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판 성경 읽기 지침(시문서)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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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2:2
(개역개정) 너희만 참으로 백성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개역한글) 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표준새번역) 지혜로운 사람이라곤 너희밖에 없는 것 같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KJV) No doubt but ye are the people, and wisdom shall die with you
사람다운, 생각이 있는 “사람이로구나” 라는 것을 “백성이로구나“ 로 악역

21.10
(개역개정) 그들의 수소는 새끼를 배고
(개역한글)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KJV) Their bull gendereth, and faileth not;
어떻게 이렇게 더 나쁘게 오역/악역을 했을까?
수소가 어떻게 새끼를 밴다는 말인가? 새끼를 배게 해야지?
번역/감수의 상식, 자질이 의심된다.

38:36
(개역개정)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개역한글)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표준새번역) 강물이 범람할 것이라고 알리는 따오기에게 나일 강이 넘칠 것이라고 말해 주는 이가 누구냐? 비가 오기 전에 우는 수탉에게 비가 온다고 말해 주는 이가 누구냐?
(공동번역) 누가 따오기에게 지혜를 주었느냐? 누가 에게 슬기를 주었느냐?
(KJV) Who hath put wisdom in the inward parts? or who hath given understanding to the heart?
(NIV) Who endowed the heart with wisdom or gave understanding to the mind?
어떻게 이런 뒤섞인 “오역/짬뽕 번역” 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이것이 오히려 낫다.
혹은
앞뒤의 문장을 볼 때에(자연 현상과 동물의 지혜를 말하고 있으므로).
“누가 따오기에게 지혜를 주었느냐? 누가 닭에게 슬기를 주었느냐?” 이것이 맞다.
그런데 반씩 잘라 붙여서 뒤섞인 번역을 만들었다. 너무나 무심한 번역,오역,악역이다 차라리 …
(개역한글)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이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

시편

(개역개정) 수 1:8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라고 했는데
시편은 굳이 이것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로 더 길게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묵상”이 훨씬 낫습니다.

시편에서는 묵상하다( KJV: meditate)를…
(1) 묵상하다
창 24:63, 수 1:8, 왕상 18:27, 시 1:2, 시19:14
(2)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
시 39:3, 시49:3, 시63:6, 시71:24, 시77:12,
시 119:15, 23, 27, 48, 78, 97, 99, 148,
시 143:5, 시 145:5
두 가지로 번역이 되어있는 데 …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왜 일까?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는 좋지가 않습니다.
시에서 한 단어가 아닌 여러 단어로 길게 말을 풀면 의미가 제한되고 퇴색합니다.
시어가 길어져서 운율을 맞추기 어려운 것도 흠입니다.
시편을 그렇게 번역한 것은 더 질이 낮은 번역으로 퇴행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냥 “묵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KJV가 최선은 아니겠지만 KJV는 모두 meditate로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 25:63 은 묵상이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여호수와 1:8 도 묵상이라고 했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이것을…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어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라고 했다면 얼마나 이상한 번역이 되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시편에서도 “묵상하다”로 번역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함축되어야하는 시어를 세단어로 풀어쓴 것은 이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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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Ezra Yune 목사님께 문의해서 들은
히브리어 원문과 관련된 답변을 옮깁니다.
집사님의 질문에 단답을 드리자면

(둘 다) 한 낱말(의 번역)이며 번역할 때
산문인가 운문인가에 따라 그리고 문맥에 따라
번역을 달리한 것뿐입니다.

(원문) הגה라는 동사에는 여러 가지 뜻이 들어있었습니다.
Hebrew Lexicon으로 정평이 있는 BDB를 찾아보니

거기 הגה라는 동사의 뜻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1. growl, groan, moan
2. utter
3. a. meditate, muse
b. Imagine , device

대개 הגה(haga)라는 낱말은 시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위에 열거된 몇 가지 뜻이 문맥에 따라 선택되어 번역된 것 같습니다.
참고로 Septuagint(구약희랍어 번역)는 μελεταω가
사용되었는데 그것의 기본적인 뜻은 to care for, attend이며
(Hesiod가 그렇게 사용했다고 합니다.)

주로
study(Herodotus, Sophocles)나
practice(Homer, Herodotus)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신약에서는 2회 사용되었는데
행4:25에서는
devise(NASB), plot(NIV), imagine(KJV)으로 번역되었고
딤전4:15에서는
take pain(NASB), be diligent(NIV), meditate(KJV)로 번역되었습니다.

μελεταω를 찾아 올라가면
μελω를 만나게 되는데
그 기본되는 뜻은
to be an object of care, to take care라고 합니다.
역시 meditate(묵상하다)나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moan)의
어떤 목적을 암시하는 어원적인 고찰이 될 것 같습니다.

집사님께서 주신 성경구절을 찾아 보았습니다.
총20구절인데 4 낱말이 사용되었습니다.
הגה와 그것의 두 명사형 הגות, הגיון 그리고 שיח이었습니다.
שיח의 뜻을 찾아 보았더니
기본적인 뜻이 to muse, complain으로 나타났습니다.
1. complain 2. muse 3. talk, sing
그런데 이 동사가 Polel형에 이르면
(모음의 형태가 변화되어 수동, 재귀, 사역 등의 뜻을 갖게 하는데
Polel은 기본형을 강조하는 형태라고 하면 좋을 듯 합니다.)
그 뜻이 meditate 혹은 consider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규칙은 엄격하지 않습니다.)

שיח와 הגה는 묵상하다와 (작은 소리로) 읇조리다의 뜻을
공유하는 낱말들이라고 보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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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개역개정) 주는 재앙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개역한글)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표준새번역) 학대하는 자의 학대와 학대받는 자의 억울함을 살피시고 손수 갚아 주려 하시니
(KJV) for thou beholdest mischief and spite, to requite it with thy hand
(NASV) Thou hast beheld mischief and vexation to take it into Thy hand.
“재앙원한”은 오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표준새번역)과 비슷하게 바꾸어야한다
그리고 왜 감찰(監察) 같은 어려운 단어는 그대로 두었을까요?
“학대함과 원통함을 굽어 살피시고” 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1편 악인들, 죄인들 …복수로 썼습니다.
우리말은 집합 명사나 일반적인 지칭에서는 단수를 그냥 사용합니다.
그리고 시어라는 점을 생각할 때에 단수로 “악인의 꾀”, “죄인의 길”이 더 낫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20 에서는 …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로 단수로 받았습니다.
이 경우는 명백히 야고보와 요한 두 아들이니까 “아들들의 어머니”이라고 해야 하는데 …
문제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번역의 일관성이 덜어지는 것을 지적합니다.
감수 교정의 불량이거나 국어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개역개정)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개역한글)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KJV) Then came to him the mother of Zebedees children with her sons

37:30
(개역개정)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개역한글)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 이게 맞습니다.
(KJV) The mouth of the righteous speaketh wisdom, and his tongue talketh of judgment.

시 39:3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개역개정)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개역한글)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KJV) My heart was hot within me, while I was musing the fire burned: then spake I with my tongue,
뜻이 잘 통하던 것을 더 이상하게 번역했다. “묵상할 때에“ 가 되어야 한다

49편

시편 49:3
(개역개정)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
(개역한글)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공동번역) 내 입의 말에는 지혜가 담겼다.
(표준새번역) 내 마음은 명철을 생각한다
(우리말성경) 내 마음의 묵상으로 꿰뚫어 알게 되리라.
(NIV) the utterance from my heart
(KJV) the meditation of my heart shall be of understanding.
(NASB) the meditation of my heart
“(개역개정)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 ”우수꽝스럽고 어색한 번역
“명철(구체적인 말이 없는 추상적 대상)”을 중얼중얼 작은 소리로 읊조린단 말인가?
“(개역한글)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가 옳다
왜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에 집착해서 번역을 했는지 모르겠다

63:6
(개역개정)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개역한글)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KJV) When I remember thee upon my bed, and meditate on thee in the night watches.
(NASB) When I remember Thee on my bed, I meditate on Thee in the night watches,
주를 묵상할 때에 ”가 좋습니다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라고 하기 위해
“주를”이 아닌“주의 말씀을”이라고 바꾸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원어를 검증할 능력은 없었습니다.

51: 1, 9
(개역개정)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개역한글) 내 죄과를 도말(塗抹)하소서
(KJV) blot out my transgressions.
(지우개로) 지우다 가 아닌 (피로) 덮어 지워 주소서가 적절합니다.
어린양의 보혈의 피로 덮어서 죄를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도말(塗抹)“의 적당한 순 우리말을 찾으면 참 좋겠습니다…

52:24
(개역개정)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개역한글) 잡아 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 이게 더 좋습니다.
(KJV) lovest all devouring words,

57:2
(개역개정)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개역한글)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KJV) I will cry unto God most high
같은 의미의 쉬운 말을 어려운 말로 바꿈.

66:18
(개역개정)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개역한글)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KJV) If I regard iniquity in my heart, the Lord will not hear me:
“죄악을 품으면“ 이 옳고 자연스럽다, 과거완료시제의 가정문장이 어색하다

77:12
(개역개정)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개역한글) 묵상하며
(KJV) I will meditate

104:34
(개역개정)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개역한글)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 더 좋다고 생갹
(KJV) My meditation of him shall be sweet:

106:15
(개역개정)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개역한글)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더 좋다고 생갹
(KJV) sent leanness into their soul.

105:43
(개역개정)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 … 이것은 보다 좋은 번역이라 생각합니다
(개역한글) 저희가 꾀로 거역하며
(KJV) they provoked him with their counsel

119:15,23,27,48,78,97,99,148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개역개정)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개역한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KJV) I will meditate in thy precepts
묵상“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로 바꾼 것은 길게 쓰고 의미를 퇴색시킨 것이라 생각
여호수아 1:8은 그대로 묵상이라고 두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왜 번역의 일치가 안 되었을까?

119:9
(개역개정)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개역한글)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KJV) Wherewithal shall a young man cleanse his way? by taking heed thereto according to thy word.
“삼갈 것이니이다“가 더 좋다. ”지킬 따름이니이다”는 의미를 약화시킨다

130:4
(개역개정)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개역한글)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KJV) But there is forgiveness with thee
사유(赦宥): 이 어려운 단어는 왜 “용서“ 라고 바꾸지 않았을가?
“事由: 이유, 思惟: 생각, 私有: 개인 소유” 등 여러 가지 혼란스런 뜻이 있는데…
한문 세대인 나는 사유(赦宥) 라는 단어를 개인적으로 좋아 한다

143:5
(개역개정)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개역한글)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KJV) I meditate on all thy works;

144:2
(개역개정)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개역한글)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

(KJV) My goodness, and my fortress; my high tower, and my deliverer;
my shield, and he in whom I trust; who subdueth my people under me.

145:5
(개역개정)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개역한글) 묵상하리이다
(KJV) I will speak of the glorious honour of thy majesty, and of thy wondrous works.
(NIV) They will speak of the glorious splendor of your majesty, and I will meditate on your wonderful works.
(NASB) On the glorious splendor of Thy majesty, And on Thy wonderful works, I will meditate.

잠언

22:29
(개역개정)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개역한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KJV) Seest thou a man diligent in his business
근실”이 더 좋은데 어려운 단어이기는 하다. “능숙”은 의미의 변경 같다

전도서


5:5
(개역개정)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개역한글) 우매자는 손을 거두고 자기 살을 먹느니라
(KJV) The fool foldeth his hands together, and eateth his own flesh.
명 번역, 그런데 이번에는 의역을 함, (그래도 좋음)

7:12
(개역개정)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개역한글)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KJV) For wisdom is a defence, and money is a defence:
but the excellency of knowledge is, that wisdom giveth life to them that have it.
더 나쁘게 번역 함

7:14
(개역개정)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개역한글)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KJV) In the day of prosperity be joyful, but in the day of adversity consider:
더 나쁘게 번역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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