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와 Allegory (그림자와 본체)

(골로새서 2:17) 은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라고
성경 알레고리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구약 성경에 나온 그 무엇들이 그림자이며
그 그림자로 본질(본체)의 특성을 미루어 짐작한 다는 것이다.
그 그림자의 본체는 대부분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2:17의 경우)

그런데, 이 세상에서도 그림자로 본체(몸, 실체)를 짐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1)
다음은 어느 집(건물)의 투시도(실체를 눈으로 본 그림)와
정면도, 측면도 이다.
정면도, 측면도를 까맣게 칠하면 그림자가 된다.

     

정면, 측면의 그림자를 보고 정면, 측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정면, 측면의 그림자를 보고 실체의 모습(투시도)을 상상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실체를 보고 그림자를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림자를 보고 실체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성경의 비유(Allegory)를 성경에 해석한 것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걸 믿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서 하는 말이다.

(예2)
다음은 비교적 간단한 나무토막의 그림들이다.
설계를 배우는 공학도들의 연습문제.
(공업도학: 공대 1학년 때 배운 과목)
평면도, 정면도, 측면도 등등을 까맣게 칠하면 해당 그림자가 된다.
그 그림자 6개를 다 보면 실물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림자 하나만으로는 실물의 짐작이 불가능하다.
(예1)의 결론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예3)
다음은 더 쉬운 예이다.
위의 세 개는 무엇의 도면(그림자) 일까?
답은 잘 생각하면 알 수있다.
(맞추셨습니까?)

그러나
한 그림자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다.
참 쉬운 도형인데도…

그러니까 한 개의 그림자를 가지고 실체를 알수는 없다는 말이다.

(예4)
이 예를 보면 전혀 실체를 알 수 없다.
모두다 그 나름대로 말이 되지만 틀렸다.
이런 것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억지 해석 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Allegory를 푼다는 것은 그림자를 가지고 실체를 알아낸다는 말인데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그 그림자(Allegory)를 만든 분(저자)는 그 그림자의 실체를 알고 있다.
그래서 성경의 비유(Allegory)를 성경에 해석한 것(성경 저자의 해석)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틀렸다.
그렇게 하는 사람의 말을 믿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게 성경 해석하는 사람의 말 듣지도 믿지도 말라는 말이다.

성경에는 비유가 참 많고 Allegory도 있는데
이 둘의 차이는 다음 그림과 같다.

비유에는 먼저 실체(본체)가 있다.
그런데 그것의 설명이 복잡해서 쉽게, 간단히 설명할 필요가 있을 때, 비유를 사용한다.
본체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그림자(측면도) 가 비유이다.
중요한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기타 상세 내용은 과감히 생략한다.
그래서 그림자가 된다.

앞에서 나온 물체를 잘 설명하기 위하여 6개의(최소 3개) 그림(자)가 필요하다.

예수님의 천국의 비유가 그래서 많다.
마태복음 13에는 이런 천국의 비유가 많이 나온다.
(그래서 Many faces of the Truth 이다)

“천국은 … 와 같으니 …”라고
(마태복음 13: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실체의 한 면만을 강조하여 간단히 설명하는 것이 비유 이며
한 비유는 실체의 모든 측면을 설명하지 않으며
한 비유로 실체의 모든 측면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에…
Allegory(알레고리)는 실체(본체)에 대해 말하지 않고 …

“이런 것이 있다”하고 그림자(예) 만 보여준다. (알레고리)
그래서 그림자를 가지고 실체를 생각해 낸다. (알레고리의 해석)

그러니까 그림자를 만든 본인이 아닌 사람이 본체를 상상하면
다 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사사기 14:18의 삼손의 수수께끼를 못 맞추는 것처럼
제 칠일 해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갈지 아니하였더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

성경에 직접 해석한 것이 아닌 알레고리의 해석은 거의 모두 틀릴 수밖에 없고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의 말도 거의 모두 틀렸다는 말이다.

“내가 하는 알레고리의 해석이 올바른 하나님 뜻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하나님(저자)로부터 그 해석(계시)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
이런 사람들
자기가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은 사이비 교주 수준이다.
몰몬교주도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성경 보다 “내말이 최고다”하면 할 말 없다.
)

지금 이 설명이 내가 먼저 말한 “원자 모델”설명 보다 훨씬 쉽다.
진작 이렇게 말할 것을 …

성경에 직접적인 해석이 없는 Allegory도 있다.
그 해석은 성경의 다른 곳의 내용과 모순이 없을 때만 허용된다.
그러니까 성경 전체를 잘 읽어야한다.

(
나의 이 글을 보고
“너도 Allegory를 풀고 있지 않느냐?”고 하면
아! 이걸 어쩌나?
)

우리 말 성경에는 “알레고리”라는 말은 없다. 모두 “비유”라고 되어있다.
이 알레고리라는 단어는 KJV에는 꼭 한번 직접적으로 나온다.

(갈라디아 4:24)
[개역한글]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KJV] Which things are an allegory: for these are the two covenants; the one from the mount Sinai, which gendereth to bondage, which is Agar.

참으로 엉뚱하게 우수운 것은…
성경에 예수님이 모두의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실체)으로부터
교훈을 강조하여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들어 설명을 하셨는데 …
그걸 알레고리로 보고 한 번 더 뒤집어서 해석을 하고
(Allegorical Interpretation)
대단한 해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걸 좋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마태19:24-26)의
“낙타와 바늘귀”에 대한 웃기지도 않는 성경 해석이다.

낙타와 바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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