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는


(지금의 내가 믿음 안에서 성숙했다는 말은 아니고…)

(고린도전서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
어렸을 적에는…
어서 어서 빨리 자라서 무언가 되고 싶었다.
오직 희망만 있었다.
(현실은 아무것도 없는 작은 아이였다)

동요에도 있다.
어서 자라서 새 나라의 기둥 되자고…
하늘아래 두팔 벌린…

하늘아래 두팔 벌린…


(2)

청년 때는 세월이 멈추었으면 하고 생각 한다.
지나가는 청년의 때
이 좋은 시절을 누리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들 노래한다.
“바람아 멈추어다오”,
“세월아 멈추어다오”

바람아 멈추어다오

세월아 멈추어다오

나는 청년 시절 세월이 멈추기를 원했던 적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우울한 염세적인 사람?)

(3)
늙어서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젊어지고 싶다.
“십년만 젊었으면”
“청춘을 돌려다오” 라고 노래한다.

 

그런데, 나는…
젊어지고 싶지 않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늙어서 까지
부요하고, 힘이 넘치고, 행복하면
(물론 일단은 축복이겠지만)
그 누가
주님계신 영원한 나라를 사모할 것인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 않겠는가?

늙어서 기운이 쇠해지는 것은
하늘에 대한 소망이 커지는 것이다.
좋은 것이다.
축복이다.

사랑하는 정든 사람 차례로 보내고 사는 것은
가슴 아픈 이별의 반복 연습이다.
결코 축복이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래 살고 싶어들 한다)

나를 돌아보며 생각한다.
예수님을 믿고
평생 살아오면서
우리 주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야 하는데
아직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부끄러운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 같은데
특별히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데

나의 이 성품으로
지금보다 얼마나 더
우리 주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을 것인가?
혹시 내 삶에 죄를 더하지는 않을까?
시험에 들지 않게 지켜 주시기만 기도한다.
유혹에 빠질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 나의 실존이다.

(
주님께서
이 땅에서의 생명을 허락하신다면
힘들어도
애쓰고 힘써야 할 것
거룩한 삶의 연습 실천이다
)

그래서 나는…
주님께서 불러만 주신다면.
하루 빨리 주님께 가고 싶다.

(1) 어느 좋은 그 날 아침에 난 가리라 주가 예비 하신 그 곳에 난 가리라
(2) 내 삶 끝나 슬픔 걷힐 때 난 가리라 사랑 기쁨 넘치는 그 곳 난 가리라
(후렴) 난 가리라 오 영광 난 가리라 머잖아 할렐루야 그 때에 난 가리라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계신 임금 우리 구주예수라”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복된 날.
그 날이 언제인지 몰라도

나는 비록 준비 아니 되었어도
부끄러운 존재일 지라도
남겨질 내 흔적이 수치스러워도

내 주님께서 불러 주시면
“아멘. 할렐루야” 하며
달려가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는데…

사랑은 상대의 죄를 덮지만
나의 죄, 나의 추한 모습도
덮는다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하시는
내가 그렇게 사모하는
주님을 만나 뵙는다는데
나의 부끄럽고 추한 모습이
무슨 상관이랴.

벌거벗은 추한 모습
상관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그냥, 달려가겠습니다.
(염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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