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성경통독 50/15회를 마치고

(글 쓴 날: 2019.09.20)

(
아이언사이드 박사는
14세 때 자기 나이 수만큼
성경 전체를 읽지 못한 데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21살 때에는 자기 나이만큼 읽었고
만년에는
나이 수보다 훨씬 더 많이 읽었습니다.
)

나는 오늘 (2019.09. 19)
금년 성경 통독 15회
에수님 믿은 후 통독합계 50회 했다.

(
이런 글을 쓰면 내가 아무리 조심스레 써도 자랑이 된다.
물론 자랑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스도인이 한해에 성경 한번 읽는 것이 무슨 자랑인가?
또 이렇게 말하면 남을 흉보는 것이 된다.
이래저래 자랑이 그나마 낫겠다.
이런 이야기 쓰는 자체가 자랑이냐 비난의
시비거리가 될 수 있다.
그냥 좋은 마음으로 읽어 주는 분이 계시면 감사하겠다.
)

이유라면 이유가 있다.

(내 성경 읽기표 2018년 까지 35회)


나는 20세에 예수님을 믿고, 그때

예수님을 믿은 햇수만큼
성경 통독 하고자 생각 했다.
어떤 해는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1981부터 1992 까지)

언제(1993) 부턴가 점점 뒤처져있었다.
2018년 까지 35회 개역한글판 한문 성경으로 읽었다.

(무리 같이 보이는 시도를 하다)


2019년은 내가 예수님 믿고 50년이 된다.

그러니까 성경 통독 50회를 하려면
2019년에 15회를 통독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도 내가 이것을 달성할 수 있는지 매우 궁금했다.
이런 무리한 시도를 하게 된 동기를 다음의 Link에 있다.
(2019 희망사함)

2019.6.8 까지 8회 통독 할 수 있었다. (통산 43회)

희망이 좀 보인다.

개역개정판 성경으로 읽으면서 좀 쉬웠다.
그런데 번역이 마음에 안 드는(이상한) 곳이 눈에 띄어서
나 나름대로 개역개정 성경읽기 지침을 틈틈이 적었다.
여기에 그 Link 가 있다.
(개역개정 성경: 성경읽기 Guide)

(새로운 성경읽기표 2019.4.26 – 41회)

(신체적 문제의 발생)


이때, 문제가 발생했다.

1년 15회를 통독하려면 월 2회 독파를 해야 되는데
(통독에 실패하는 달을 감안해서)

해보니 하루에 6-8 시간을 책상에 앉아서 성경을 읽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척추에 무리가 와서 허리가 매우 아프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자세와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이미 늦었다.

등산용 침낭을 가슴에 받치고 엎드려 성경을 읽으며 척추를 펴며 읽었다.
이것만 계속하면 나쁘겠지만 교대로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책상에 앉아서 읽는 중간에 엎드려 읽기를 하며 척추의 자세를 교정했다.
하루에 30분 정도 혹은 그 이상 걸었다.
Health Club에 가서 운동도 하고…
몸이 건강해야 성경도 읽는다.

(엎드려 읽기 보조 기구: 등산 침낭)

그리고 책 읽는 독서대 밑에 눈높이 받침을 만들어 넣어서 눈높이를 맞추어 등을 덜 구부리게 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있는 자세도 좀 바꾸었다.

(독서대의 개조. 보조 밑바침)
“이렇게 까지 하며 읽어야 하나?“ 잠깐 생각했다.

육체적인 어려움을 일단 해결했다.

좋아진 것도 있다.
눈이 나빠서, 특히 왼쪽 눈의 눈꺼풀 이 쉽게 피곤해서 뜰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왼쪽 눈을 감거나 한손으로 눈꺼풀을 위로 잡아당기면서 성경을 읽었다.
매우 불편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왼쪽 눈을 종종 감기는 해도 그냥 뜨고 성경을 읽는 시간이 길어졌다.
마음으로부터 감사한다.

“독서백번의자통(讀書百番意自通)”이라고
100번 읽으면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고 했는데…
무심코 읽으며 지나갔던 것들을 자세히 알게 된 것도 참 많다.
내 Blog에 적은 내용들은 요즘 성경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들이다.

(심리적 문제 발생)


2019.7.9 10회, 통산 45회 통독 하고

갑자기 맥이 풀리면서 의기소침 하게 되었다.
45회를 읽어도 모르는 것은 정말 모른다.

특히 구약의 예언서의 내용 중 사람을 지칭하는 곳에 지명이 나오는 것은 정말 모른다.
3,000년 보다 훨씬 이전의 작은 부족, 국가, 도시의 지명들,
지금은 남아있지도 않은 지명이 언급 되면서 예언이 이어질 때 정말 이해가 불가능 했다.
그것도 많은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현재는 있지도 않은 지명들…
그 지명들에는 의미가 원어에는 포함되어있다.
이건 아무리 읽어도 짐작만 갈 뿐이지 알 수 없는 내용들.

“독서백번의자통(讀書百番意自通)”이라고
100번 읽으면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고 했지만…
이 상태로는 100번을 읽어 본들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경의 역사 문화 풍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와 풍습의 이해가 없이는 언어는 전달되지 않으며
전달되어도 오류를 포함하고 전달된다.

성경의 원어(헬라어, 히브리어, 아람어)보다
성경의 역사, 문화, 풍습을 먼저 공부해야 하겠다.

물론 그냥 읽어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참으로 많이 있다.
감사하며 순종해야 한다 고 믿는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전혀 알 수 없는 부분을 몇 번은 그냥 지나가겠는데
매번 그냥 지나쳐 보내기에는 마음이 참으로 답답하다.
(
그런 때에 성경 주석이 필요한 것이겠지.
먼저 의문을 갖고 공부한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이 계시니…
저자마다 다른 말을 하는 것을 분별할 능력은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주된 교훈과 일치하는지 어긋나는지 분멸할 수 있다고 본다.
)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선언하신 영원한 구원의 도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아도 명료하게 크게 선언하시었지만.
어떤 세세한 부분은 아무리 읽어도 알 수가 없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그런 곳을 읽지 말까?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낙심이 된다.
이렇게 낙심하면 금년에 남은 5회 통독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루 종일 멍하니 있다가 다시 억지로 힘을 내어 읽기 시작했다.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중이다
(낙심한 그 시점의 생각이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면서 계속 종종 부딪치는 도전은
“많이 읽고 깨달으면 뭘 하나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니 위선자가 될 뿐인데“라는 안팎의 도전이다.
아마 나를 포함한 기독교인 중에 말만 앞세우는 위선자가 많아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 말씀 읽기를 그만 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눌 말하길 나는 자폐증이라 뭐에 한번 꽂히면 그냥 그것만 한다고…)

50회 통독을 달성하면 (뭔가 혹시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그때 이어서 써야하겠다.

(
그런데…
기를 쓰고 50번 읽은 지금은 뜻이 꽤나 통한다.
안 통해도 겁이 덜 난다.
또 읽으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좋기도, 무섭기도 하다.
틀림없이 잘 모르는데 별로 겁이 안난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가르쳐 주실 것이며
지금은 별로 필요가 없어서 열심히 읽어도
아직 가르쳐주지 않으시겠지 생각한다.
다행이다.
)

(2019.09.19 50회 돌파하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성경 말씀을 잘 읽어서
그 말씀을 잘 깨닫고
그 말씀에 따라 살게 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성경 많이(50번) 읽고 나니 성경 전체의 흐름을 보고
내용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의 도표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이해, 해석, 주장, 논지는 뭔가 이상한 것인데
이제는 그런 것을 빨리(아직도 즉시는 아니다) 판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 전체를 여러 번 통독한 것의 최대의 유익이다.
이것 참으로 굉장한 유익이다.
성경의 흐름의 전체적인 개념이 없으면
몇몇 성경 구절 가지고 하는 자기(거짓) 주장에 넘어가기 참 쉽다.

(성경의 이해는 성경의 다른 부분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성경의 한 곳에서 말한 내용은 성경 다른 곳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

(한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래야 한다는 믿음이다)

성경 내용과 관련한 어떤 주장이 성경의 다른 곳과
조화 되는지 대립 되는 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참 좋다)

또 하나는 성경에서 여러 번 말하는 내용과 가끔 언급한 내용이 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여러 번 말씀하시는 내용은 나도 중요하게 받고
조금 말씀하시는 내용은 나도 조금만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성경에 있는 단어/개념이라고
성경에 가끔/덜 나오는 단어/개념으로
성경에 자주/많이 나오는 단어/개념을 덮어 씌워서 주장하는 것은 논리 오류다.
(이런 주장 참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의 예는 따로 쓰는 것이 좋겠다.

그럼 앞으로 뭘 어떻게 할까?

1. 원어(히브리어, 헬라어) 공부하여 성경을 읽는다.
2. 영어 성경을 읽는다.
3. 성경의 역사 문화 풍습을 대한 공부한다.
4. 내년에 나이 70이 되니 70회 통독을 시도한다.
5. 중요 성경 구절을 암송한다.(젊을 때 1000 구절 정도 암송했는데 모두 사라졌다)
정도가 되겠는 데…

게으른 나는 당연히 제일 쉬운 것부터 할 것이다.
효율성을 중히 여기는 나라고 말을 바꾸어야 될 듯.

원어 공부는 효율성이 제일 떨어질 테니 거의 안하게 될 듯.
(혹시 모르기는 하지만… 제 나라 말도 잘 이해 못하면서 뭔 원어?)

4-2-3-5-1 이 되려나?
그 때까지 머리가 따라 줄까?
그 때까지 몸이 따라 줄까?(살아있으려나?)
주님께 빨리 가는 것은 참 좋은 일이고.
안 불러 주시면 성경 열심히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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