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껍질 까기

(겸손, 반성, 자기 비판, 자학)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며

나 자신을 한 꺼풀 벗겨내면
벗겨내야 할 것이 또 있어서
또 벗겨내면
벗겨내야 할 것이 또, 또 있어서

또, 또 벗겨내면
또, 또, 또 벗겨내면
또, 또, 또, 또 벗겨내면
또, 또, 또, 또, 또 벗겨내면
또, 또, 또, 또, 또, 또 벗겨내면
.
.
결국에는 남는 것이 없다.
나는 없고 아픈 상처만 남는다
자학이다.

마주 세운 거울에 나를 비추는 것과 같다
겸손하라고 교훈을 받아서
(성경의 중요한 교훈)
어쩌다 쉽게 겸손해 볼 기회가 생겨
겸손의 모습을 한 행동을 하고나서
혹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뭔가 괜찮은 행위를 하고 나서

“아! 내가 이렇게 겸손한 행동을 했구나”하고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고
“이렇게 겸손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나?”
생각하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내 마음 속에서 결국은 교만한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 반성하고 자책하기를
내 마음 양파 껍질 까기를 하는 데
잘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점점 반성을 벗어나 자학이 된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면 양심 불량, 미성숙, 유치함

그걸 하면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1) 가장된 겸손의 실천
(2) 자기 반성
(3) 양심의 양파 껍질 까기
(4) 자기 비판
(5) 자기 학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라는 인간은
모자라는 존재임이 틀림없고 이중인격이기도 하다
내 인격 과시를 위한 겸손 그래서
겸손을 위한 겸손은 가장된 겸손일 수밖에 없고
결국은 교만이다.
겸손을 위한 겸손은 교만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신앙 간증을 하는 경우를 보자
잘한 것을 이야기 하면 누가 봐도 자기 자랑이 된다.
결국은
내적인 영적(?) 교만의 외부로의 표출이다.
영적인 교만이 어찌 영적이겠는가?
영적인 모습으로 포장한 지극히 육신적인 것.
그래서 “영적이다“ 라는 표현은
”지극히 육신적인“ 경우가 참 많다.

그것을 보고 “저것은 영적인 교만의 표현이다“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또다시 교만하고 믿음 없는 사람으로
비판을 받게 된다.
이래서 또 다시 마음의 양파 껍질 까기가 시작된다.

대중 앞에서 잘못을 반성(회개?) 하면
공산주의식 자아비판이 되거나 교묘히 가장된 겸손이 된다
“무슨 목적으로 저런 말을 하나?“ 하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고…
이것도 또 다시 내 마음의 양파 껍질 까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될까?
그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나는 드러나지 않고
우리 주님의 아름다우심이 알려져야 할 것이 아닌가?

이래저래 내(육신적인 자아)가 살아 있으면
그리스도께 영광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애쓰고 힘써 노력하여 경건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치명적인 결점이다.

나를 포함한 인간의 심리는 매우 교묘하다.
그리고 나의 이성은 나를 교묘하게 합리화 하고 속인다.
자기기만의 논리가 꼬리를 물고 돌아간다.
양파 껍질 까기, 회귀에 회귀를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이성이 완벽하지 않고
불합리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인간의 몸으로 살면서 최종적으로 의지할 것이
나의 이성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이
나 자신에게 만 관심을 집중하고
자신의 내면을 양파 껍질 까기를 할 때에 일어나는
자아의 분리이다.
그리고 나 자신은 남는 것이 없다.
교만, 자학, 열등감 사이를 방황한다.

그리고
제가 저 자신을 비판하니 남인들 비판하지 않겠는가?
(더 심하게…)
나는 참 불합리하고 어쩔 수 없는 존재.

그러면 오직 믿음 “믿습니다, 아멘”하는 태도로 살면
맹신, 광신으로 흐르기 아주 쉽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믿음 없다고 매도하기 쉽다.

극단적 선택은 이래서 위험하다.
확률 분포와 비슷하다.

한쪽은 자기 생각에 의한 맹신
다른 한쪽은 자기 성찰에 의한 자학이다

이것은 인간의 논리적 이성적 사고의 오류이며 맹점이다.
그래도 나(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불완전한 이성적 사고를 의존한다.

이래서 인간(나)은 연약하다.
양 극단은 둘 다 문제가 된다.
중간을 선택하여 처신하는 게 중요하다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주님의 은혜에 매달리는 수 밖에…
그래도
저 같은 것 받아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히브리서 12:1,2상]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래서 또 다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빌립보서 2:5-8]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내 마음의 거울에 비친 내가 아닌…
나를 비우고 (쉽지 않다)
자기를 온전히 비우신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양파는… 조금만 벗겨냅시다.

(사족)
그래서
“내 마음의 풍차(Windmill of my mind)” 라는
노래가 있나 보다
돌고 돌아 가니까.

시인 이상도 오감도 2편에서
이런 반복적인 생각의 혼란을 묘사했다.
역시 시대를 앞서 간 천재.

(제 2 시제)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이런 생각도
인간의 이성적 논리의 오류
아- 나는 나를 못 믿습니다.

(인간 이성의 오류를 나타낸 그림)

왜 이런 골치 아픈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상 시인은 제 고등학교, 대학교 대 선배입니다 하,하
이거 내가 잘난 체하는 것 맞습니다.
이러면 또 다시 양파 껍질 까기
아-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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