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 논리의 오류

   

(원숭이 xxx은 빨개)

내가 자랄 때 아이들이 부르던 노래가 있다
(가난하고 못 살았던 그 시절) …..

원숭이 xxx은 빨개 … 맞음
빨가면 사과 ……… 틀림
사과는 맛있어 ……. 맞음
맛있으면 바나나 ….. 틀림
빠나나는 길어 ……. 맞음
길으면 기차 ……… 틀림
기차는 빨라 ……… 맞음
빨르면 비행기 ……. 틀림
비행기는 높아 ……. 맞음
높으면 백두산 ……. 틀림
(노래)“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이 노래는 참 재미있는 노래다.
(물론 옛날 노래, 지금 아이들도 알려나?)

그런데 “원숭이 xxx”에서 이 노래까지 오는
논리의 전개에 모순이 있다.
보면 곧 안다.

“원숭이 xxx은 빨개” 이것은 사실이다 (맞는다)
“빨가면 사과” 이것은 (틀린다). 장미꽃도, 자두도, 빨간 립스틱도 다 빨갛다.
“사과는 맛있어” (맞는다)
이런 식으로 논리적으로 맞는 말과 틀리는 말이 교차 되어
(
하필이면 사과를 선택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자기 생각대로 결론을 이끌어가려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

마지막에는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좋은 노래로 끝이 난다.

“원숭이 xxx”가 백두산 이 되었다.
연상 작용에 의한 논리 전개의 오류이다.

(
수학(집합론)에서

A -> B 가 맞지만
B -> A 가 아닌 경우가 아주 많다.

사람 -> 동물이지만
동물 -> 사람이 아니다.
)

그런데,
성경도 이와 같이 잘못 해석하거나 원칙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1, 2 장)을 다음의 논리로 해석 한다 가정하자.
(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나는 싸움이 싫다.
논리의 반박은 환영한다.
)

(에베소서 1:4-5)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2:8-9)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1)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신 절대 주권자이시다 … (맞음)
(2) 은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 (맞음)
(3)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시고 예정하셨다(엡 1:4-5) … (맞음)
(4)“믿음으로 말미암아”의 믿음도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정에 의해 주셨다 (맞나?)
따라서 이 부분은
(5)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은혜로 주신 믿음”이라 함이 좋다… (4가 맞으면 맞음)
(6) 따라서 이 구절(엡 2:8)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를 빼고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구원을 얻었나니“로 함이 좋다. (틀림)
(7)“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구원을 얻었나니“로 성경을 바꾸었다. (틀림)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예정을 믿는 다고 하며 (에베소서 2:8)의 성경 말씀을 바꾸었다.
성경 말씀을 변경한 것이다. (마음속으로 일 지라도)
변경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 하면서…
어딘가 논리의 비약, 오류가 있다는 말이다.
(나도 이렇게 생각할 뻔 한 때가 있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은혜”와 “믿음”은 성경에 있는 대로 둘 다 똑같이 강조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숭이 xxx 가 백두산“이 된 것과 같게 된다. (우숩지 않나?)

(4) 번의 논리가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 오류가 들어 왔다.

(
이“예정”이란 개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여 택하셨다는 말(?)은
교회와 긴밀하게 관련하여 쓴 에베소서에 4 번 나온다.
그중 한 번(엡3:11)은 개인이 아닌 교회에 대한 예정을 말한다.
–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한, 그 부분이 교회에 대한 언급이니까 –

이것을…
많은 곳, 특정 개인의 믿음, 생각, 행동에 까지 확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 등과 예정이란 말을 논리적으로 잘못 연상, 확대 전개한 결과이다.
(“원숭이 xxx 가 백두산“이 된 것과 같다.)

특히 이 “예정”을 “믿음”과 같은 중요한 개념에까지 확대하면 논리 오류가 생긴다.
성경에 “믿음”이란 단어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신약에서 모두 명사로만 200번 이상, 동사로는 아예 세지도 않았다)
이“믿음”은 예수님께서 직접(복음서에서) 명령하신 것이 매우 많다.
물론 하나님께서 구약에 애가 타도록 말씀하신 것은 훨씬 더 많다.

이“믿음”이라는 말을 “믿음=하나님 절대 주권과 예정에 의한 은혜”라는 개념으로
무조건 대치(덮어씌워) 주장함은 엄청난 무리이다.

성경에 200번 이상 나오는 “믿음”을 단 4번 나오는 “예정”에서 유도된 개념인
“하나님 절대 주권과 예정에 의한 은혜”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믿는 믿음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으로 바꾸는 불신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

“그 은혜”를 하나님의 주권으로 강조 했으면
“믿음으로”도 인간의 마땅한 반응으로 성경에 있는 대로 강조하여 받아들여야 옳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으며 동시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에 다른 수식어를 붙여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으로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하려면
성경을 아주 아주 많이 이곳저곳 수정해야 한다.

우선 요한복음 1:12, 3:16절부터 바꾸고
히브리서 11장은 싹 없애고…
그리고 그 외에 무수하게 많은 성경 구절들을…

“믿음으로”를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라 하면서) 다른 말로 대치하는 것은
논리적 외눈박이 모순이다. (편협한 예정론의)

하나님의 절대 주권만 외눈으로(일목요연하게) 집중하여 논리를 펴나가는 모순이다.
두 눈으로 둘 다 보고 둘 다 인정해야 한다.
일견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보여도 성경에 있으면 둘 다 인정함이 옳다.

내 주장(교리, 믿음)과 다르게 보일 여지가 있다고 하여 나의 주장(믿음)에 맞게
성경의 다른 부분을 재단하려는 유혹을 떨쳐 버려야 한다.

내 논리에 의하면 모순이라고 해서 이미 써있는 성경을 재단, 재해석할 것이 아니라
내 논리의 불완전성 및 모순을 인정하고
그 두 가지를 다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 말씀을
나의 원칙, 교리, 논리로 재단하는 오류(죄)를 범한다.

과학 이론이 현실에서 실험으로 검증되어야 하는 것처럼
성경에서 유도된 논리는 성경으로 검증해야 한다.

성경 다른 부분이 내 논리(교리, 믿음)를 흡족히 지지 하지 않는다고 느껴서
그 논리로 성경 그 부분을 변조 재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야 한다면 단순 무식한 사람들이 어떻게 성경 말씀을 보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래서 지나친 예정론은 좋지 않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것이다.

(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정확하게)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관대하게)
모든 일에는 사랑으로
– 아우구스티누스 –

나는
성경이 반복해서 여러 번 말하면 본질적인 것,
아니면 비본질적인 것이라 정의 한다.
비본질적인 것으로 다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예정”과 “믿음”은 둘 다 인정하되
“믿음”을 훨씬 더 크게 외쳐야한다.
예수님께서 그러셨으니까.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내게 “하나님의 ‘예정’하심 부정하는 거야?”라고
내게 물어보면
“아니야, 나도 인정해” 라고 말할 것이다
– 성경에 4번이지만 명백히 언급했으니까 –

성경에 여러 번, 크게 말한 것은
나도 크게 말하고
성경에 조금만 말한 것은
나도 믿음으로 받아들이되
나도 작게 말하면 된다.

나는 칼빈을 읽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의 예정론이 여기 내가 말한 것 같지 않을 것이다.
현명하고 건전한 믿음의 그가 그런 논리를 전개했다고 상상할 수 없다.
만약에 그것이 그의 예정론이라면 그 예정론은 수정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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