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때 감동이 없었어도 (3) 쓰린 추억 – 심각한 죄의 회개
“심각한 죄의 통회”에 대하여 나는 쓰라린 추억이 있다.
어떤 친구(?)를 만났는데, 나에게 “예수님을 영접 했나” 물어서 “Yes”했더니,
이리 저리 꼬치꼬치 묻다가
”눈물을 흘리며 심각하게 죄를 회개 했냐“하며
그렇지 않으면 구원 받지 않은 것이니
제 말대로 회개하고 예수님 영접하라는 것이었다.
(아주 심각하고 집요하게)
그리고 그때 좀 더 나이 많은 한사람이 더 합세해서
내게 다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분명하게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 모셔드렸다.
그런데, 어떻게 주님 앞에서 처음 한 약속을 무시하고
그들의 말대로 다시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겠는가?
지금 같으면 “그래 너희를 위해서 그까짓 것 한 번 더 해주지“ 하거나 ”
그냥 내게서 떠나라 하겠지만“ 당시 마음 약한 나는 너무 억울해서 엉엉 울었다.
(나는 지금도 마음이 약하다)
그 후유증 회복에 아까운 시간이 흘렀다. (1-2개월)
덕분에 정말 그런가 알아보려고 성경 공부 좀 했다.
이런 기억 때문에 나는 구원에 있어서
“심각한 죄의 회개” 강요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여러 해 후 그 친구는 중한 죄를 짓고 떠나갔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데 나와 주님과의 사이를 “심각한 회개“라는 용어/행위를 넣어서
(성경도 강조 하지 않는).
”너는 주님과 무관하니“ 내 말 대로 다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독선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가 전도에 열심 있어서 그랬다 할 수도 있고,
종교적 야심이 있어서 그랬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믿음의 싹이 살아 있나” 확인하기 위해 뿌리를 뽑아서 확인하는 행위다.
싹튼 믿음을 죽이는 악한 행위다.
마귀의 행위이며
“소자를 실족케 하는 중죄”이다 (마태 18:6)
그렇게 하지 말라.
어떻게 해서 싹튼 귀한 믿음의 싹인데.
시들어 가면 뽑아보지 말고 물주고 보살펴야 한다.
그렇지만 믿음이 자라면서 점점 죄에 민감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심각하게 통회 자복하고 죄를 버리는 것은 참 좋다.
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 민족, 내 교회, 내 가족의 죄도 내 죄로 고백하고…
(부끄럽게도 거기 까지 못 갔다)
깨끗한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러워지면 씻는다.
지금 더럽고 또 더러울 것이 예상되는 사람은 씻지 않는다.
죄의 회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1) 내가 할 수 없는 죄인이고
(2)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졌으며
(3) 예수께서 나의 죄를 위해 대신 죽고 부활 하셨다.
(4) 그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구원)
따라서 “나는 예수님을 내 구세주로 믿는다“
이것으로 된다고 믿는다.
그 이상의 무엇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된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데
전에 지은 죄가 떠올라서 그것을 해결 않고는
도저히 어쩔 수가 없는 분 (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은 참으로 은혜 넘치는 분이라 생각한다.
주님 앞에서 이 죄를 낱낱이 아뢰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면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데 있겠는가?
당연히 애 끓는 통회를 하고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옳다.
대단히 복 받은 분이라고 믿는다.
[누가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그런데 이런 분이 조심할 점은. 실천 보다 말이 과장되게 많이 앞서기 쉽다.
밖으로 주님께 욕을 돌리고 안으로 형제를 헷갈리게(시험 들게?) 하기 쉽다.
몸에 익은 죄악 된 습관 성향은 그렇게 쉽게 고쳐지고 변화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닮아 거룩하게 되는 길은 멀고멀다.
죄짓고 살아 온 기간이 얼마나 오랬는가 생각하라.
큰 죄인 회개 했다 크게 떠들고 나서
(예. 조폭 두목의 회개. 사람들은 충격적인 뉴스를 좋아하니까)
다시 죄를 짓는 경우는 참 많이 봤다.
그런 것에 마음 흔들리지 말라.
내 경우 양심이 덜 깨끗해서인지 지은 죄가 별로 없어서인지
당시에 생각이 안 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분을 대신해서 하는 말인데
그냥 자신이 할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으시면 된다.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며 점점 양심이 예민해 지고 지은 죄가 떠오를 때마다
주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주님께서 약속대로 용서해 주신다고 믿는다.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이런 분은 그간 살아오며 그래도 죄를 덜 짓게 보호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라.
그리고 남을 비난하지 말라.
또한 극적인 체험을 구하려 하지 말라.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넘치기는 하나 죄가 넘치는 경험은 할 필요 없다.
당신은 이미 넘치도록 주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또한 당신도 마음으로 남모르는 위선의 죄를 짓고 있지 않은가?
(내게 스스로 하는 말이다)
[로마 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결론. 둘 다 좋다. 서로 부러워하거나 비난 말자.
모두 다 주님의 넘치는 은혜.
혹, 나 같은 궁금증 있는 분 풀어 드릴려고…
혹, “나를 자랑하는 글이다“라는 오해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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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6회에 걸친 내 이야기
(1) 영접하는 자
(2) 죄의 회개?
(3) 쓰린 추억 – 심각한 죄의 회개
(4) 회개. 왜 그게 인상 깊을까?
(5) 언제 구원 받았을까?
(6)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