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구절은 내가 예수님을 믿을 때(1970.3.14) 처음으로 암송한 구절이다.
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시고 믿도록 권고해 주신 분이
“너는 예수님을 믿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이 성경 구절을 암송하라“
하셔서 암송한 구절이다.
요즘은 잘 안 부르는 모양인데
이 고린도후서 5:17에 관한 찬송가도 있다.
물론 가사는 구시대 사람인 내가 부르던 가사와는 좀 바뀌었다.
(물론 나는 옛날 가사가 더 절절하고 직설적이고 더 좋다)
(내 죄 사함 받고서)
(1)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를 씻었네
(2)
주님 밝은 빛 되사 어둠 헤치고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내가 주 앞에 온전케 됨은 주의 공로를 의지함일세
(3)
내게 성령 임하고 그 크신 사랑 나의 맘에 가득 채우며
모든 공포 내게서 물리치시니 내 맘 항상 주안에 있도다
(후렴)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이 찬송가를 부를 때 무엇인가 석연치 않고 답답함을 느꼈다. 왤까?
후렴의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가사에서
“그 피로 구속 받았네“ 라는 부분은 백번“아멘” 하고 인정한다.
그런데 앞부분의
“나의 모든 것 변하고”라는 가사는 부를 때마다 마음에 걸렸다.
고린도후서 5:17 에도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는 내용이 있지 않은가?
그 때 나는 …
내 자신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어제와 같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이다.
생각이 유치한 것도 그대로이고.
뭔 불편한 일이 생기면 마음속에 화가 치밀고,
나의 이전 모습, 그 인간이 그대로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전혀 변함이 없는 나였다.
뭐가 새것, 새사람이 되었다는 말인가?
물론, 성경에 그렇다고 써있으니까,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아멘,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을 말씀을 의지하여 할 수 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변화 인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뭔가 석연치 않은 감정과 현실적인 논리의 괴리는 뭐란 말인가?
나만 그렇게 경험하고 다른 사람은 싹 바뀌었나?
가끔 책을 읽거나 다른 분의 간증을 들어 보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주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던데…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가짜인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온 50년 동안 그런 극적인 변화는 내게는 없다.
여전히 이지적, 논리적, 과학적, 회의적 사고방식… 변화 별로 없다.
(소위 “아멘” 파가 결코 아니다)
나에게 뭐가 잘못인가?
누가 나를 보고 “당신 그러면 예수님 제대로 믿은 것 아니야” 라고 할지도 모른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서는 가식적으로 행동할 지라도
적어도 자신에게는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마저 속이고 산다면 그런 사람의 삶과 두뇌 구조는 뭐란 말인가?
고린도후서 5:17과 찬송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나의 모든 것 변했다”라고 했는데
내가 보는 나 자신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만 그런가?
예수 믿고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고민해야할 문제가 아닌가?
내가 예수님을 믿은 것이 거짓인 것인가? 무언가 부족한 것이 더 있는가?
성경에 기록한 믿음에 관한 선언이 잘 못인가?
성경의 가르침과 나의 현실에 대한 나의 이해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진지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따로 자동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문제 아닌가?
생각해 보면, 나는 예수님을 믿을 때
(요한복음 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성경 이 구절의 내용을 의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했다.
나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만 했다.
나의 믿음은 “성경이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에서 출발하여
다음은 이성적이 논리의 전개를 한 것이다.
(
그래서야 어떻게 믿음을 가질 것인가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니 성경을 읽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이 나의 두뇌가 활동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
성경을 읽으며, 공부하며 그 답을 찾아야만 했다.
(고린도후서 5:17) 의 “새로운 피조물(a new creature)” 이라는 말.
새로운 피조물(a new creature) 이게 뭘까?
나는 옛날 그대로 그 사람인데 성경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피조물(a creature)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책상, 가방, 자동차 … 모두 피조물이 아니고 사람이 만든 것이다.
개, 소, 말, 장미꽃 … 피조물(a Creature)라고 한다.
이상하게 산, 바위, 강…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피조물(a Creature)이라 않는다.
“소”가 죽으면 “죽은 소”라고 하지 “소”라고 하지 않는다.
피조물(a creature)의 필수 요소는 생명인 것이다.
생명이 있어야 피조물이다.
그러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새로운 생명”이 있어야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요한일서 5:11,12)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5:11,12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생명(영생)을 넣어서 나에게 보내셨으니
예수님이 내게 계시면 생명(영생)이 있는 것이라는 말씀이 된다.
육신으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생명은 옛 생명이며
(한 번 태어난 것)
예수님 믿어 얻은 영생은 새 생명 이라는 뜻이 된다.
(또 한 번 태어난 것, 거듭난 것)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이 주제인 찬송가가 있다.
내가 3년을 교회에 다니며 종종 불렀던 찬송가.
나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고 무심히 불렀던 찬송이다.
예수께서 내게 들어오시기 원하셔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걸 모르고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
예수님을 모시면 에수님의 가지신 모든 것을 예수님과 공유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영생을 예수님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며
(영생=새 생명)이 예수님과 함께 내것이라는 뜻이 된다.
(요한복음 1:11,12)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그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모셔드리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선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자극한 결정적인 성경 구절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님의 아들(자녀)이 되는 방법(Rule)이라는 선언.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호적에 기록된다는 뜻.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제, 고린도후서 5:17이 이해가 된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 자격에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허락주시는 생명 = 영생 = 새 생명)을 얻은 것이며,
새로운 피조물(a New Creation) 이라고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선언 하셨다는 것.
하나님께서는 옛 생명,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옛 생명의 나를 보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어 영생, 새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나를 보시고
그 새 생명(영생)을 주님과 함께 소유하고 있는 나를 새로운 피조물, a New Creature라고 보시는구나.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성경 공부에 의한 논리적인 결론이다.
육신의 몸과 이성적 논리로 뭉친 나는 그것을 느낄 수(sense)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 는 선택의 문제이다.
나는 성경의 선언에 의지하여 이런 것을 믿음으로 내게 이루어진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나는 과거와 별 차이가 없어도
영원한 생명, 영생, 새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나를
성경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생각과 삶의 태도는 50년간 꾸준히 변화되어 왔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나는 이 찬송은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부를 수가 있다.
(
나 자신을 나의 관점에서 들여다 보면
역시 나는 형편없는 부끄러운 존재이다.
나를 성경에서 말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 내가 나를 보는 것이 믿음이다.
예수님 믿으세오.
)
(고광민 화백의 그림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