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때 감동이 없었어도 (1) 영접하는 자

 

 

 

 

 

 

 

믿을 때 감동이 없었어도 (1) / Though, saved with No touch in my heart

(1) 영접하는 자

[요한복음 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 구세주로 모시기 전 3년간 교회 다녔다.
주일 예배 마다 주기도문을 따라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 좋은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로 시작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계신 것은 인정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그것만도 나는 기특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라는 것은 몰랐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나님이 내게 어떤 개인적 관계가 있어야 하는 분인지 생각조차 없었다.
남들이 다 하니까 그냥 따라 했다.

3년 후, 대학에 입학해서 어느 고마운 분을 만났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 말하시고 (롬3:23) (몇 가지 내용이 더 있었다)
내게 예수님을 말해 주며 마지막으로 이 구절
요한복음 1:12-13을 읽으라고 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영접=믿음” 이라는 말씀 이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는 데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당연히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눈과 마음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 즉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또 마음에 들어 왔다.

그날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했다.
성경대로 영접 한 것이니 성경대로 살기로 했다.
지금 나는 그것이 “성령의 역사”로 믿는다. (이 표현에 거부감 드는 분 없으시기를…)

믿을 때에 특별한 감동 없었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시인 했지만
애끓는 죄의 통회함 없었다.
(
이게 자랑스러워 쓰는 것은 아니다
뻔뻔하게도 그때, 나는 별로 죄가 없다 생각 하며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낯 뜨거운 생각인가?
)
하여간 나는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인정했다.

지금 와 깨달으니 …
갓난아이가 부모 고마운 줄 어찌 알겠는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기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구원 받았을 때도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아버지 하나님은 정말로 기뻐하셨다고 믿는다.

오히려 내가 하나님을 믿어 드렸다고 버릇없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은 없지만)

어린 애는 응가 한 것도 엄마에게
잘 한 것이라고 자랑 할 지도 모른다.
나는 손녀 손자가 응가만 건강하게 해도
애가 튼튼한 증거여서 참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냄새도 좋았다.
이렇게 말했다.
“아무개는 x 냄새도 이리 구수하냐?”.
그런 것을 내 아이를 기를 때는 몰랐다.
자녀 사랑도 나이 먹어야 자라는 것일까?

[누가복음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요한 1:12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라는 말씀 외에 다른 무엇이 없다.
(요한 5:24, 로마서 10:9-10 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시는 것이 핵심이고 다른 것은 있어도 없어도 된다.

예수님을 아직 모르는 분.
성경에 쓴 대로 그냥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마음속에 모시기” 바랍니다.

그냥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분.
자신의 구원에 대해 의심 없기 바랍니다.

여러 해를 지난 후
나는 …
성경을 읽다,
찬송을 부르다,
기도를 하다,
길 가며 하나님을 생각하다,
읽고 외운 성경 말씀의 내용을 생각(묵상) 하다

내가 지은 죄 종종 생각나고,
죄 된 내 모습 부끄럽고,
주님이 고맙고,
감격하기도 하고,
가끔 눈물도 흘리고,
몰래 울기도 한다.
아주 가끔
펄쩍펄쩍 뛰며 몸을 흔들며 찬송하고 싶어
그렇게도 한다 (맛이 갔나?)

그동안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성이 성장한 것이리라.

사족이지만 어거스틴 참회록에서 그는 갓난 아이 때 어머니 젖꼭지 문 것도 회개 했다던데
그것은 성자 수준으로 영성이 성장한 후의 이야기 일 것이다.
탕아였을 때 그랬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언제까지 갓난아이로 있으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그러시리라.

깨달음 좋고 경건해서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 아니다.
먼저 (뭔지도 몰라도) 예수님 믿고
믿음이 자라 점점 경건한 사람이 되기를 힘쓰고
또 주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다.

순서를 바꾸는 것은 우리들 생각에 들어와 있는
구원에 혼돈을 주려는 사탄의 간교한 술수라 생각한다.
속지 말아야 한다.

부모와 함께 오래 살고 커지고서도 부모님을 이해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면 뭔가 비정상이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믿음이 자라면 감사와 감격도 자란다.
주님을 생각하면
주님 앞에서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구원의 복음에 무엇인가 덧대는 것을 반대한다.
(비록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러다가 내가 죄의 통회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으로 오해 받을까 두렵다. (그렇지는 않다)

물론 내가 표준은 아니다.
아프리카에 가 보니 모두 다 펄펄 뛰며 찬송하던데
민족, 개인에 따른 성향도 관계있는 듯.
모두 다 나 같으면 되겠는가?
하나님은 참 다양하시고 창의적인 하나님이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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