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의 보리수

(시 Willherm Muller)

     

보리수 (Lindenbaum)
Am Brunnen vor dem Tore Da steht ein Lindenbaum;
Ich traeumt in seinem Schatten So manchen süssen Traum.
Ich schnittin seine Rinde So manches liebe Wort;
Eszog in Freud’und Leide Zu ihm mich immer fort. 

Ich musst’auch heute wandern Vorbei in tiefer Nacht,
Da hab’ich noch im Dunkel Die Augen zuge macht.
Und seine Zweiger auschten, Als riefen sie mir zu:
Komm her zu mir, Geselle, Hier find’st du deine Ruh’! 

Die kalten Winde bliesen Mir grad ins Ange sicht;
Der Hut flog mir vom Kopfe, Ich wendete mich nicht.
Nun bin ich manche Stunde Entfernt von jenem Ort,
Und immer hör’ich’s rauschen: Du fändest Ruhe dort!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 꿈을 꾸었네
가지에 사랑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찾아온 나무 밑

오늘 밤도 지났네 보리수 곁으로
캄캄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흔들려서 말하는 것 같아
동무여 내게 와서 안식을 찾아라
안식을 찾아라 

(3절 내 졸속 번역: 독일어 몰라서…)

매서운 바람 불어 얼굴을 때리고
(모자가 날렸어도 그대로 있었네)
정든 곳 떠나서 오래 방황 하지만
지금도 내 귓가에 들리는 그 소리
동무여 내게 와서 안식을 찾아라
안식을 찾아라
(누가 3절 번역 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슬퍼서 아름다운 노래.

감히 제가 평할 수는 없는…
제 생각은 … 

(1절)
젊은이가 소녀와 사랑할 때…
보리수 나무 밑에서 사랑을 속삭이며보리수 나무에 사랑의 말을 새겨 넣었습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해“ 같은 말이지요 
1 곡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결혼하라고 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2절)
여자의 마음은 변하는 것
그녀의 맘이 변했습니다. 

사랑을 잃은 지금은 슬픈 추억을 가슴에 안고 
한밤에 떠나가면서(1곡 Guten Nacht)
추억의 보리수 나무 밑에 앉아 눈을 감으니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나뭇가지에 목매 죽어
안식을 찾으라는 듯이 들립니다.

젊은이는 그 사랑의 추억이 어린
보리수 나뭇가지에 목매어 죽고 싶습니다. 

(3절)
차가운 그 겨울날,
그래도 겨우겨우
가슴 아픈 사랑의 추억이 어린
정든 그곳을 떠나 이곳저곳 방황하지만
자꾸만 그 보리수 나무 가지에
목매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내가 죽어 버리면 그녀는 슬퍼할까? 
죽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얻고 싶은 애틋한 심정입니다. 

이런 심정은 노래에 종종 나옵니다.지나친 해석인지도 모릅니다
(논쟁을 피하려는 말입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가사가 비슷한 곳이 있습니다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 들게하라”
여기선 아예 죽여 달라고 하는 군요. 

날나리 바람 (황금심)
(이부풍 작사/이면상 작곡) 에서는
죽는다고 마구 떼를 쓰네요.
좀 유치하기는 하지만.

(1절)
맘 달 뜬 새악시의 머릿기름 냄새
가는 봄 쓰러 안고 혼자 우는 뻐꾹새
나리 나리 날나리 날나리 바람이 불어서
거미줄에 내 목을 매고 아이고나 데고나
날 살려 주구려 나를 살려 주구려 

 

제주도 민요 “너영 나영”에는
“앞집에 처녀는 시집을 가구요
뒷집에 총각은 목을 매러 간다“
라고 하네요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에서도
여 주인공(노르마)은 죽어서라도
사랑하는 이의 사랑을 얻고자 하구요 

********************

여기에서 말을 바꾸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죽어서까지 (자살?)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한다!”라고
하시는 절규입니다. 
들리십니까?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내가 너를 죽기까지 사랑한다!”라는 절규입니다.
크게 소리 질러야 피맺힌 절규입니까? 

[요한복음 10:17,18]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한다는 증표로 그 생명을 버리신 것입니다.
(가지에 사랑의 말 새기어 놓듯이…)

주님의 이런 마음이 시인의 마음에 무의식 중에 남아서
보리수 나무 가지에 목매어 죽으면 사랑을 얻을까하여
죽고 싶다는 시를 쓰지 않았을까요? 

너무 자의적인 지나친 해석이지요?
제가 그렇습니다. 

제말은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맺힌 사랑 앞으로
나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 

(노래) Dietrich Fischer Dieskau
(반주) Alfred Brendel
반주는 반주가 아니고 노래의 협동 연주입니다.

Schubert의 가곡은 피아노 반주가 단순한 반주가 아닌
곡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전달합니다.
중간에 흐르는 간주곡이 보리수 가지/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숭어에서는 셋잇단음표의 반주가
숭어가 빠르게 헤엄치는 것을 묘사합니다.
 

 

나나 무스끄리의 노래에 피아노 반주면 더 좋을 듯합니다.

  

 

8 thoughts on “슈베르트의 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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