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電子)가 존재를 나타낼 때

(마눌은 천사? 악마?)

나와 팔짱낀 여자가 예쁜지 못생겼는지 모른다.
예쁜 여자 틀림없이 여기 있는데 어데 있는지 모른다.
굉장한 미인이 이 방에 있는데 만져지지 않는다.
마눌은 기막힌 미인인데 집안 어데 있는지 모른다.
따라서…
마눌이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른다.
마눌이 착한지 악독한지 모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에 있을까요?
이와 비슷한 사실이 엄연히 현실에 존재합니다.

고백하자면 …
이글의 원 제목은 “전자(電子)가 존재감을 나타낼 때”입니다.
그런데 제목을 그렇게 쓰면 누가 이글을 읽겠습니까?
그래서 고심 끝에 붙인 제목이
그리고 그림도 좀더 선정적인 것으로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아! 속았네.
이 골치 아픈 이야기를 읽으라고?
그만 읽을래 하실지 모르겠네요.

양자역학(量子力學 Quantum Physics)적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존재합니다.
너무나 작아서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양자역학적인 현상을 이해하려면
(1) Planck 상수: 아주 아주 작은 숫자
(2) 불확정성원리: 어떤 물체의 위치와 속도는 동시에 알 수 없다
(3) 물질파: 모든 물체는 존재 확률의 파동으로 존재 한다
세 가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이 필요합니다.

1. Planck 상수: 약 6.63 / 100000…0 이 27개
약 10(0이27개) 분의 1 정도의 숫자이니 상상 불가능한 작은 숫자

2. 불확정성원리: Heisenberg가 알아냈는데
“어떤 물체의 위치와 속도는 동시에 알 수 없다.”
“속도를 정확히 알면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위치를 정확히 알면 정확한 속도를 모른다” 라고 표현됩니다.
이것은 자연계에 내재 된 근본 성질(원리)

과장하여 감각적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여자가 대단한 미인인 것은 알겠는데 어데 있는지 모른다
바로 옆에 있는 여자가 미인인지 아닌지 모른다.
마눌이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른다.
마눌이 착한지 악독한지 모른다.
나와 팔짱낀 여자가 예쁜지 못생겼는지 모른다.
예쁜 여자 틀림없이 여기 있는데 어데 있는지 모른다.
내 아내는 기막힌 미인인데 집안 어데 있는지 모른다.
기막힌 미인이 이 방에 있는데 만질 수 없다

어렵게 말하면 (여기는 읽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물체의 위치와 속도(정확하게는 운동량=속도x질량)의 동시 측정은 불가능 하다.
Δx . Δp ≥ h/4π
(
Δx : 어떤 입자(예를 들면 전자) 위치 측정의 오차 범위
Δp : 그 입자의 운동량의 오차 범위
h : Planck상수=약 6.63 / 100000…0 이 27개
)
위치의 범위 x 속도의 범위 ≥ Planck 상수라는 뜻이고(대략적으로)
더 쉽게 말하면 물체의 위치와 속도는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범위만 알 수있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어떤 물체의 무게(질량)을 알 경우
속도를 정확히 알면 위치는 전혀 알 수 없고
위치를 정확히 알면 속도는 정확히 모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모르는 범위(오차의 범위)는 h/4π 보다 크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에 내재 된 근본적인 성질(원리)라는 것이다.
이거 대충 이야기 한 것인데, 너무 골 아픈가?

그런데 우리는 예를 들어 책상 위 볼펜의 위치 속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볼펜의 무게(질량)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기준 단위(Planck 상수) 보다 어마 어마 하게 커서 명확하게 관찰 되는 것입니다.
10에 0이 27개 붙은 수를 무게(질량)으로 나눈 것이 오차의 범위이니(거의 0 이다) 일상에서는 정확한 관찰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자(電子)가 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전자는 질량(무게)가 거의 없습니다
전자 질량은 9.1095×10-31kg (대략 1/10…0 이 30개 kg)
전자 존재 위치의 오차범위를 알기 위해 플랑크상수(0x27)을 전자의 무게 (0x30)으로 나누면
대략 1000이라는 큰 수가 나온다. 1000 cm 도 좋고 1000 m 도 좋습니다.
그 작은 전자가 1000 cm 안 어디인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정확히 어디 있는지 모른 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 전자를 상자 속에 넣어두면 확률적으로 전자는
상자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게 되고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쉽게 말해서 어디에나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는 말입니다.
공기와 같이 존재감이 전혀 없습니다.
이상하지만 자연계(물리학적)의 진실입니다.
믿을 수밖에.

3. 물질파: 드 브로이(de Broglie)
이 전자가 존재하는 확률이 파동으로 진동하며 이동하는데 그것을 물질파라고 합니다.

읽지 않아도 됩니다.
파장 = 프랑크상수 / (질량 x 속도)
수식으로 더 어렵게 정리한 것이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

그림에서 물질은 그 존재의 확률이 파동으로 뭉쳐서 존재하고 이동합니다.
이것을 wave packet이라고 합니다
파동이 이동하는 방향(x축)은 물질의 위치이고
그리고 파동의 진폭(위아래의 크기)은 물질이 존재하는 확률입니다.
물질의 크기가 아니고 존재 확률의 크기입니다.
그 위치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wave packet, 범위 내에 그 물질은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파동의 진폭이 큰 곳이 존재 확률이 크니까 그곳에 그 물체가 존재하기 더 쉽습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울 마눌이 방안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존재 하는데
바로 요기에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이것은 1차원으로 표현한 그림입니다.
2차원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되고
물체는 3차원에 존재하니까.. 표현이 어렵습니다

이런 비슷한 것이 3차원으로 진동(존재 확률)을 하면서 이동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속도가 아주 작거나 전자 같이 무게(질량)이 아주 작으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 됩니다.
극단적으로 속도가 0 이면 온 세상에 동일한 확률로 퍼져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하지만 자연계(물리학적)의 진실입니다. 믿을 수밖에.
인간 관측범위의 만물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렇게 존재하실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23: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내 생각에…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실을 양자역학적 현실인
전자 속에 숨겨 놓으신 것입니다.
아 – 오묘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전자의 속도가 완전히 0 인 경우는 불가능합니다.
공기 중의 먼지(전자 보다 엄청 크다)도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아 골치 아프지요)

그런데…
이 물체가 질량(무게)이 생기면 혹은
이 전자가 가속 되어 속도(힘)가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옛날 TV 브라운관을 기억 하시는지요?
브라운관에는 뒤에 전자총이 있어서 아주 빠른 속도의 전자를 브라운관 유리에 쏩니다.
그러면 그 전자가 브라운관의 벽에 충돌하면서 속도 즉, 힘(에너지)을
빛으로 방출하여 빛을 내게 되는 데 이게 TV화면의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브라운관의 안쪽에는 전자가 충돌하면 빛을 내는 칠을 했습니다)
총탄이 시멘트벽에 부딛치면 파편이 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TV 브라운관이 닳습니다.
전자 현미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때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압니다.
이런 전자를 우리는 particle(입자, 알갱이) 전자 라고 합니다.
전자의 Wave Packet이 존재감을 나타 내어 입자, 알갱이, 탄환 같은 것이 된거지요.

존재감이 없던 전자가 강력한 힘(에너지,속도)를 얻으면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이 빠른 전자의 흐름은 원자폭탄이 터질 때 나오는 방사선 중 가장 약한 방사선인 Beta 선.
힘없는 전자가 힘을 얻어 방사선이 되면 무섭습니다.

질량이 크거나, 속도가 커지면 사정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강력한 존재감을 나타내며 등장합니다.

이 예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내가 길을 걸어간다 하면. 유명하지도 않은(돈, 권력, …도 없는) 내게 누가 관심 두겠습니까?
세상 어디에 가도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존재감 없는 미미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길을 간다 하면 온 갓 야단법석으로 떠들썩할 것입니다.
이재용 회장이 지나가도 마찬가지.

내가 세상의 부정, 비리 고래고래 떠들어 봐야 아무도 신경 안 씁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첨단 기술 제재 검토 한다고 말만 해도 중국 관련 반도체 관련 주가가 곧 폭락합니다.

힘( 운동량=무게 x 속도 )의 차입니다.

가벼운 전자가 속도를 얻어 강력한 존재감으로 힘차게 날면 위험한 방사선입니다.
일정한 틀에서 적당한 속도로 움직이면 진공관 앰프, 형광등, 전자 현미경 등이 되어 유용합니다.

존재감이 없는 미미한 존재일 때 나는
착하고 선한 존재로 나타납니다.
선악이 드러나지 않는 미미한 존재인 것입니다. 별 영향력 없습니다.

[욥기 35:6-8]
6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7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

어린아이는 좀 착한 일을 나쁜 짓을 해도 주위에 미치는 별 영향이 없습니다.
힘이 작아 영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도 별 볼일 없는 존재여서 주위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합니다.
그런 내가 차 운전대를 잡고 마구 달리면 교통사고 내고 타인에게 큰 위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운전대를 잡으면 평소에 착하게 보이던 사람도 막 걸쭉한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인격이 덜된(Control 안된)채 힘을 소유한 까닭입니다.

그래서 나의 주장이
힘, 능력, 은사 보다 주님의 선하고 온전하신 성품을 사모해야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고 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성품과 은혜를 먼저 구하십시오.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의 존재감이 드러날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할 때입니다.
실수하거나, 죄악을 범하기 쉬운 때입니다.

힘(존재감)은 있다가 없어집니다.
존재감 나타내고 죄를 짓는 것보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보다 뛰어난
지혜, 부, 힘, 능력, 권력, 인기… 등등을 허락하셨을 때,
우리는 더 조심하고, 더 기도하고, 더 겸손하고 더 더 더…

[예레미야 9:23-24]
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미가서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제글 “시냇물과 양치기”를 보십시오.

시냇물과 양치기 소년 )

저의 억지 주장일까요?
이번 이야기의 결론은 별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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