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시대(?)

 

요즘 백세 시대 라고도하고
자기 나이 x 0.7이 신체+정신 연령이라고도 합니다.

아마도 통계상 100세가 연령 최빈수 혹은 중앙값(median)에 가깝단 말이겠지요.

저는 지금 만 68세니 68 x0.7은 48세라는 뜻입니다.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나이.
이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4-50대에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오시면
제게 다리를 밟아 달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어머님을 늘 “마흔(40)에 매지근하고 쉰(50)에 쉬지근하다”하셨습니다.
40, 50에 몸이 힘드시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제가 68세에 그런 느낌이 좀 있으니.
아버님 어머님으로 비교하여 보면 4-50대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아는 분 중 나보다 두 살 많은 분은 3년 전 쯤 암으로 가셨고.
네 살 많은 한분은 아직 정신적 육체적으로 정정 하셔서
아프리카 선교지에 선교 및 봉사하러 가신다 하고…
네 살 많은 또 한 분은 기억, 논리사고가 작년 보다 많이 나빠지셨습니다
두 살 많으신 한 분은 저보다 훨씬 건강하셨는데
뇌종양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십니다.
참 다양하지요.

그런데도 통계는 100세 시대라는 겁니다.
률과 통계라는 것은 여러 경우를 보니 많은 경우가 그렇다는 것뿐입니다
전문적 표현은 표본집단(전체의 일부분)을 관찰 분석하여
그 결과로 모집단(전체)도 그럴 것이라 추측하는 것인데 오차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걸 표본 오차범위라고 합니다)
나에게 어떤 특정 사항이 일단 일어나면 좋든 나쁘든 100% 즉 확정된 사실이 됩니다.
나에게 움직일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고 확률과 통계는 전혀 무의미해집니다.

또 어떤 불행/행운이 발생할 확률이 5%라 합시다.
이 경우 95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그 일이 내게 앞으로 5번 안에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확률은 계속 5%라는 것입니다.
그게 확률입니다.
결코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

[전도서 7:14]을 생각 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기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확률과 통계가 아닌 우리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만 살게 하신 것이지요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저도 지난 2018년 5월 Puetorico에 허리케인 재난 복구 작업에 참여했을 때보다
이번 가을 신체 상태가 아주 조금 나쁜 쪽으로 좀 변화가 있는 것을 느낍니다.
오랜 세월 살았다면 살았으니 당연한 겁니다.
좀더 세심한 몸과 마음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신호겠지요.

100세 시대, 확률적으로 더 오래 건강히 산다고 꼭 내게 해당되는 것 아닐 겁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논리사고 퇴화 내지는 급격한 이상이 생기기 전
평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정리해서 적어 놓아야겠다는 것입니다.

face book과 Naver blog에 고맙습니다.
내가 그것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으니 말이지요.
그리고 사람은 여러 취향 많아서 좀 한 쪽으로 치우쳐있는(괴팍한) 내 말을 들어주고
호응하고 지적해 주는 분들도 있으니 좋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제 글을 읽어 주시고 의견 달아 주시는 분들께 참 감사드립니다.

젊은 때의 저를 아는 누군가가
아니 젊었을 땐 얌전히 지내더니 조용히 지내야 할 지금 때 왜 저러냐 했답니다.
그 말도 맞습니다. 아마 주책으로 보였을 지도 모르지요.
아내도 나에게 그렇게 말을 합니다.
“뭐 잘난 게 있어서 그리 말이 많으냐”구요.

지금은 나의 내일이 오늘과 같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덤으로 주신 은혜이고,
상황이 달라져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비록.
준비 아니 되었고
추하고 부끄러운 모습일지라도
주님께서 부르시면
기쁘게 주님 앞에 달려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싫다고 아니 갈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냉정하게 생각해서 별로 이생에 큰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감정적으로 죽음이 두렵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성적으로는 늘 그렇게 생각합니다.

통계적 100세 시대라도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적다고 생각되면
주님 만나 뵐 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으로 라도 후회되고 부끄러운 삶을 살지 말아야 하겠는데
앞으로의 삶은 내가 살아왔던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으니
과거의 비틀린 것도 바르게 정리 하는 데 힘써야겠지요.
(이거 어렵습니다)
사람의 일이 상대 적이어서 어떤 것은 제 능력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신 손에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됩니다.

살 날이 많이 남은 분들께는 탐욕스러운 일, 후회할 일,
남에게 미안한 일을 최소화하며 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뻔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늙어서도 욕심, 추태를 부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참 안타깝고 역겹습니다.
100세 시대라서 그럴까요?
(누구누구인지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100세 시대는 저주입니다.

누구는 100세 시대이니 제2의 인생을 계획 실천하라고 긍정적으로 역설을 하는 데
저는 사람이 pessimistic 해서 인지 신변을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날 동안 주위에 덕이 되고 최소한 민폐가 않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셔서 떠나는 날까지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부부의 기도 제목이기도 합니다)
만약 내가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치매?) 육체만 존재 한다 해도
제가 피해갈 수 있는 사항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내가 나일 동안 나의 평소 생각을 적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넋을 놓고 살아서는 곤란하고 뭔가 나에게도, 주위에도 보람된 것을 찾아야 하겠지요.
고운 음악도 들어 보고.
앰프도 열심히 만들고.
남의 앰프도 고쳐주고.
마눌이랑 뜰도 곱게 가꾸고
(
센스 없고 게으르다고 잔소리 듣습니다만.
저는 능률을 중히 여기는 것이라는데 마눌은 게으른 거라네요.
견해가 서로 다릅니다. 뭐 마누님이 다 옳으시지요.
)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자원봉사도 따라 다니고.
(언젠가 부터는 자원 봉사 따라가면 10대 애들이 저를 돌봐 주네요)
기회가 되면 주위 분들에게 예수님도 소개하고.
성경도 열심히 일고.
성경 이야기도 하고.
(늙은 세대라 마눌에게 잘해 주겠다는 말 하기는 쑥스럽습니다.)
하기는 제 능력에 비해 하고 싶은 것이 많기는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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