이고
골리앗의 목은 자기의 나이든 얼굴의 자화상의 얼굴이라고 한다.
그의 자화상을 보면 얼굴이 같다.
골리앗의 목을 들고 있는 다윗의 표정이
하나는 눈의 초점이 없고 다른 하나는 참 슬프다.
전혀 승리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얼굴이다.
왜 그럴까?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 Judith Beheading Holofernes)
이것도 카라바조의 그림이다.
그런데 목이 잘리는 홀로페르네스의 얼굴 역시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이다.
(
유디트는 성경의 외경(Apocrypha) 중 유딧서(Book of Judith)에 등장하는 인물로,
전쟁에서 패배할 위기에 놓인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앗시리아 군의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고 그의 목을 벤 여성이다.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를 술에 취하게 한 뒤, 그의 칼로 목을 베었다.
)
카라바조의 자화상.
왜 카라바조는 자신의 작품에서 자기의 목을 잘랐을까?
그는 자신을 왜 그렇게 정신적으로 학대했을까?
그 사연이 카라바조의 그림에 알레고리로 들어있지만
그는 사연을 말하지 않았다.
그의 일생을 보면서 후세의 사람들은 알레고리를 짐작한다.
나도 그의 그림의 알레고리의 해석을 시도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그의 일생에 대해서 알 수가 있고.
그의 그림의 알레고리를 유추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의 알레고리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다만, 알레고리는 우리의 생활 주변 여러 곳에 산재해 있고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즐겨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이솝 우화“는 대 표적인 알레고리 이야기 모음이고
사람마다 그 우화를 자기의 경험과 입장 이해한 정도로 풀이 한다.
이솝이 그 우화의 본질을 쓰지 않았기에 우화의 해석은 모두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재미있다고 해서,
그럴 듯하다고 해서,
성경의 내용을 알레고리로 자기의 주장에 맞도록 뒤집고 뒤집어 해석하는 것은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혹은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위험한 억지 주장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 주입 시키는 것은 더욱 더 나쁘다.
(
그런데
내 글에도 성경의 내용을
알레고리 해석을 해서 쓴 것이 있는데
다음 기회에 언급을 하고 싶다.
)
견강부회 (牽强附會)
전혀 가당치도 않은 말이나 주장을 억지로 끌어다 대어 자기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
牽: 끌 견, 强: 굳셀 강, 附: 붙을 부, 會: 모을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