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과 방향

제가 직장생활 할 때 넌센스 퀴즈가 있었습니다.

누가 가장 좋은 상사인가?

1. 똑똑하고 부지런한 상사
2. 똑똑하고 게으른 상사
3. 미련하고 부지런한 상사
4. 미련하고 게으른 상사

순서는 2, 4, 1, 3 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1등) 똑똑하고 게으른 상사
자기가 하기 싫으니 직원을 시키는데,
올바른 방향과 방법을 가르쳐주며 일을 시킵니다.
두 번 가르치기 싫으니 가능한 잘 가르치려고 합니다.
결국은 일을 잘 가르쳐주는 좋은 상사입니다.

(2등) 미련하고 게으른 상사
자기가 하기 싫으니 부하직원을 시키는데 저도 잘 모르니 그냥 맡깁니다.
직원은 고생은 하지만 결국은 시행착오로 일을 배웁니다.

(3등) 똑똑하고 부지런한 상사
제가 똑똑하고 부지런하니 부하직원 하는 것이 답답해서 자기가 해버립니다.
가르치는 시간도 답답해 합니다.
직원은 배우기가 어렵습니다.

(4등) 미련하고 부지런한 상사
제가 잘 모르니 직원을 시키는데 성격은 열심이고 부지런해서 이것저것 마구 시켜서
쓸데없는 고생만 시킵니다.
배우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최악입니다.

이 세상에서
방향은 열심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올바른 방향과 방법)
방향이 잘못되면 열심을 내면 낼수록 더 큰 문제를 만듭니다.
원래 가야 마땅한 곳으로 부터 더욱 더 멀어집니다.
아니 가느니만 못합니다.
(“그러려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합니다)

요새 인생이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살면서

결과만 중요시 여깁니다.
“꿩잡는게 매다”
“검정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
“Ende gut alles gut (끝 좋으면 다 좋다)”
이런 것은 이 세상의 그릇된 철학입니다

열심히 빨리 남 보다 잘하는 것에만 신경을 씁니다.
올바른 방향에는 관심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 50-90년을 볼 때에 빨리 열심히 하는 것 보다는
바른 방향을 향해 꾸준히 가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머리가 나빠 공부를 못한 사람 있었습니다.
형제들에게 구박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심성이 우직하달까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바르다면 바른 길을 우직하고 미련하게 살아 왔습니다.
큰 것, 대박이 아니고 개미처럼 살았습니다.
물론 불법 같은 것 할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도 머리 떨어지고 능력이 없었으니까요)
40대 이후를 지나 환갑을 지난 지금은
나름대로 성공했고
평온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반면 뭔가 요령을 부려서
빠른 시일에 뭔가 이루고자 한 사람은
잠깐 성공해도 그것을 오래 지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맴 돌고 있습니다.
혹은 크게 실패를 합니다.
그리고는 다음 대박을 기다립니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열심,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순수성과 방향이 훨씬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믿음에 열심인 우리는
종종 신앙의 위인, 영적 위인이 되기 원합니다.
위대한 주님의 종을 꿈꿉니다.
그래서 이름도…
다윗, 다니엘, 베드로, 바울… 등등
신앙의 위인의 이름을 붙여 짓습니다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결과를 최우선으로 중요시하는 열심은
주위 사람을 어려움에 빠지게 하고
주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그것이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면 더욱 심합니다.

젊은 시절 하나님께 열심인 지도자라고
다른 사람들을 열심으로 몰아가다가 5년, 10년 오랜 세월 후
탈을 쓴 늑대로 판명된 사람을 많이 있습니다.
이단이라는 사람들이 거의 그런 사람입니다.

그걸 주님의 일로 믿고 따라간 사람들은 5,10년 후 어찌 되겠습니까?
물론 주님께 순수한 사람은 주님께서 보호해 주신다고 믿습니다만
잃어버린 세월의 상처 치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의 종으로 믿어 맹종하는 사람은 대책 없습니다.
탈을 쓴 늑대의 충견(사냥개)이 됩니다.
이단 이라고 드러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정통 교단 소속이라고 하면서 탈 쓴 늑대도 많습니다
이상한 일 아닙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를 합니다.

[히브리서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했습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 시대에 성도들을 경계 권면한 말씀입니다.
문제는 오랜 시간 “행실의 종말“을 판단했을 때는
이미 많은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이 쓰는 상투 수단이 뭔지 아십니까?
“감히 주의 종을 의심하고 비판한다”라는 겁니다.
또, 그들은 이런 주제(히브리서 13:7)로 설교 하지 않습니다.
저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겠지요?
성도들이 성경을 읽고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
정말로 전도에 열심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하지요)
그런데 그들이…
열심히 전도하여 성공하면
이단을 하나 더 만드는 것뿐입니다.

[마태복음 23:15 하]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주님께서는 올바른 길 좁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을 쓰신다고 믿습니다.
목표가 아름다우면 방법도 정직하고 올 바라야 한다고 믿습니다.
님의 사역이니 이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 버려야 합니다.
주님의 사역이 시급하니까 어떻게든 (내가)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 버려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하니 다른 하찮은 것은 별로 신경 쓰기 어렵다는 생각 버려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시급한 주님의 일이라 할지라도 깨끗한 사람을 통해 이루십니다.

내가 깨끗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쓰실 것입니다.
깨끗지 못한 그릇으로 있으면서 주님께 써 달라 떼쓰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그릇이어도 됩니다.
능력이 부족해도 됩니다.
주님께서 알맞게 쓰십니다.
더러운 큰 그릇(능력 있지만 부정한)이 주님 일을 하면
주님께 더욱 욕이 됩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어 정직한 방법으로 올 바른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대를 위해서 조그만 불의는 감수한다는 생각은 죄입니다.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불신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망령되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큰 그릇을 꿈꾸지 말고
큰 그릇 되려고 힘쓰지 말고
깨끗한 그릇, 순전한 그릇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심 이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도 열심을 요구 하십니다.
그러나,
열심 이전에 깨끗함 정직을 요구하십니다.
중도에 부정직 편법을 사용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요즘, 기독교 위기라 하고 복음을 전하기 갑갑한 이 때
그리스도인 나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로 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당신이 믿는 그 하나님 나도 알고 싶다“고 하지 않을까요?

사실 저도 이런 말을 큰 소리로 할 자격 못됩니다.
뭐 묻은 개와 뭐 묻은 개는 거기서 거기이니까요.

[디모데후서 2:20-21] (깨끗한 그릇)
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 정도)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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