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실의 종말을…

(글 쓴 날: 2019.10.3)

(히브리서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나는 이 말씀을 주제로 하는 설교는 들어본 적이 없다
왜 일까?
사도 바울도 (고전11:1)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했는데…

한국에서도 개신교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모 교회 세습 문제 이후에 그 속도가 더 빨라졌다고 한다.

큰 교회가 돈귀신(mammon)이 지배하는 세상에 들어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가장 강력한 방해물은 바로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생각한다.
선의의 순수한 주님의 일꾼들이 피해를 본다.
어찌 생각하면 피해랄 것도 없이 다 같이 감당해야할 짐일 수도 있다.

사기꾼은 진짜 주의 종보다 훨씬 더 거룩하고 능력 있어 보여야 종교 사기를 칠 수 있다.
원래부터 그러기로 작정한 “양의 탈을 쓴 늑대”는 그렇다고 치자.

나는 교회의 신도, 성도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런 종교 사기꾼은 초대교회 시대에도 있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13:7,8 같은 주의 사항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10,20년이 지났어도 그 행실의 종말이 “양의 탈을 쓴 늑대“임이 판명 되면
교인(양들)은 즉시 도망가야(떠나야) 한다.
늑대가 날뛰는데 양떼가 흩어져 도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양은 바보라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오히려 늑대를 철석같이 믿거나 늑대의 하수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은 제 교회를 떠나면 안 된다고 별 말을 다할 것이다.
이단들도 똑같이 그렇게 주장한다.
돈이 없어야 돈 좋아하는 늑대가 다른 곳으로 전업하여 사라진다.

요즘 한국“기독교의 위기다”라는 말이 들리고, 내 생각도 그렇다.
밖에서 욕 참 많이 먹는다.

나 같은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누워서 침 뱉기라고 하면서 쉬쉬 하려한다.
혹은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고 성경을 써서 말린다.
너는 뭐 깨끗하냐고…

내 생각은 이렇다.
불이 나면 동네방네 크게 들리게 “불이야 !”하고 외쳐야 하고
늑대가 나타나면 “늑대야!”하고 외치고
적군이 쳐들어오면 파수꾼은 빨리 나팔을 크게 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말도 성경에 있는 말이다)
자기가 편한 곳에 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이야기를 바꾸어서…
대한민국 1930 – 1980 년대 까지는 기독교가 왕성했다.
부흥회, 기도원, 순복음중앙교회, 빌리그레이엄 전도집회 등등…
그런데 지금은 ….
그렇지 않다.

생각 있는 그리스도인 마다.
“기독교 이래서는 안 된다”
“다시 살려야한다”라고 말한다.

대책으로
“예배가 소홀히 되고 있으니 예배를 살려야 한다”
“예배가 살아나야 우리의 믿음이 교회가 산다”라고 외친다.
(교회에 사람이 오지 않으니 예배가 죽는 다는 거다)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영적으로 건강한 성인 부모(지도자)가 많아야 복음이, 교회가 살아난다”고 믿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죄를 미워하는 경건한 사람이 모여야 예배가 산다“고 믿는다.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 사람을 보면 교회가고 싶지 않은데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는 믿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겠는가?

마치 미성숙 부부, 중 환자 부부, 불임 부부가
아이를 낳겠다고 애를 쓰는 것과 같다.
그러면 아이는 낳을지 몰라도 아이가 자라지 못하고 일찍 죽을 테니
결과적으로 인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먼저 믿은 성장했다고 하는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삶의 질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핵심이 된다.
아무리 사람이 많은 곳, 고기가 많은 곳에 가면 뭘 하나
그들이 내 진면목을 보면 예수님 믿고 싶지 않은데…
하나님의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불신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
(언제나 믿지 않는 사람은 있는 게 세상이다)

그런 것이 아니고…
영향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종교 지도자가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믿는 나와 네가 문제인 것이다.
교계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추한 모습은 더욱 큰 문제가 된다.
(나는 교계에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결코 아니나 이런 글을 쓰니 도의적 책임이 있다.)
내가, 당신이, 우리가 복음의 전파를 가로 막는 원흉이다.

(
야곱이 자기의 양떼를 늘인 교활한 꾀를 보라… – 나쁜 예이지만 –
튼튼한 양이 새끼를 밸 때는 점박이, 얼룩무늬 있는 양을 낳게 하고
비실비실한 양이 새끼를 밸 때는 그냥 보통 양을 낳게 만들었다.
– 물론 하나님이 도와 주셨기는 하다 –
어미 양이 튼튼해야 튼튼한 새끼양이 태어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부실한 새끼가 태어나거나 아예 유산을 하고 새끼가 태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야곱의 양떼는 많아지고 라반의 양떼는 줄었다.
(창세기 30:41-43)
41. 실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떼의 눈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으로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약한 자는 라반의 것이 되고 실한 자는 야곱의 것이 된지라
43.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
)

내가 부정하고 부정한 돈 좋아 하는데 어찌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가 태어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귀한 하나님의 자녀를 맡기시겠는가?
혹, 그렇다면 순전히 영혼을 사랑하시는 가슴 무척 아프신 하나님의 은혜이지
부정한 사람(목회자?)이 자랑할 그의 공로가 결코 아니다.

왜 복음의 지지 부진을…
왜? 애매한 물고기에게, 어린 양들에게 책임을 돌리나?

(
전도하지 말자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오해 없으시길…
)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믿고 그가 전하는 성경 말씀을 들어서
믿음을 키워 왔는데…(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들은 대학생들 아르바이트해서 한 헌금.
졸업하고 회사 갓 취직해서 힘겹게 한 헌금.
그 돈으로 아마도 사회의 1-2% 이내의 부를 유지하며
하나님을 등에 업고 이 세상에서 부요하게 살았으니…
그런 것을 보고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 20년 이상 걸렸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다른 진실한 무엇이 있겠지 하고…
(참 둔하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너무 너무 못살았던 시절
1950-60 년대 무당 비슷한 기복신앙 추구, 부흥의 부작용에서 돌아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것을 앞서 지휘했던 지도자들의 추한 악취가 점점 풍기는 때.
그래서 의식 있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언가 생각할 때.

1970-80년대 하나님 말씀과 주님께 헌신, 제자 훈련으로 돌아서는
교회 밖의 대학생 선교 운동.
그 모든 불같이 타오르던 운동들은 그 지도자들의 행실의 종말이
개인의 사욕을 추구한 것으로 들어나며 쇠락의 길로 간다.
(그 아까운 운동들이…)
지금은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실들은 1-2년 짧은 기간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 짧은 기간 동안에는 누가 보아도 헌신적이고 열심이다.
(열심히 숫자와 세력을 키워야 하니까)
10, 15, 20년이 걸린다.
따르는 사람의 숫자와 재정적인 여유가 생길 때까지.
돈과 세력(숫자)에 있어서 자신이 있다고 느끼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혹은 서서히 변질 된다.

(
그것은 박테리아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 예를 들어 피부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도 수 적을 때는 얌전히 있다가
숫자가, 세력이 어는 정도 불어나면 독소를 내뿜으며
활발하게 활동 하여 병을 일으킨다.

인간의 집단도 박테리아처럼 행동을 한다.
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로
커졌을 때가 위험한 때이다.
)

어디 그 뿐인가.
이 사회의 유명한 교회 지도자 목사들…
누구는 주일 하루 요리사를 고용해 쓰는 점심 식사비용이 몇 천만원 이라 던데…
이런 일이
설마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하고 기다리다가…
5년 10년 20년이 가고…
그러고 나서 나타난 결과가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돈귀신(mammon)의 종이었다“라면
그를 보고 하나님께 나온 사람은 그 감정이 어떻겠는가?
그 정신적인 충격은 몇년 내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믿음의 기반이 흔들리며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내가 받은 마음의 충격은
내가 권하고 믿음의 삶을 나누었던 어느 형제가 말하기를
“믿음 좋고 똑똑한(사실은 매우 어리석다) 좋은 학교 나온 네가
그런 것을 알아서 나를 인도해냈어야지, 하나님 앞에서 네 책임 아냐?“라는
질문을 10-20년 후에 듣는 것이다.
그때 마음속의 충격은 뭐라 말로 하기 어려웠다.

힘없는 조그만 목소리로
“나도 그 땐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생각했다”라고 밖에는…
나는 우리 주님께서 나를 그렇게 책망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장본인은 그런 것 꿈에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알았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양심이 굳을 대로 굳어졌을 테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다고 자기 최면을 걸 것이다.

이런 일을 직접 안 겪었어도
그것을 소문으로라도 들은 불신자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교회 오고 싶지 않고, 예수님 믿지 않으려 할 것이다.

파급 효과 큰 소위 유명 교계 지도자의 추한 민낯이 복음을 막는다.
양의 탈을 쓴 늑대가… 그것도 한 둘이 아니고 여기저기 있으니.

나는 그들을 어찌 하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찌하기에는 그들은 가지고 있는 세력이 너무 크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함은 세상 풍조의 거대한 흐름에 역행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그 교묘한 죄상이 명백하게 들어나는 때가 오랜 기간(10,20년)이 걸리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의 죄가 자손 3-4대까지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회복하는 데도 그 만큼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Long time process이다.
꾸준히 참고 실천하며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급격한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

(
늑대가 교인을 바보로 여겨 후린 것이나
평소에는 교인을 어린아이 취급을 하다
-사실 어린애가 무척 많다. 영적으로 기르지를 않아서-

위기에는 교인들이 더 힘쓰라고 강조하는 목회자나
기본적인 태도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위기에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 뭔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착 달라붙는 수밖에…

선원은
태풍 속에서 선장을 바라본다.
태풍을 보지 않는다.

어린이는 위기 때 본능적으로 부모를 바라본다.
그런데 평소에 교인을 동료로 생각 않고
어린 아이 취급을 하다가(Yes man만 시키다가)
위기 때에 너도 나서라 하면 될 말인가?

– 그 목회자도 영적 미숙아라는 뜻이다.
부모라면 그런 태도 보이지 않는다
“아빠가 어떻게 해볼게“해야 한다. –

그리스도인을 건강하게 양육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기의 회복은
한걸음씩 나가야하는 Long Process다.
오래 견디어야 한다.
)

주님의 종을 자처하는 분은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야 한다.
썩은 밀알은 많은 열매를 아마도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 열매를 살아서는 보지 못하셨다.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 열매를 내가 누리려 하면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되기 십상이다.
늑대는 양을 잡아먹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빨리 키우려고 한다.
양을 경건히 튼튼히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 열매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자기가 실컷 누리고
자손에게 물려주려는 악한 마음가짐과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로 막으며 “가나안” 성도를 만드는 것이다.
“가나안” 성도가 왜 생기겠는가?
그들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교회에 갈 수가 없기에 생기는 것이다.

대단히 송구한 말이지만
스스로 주의 종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거룩한 삶과 오랜 기간의 희생이 없이는 대한민국에서 복음은 압사할 것이다.
순교가 목이 잘려 죽어야만 순교인가?
평생을 외줄 타기 하듯이 주님만 섬겨 거룩하게 사는 것도 순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나 유혹에 빠질 완벽한 준비가 되어있기에 힘써 근신하여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세대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살아있는 순교자를 요구한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정말로 죄송스럽다.
(
일반적으로
주님의 종을 자처하면서
교우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으로 생활하면서
양 떼들 보다도, 그 사회 상위층의 부요를 누리며 사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야할 죄악인 것이다.

그렇게 살고 싶으시면
주님 이름을 팔지 말고
세상 돈벌이를 하시라!
예수님의 이름 팔아 세상에서 부요하게 살려 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 망령되게 사용하는 죄다.
하나님의 이름 망령되게 사용하는 사기행각이다.
)

나는 평신도라고 그렇게 안 하면서 희생을 요구하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
평신도라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물질을 제 맘대로 휘둘러서 되겠는가?
그러나 그럴 각오가 없다면 자기가 별도로 경제 활동을 하여
자비량으로 주님을 섬길 것을 제안한다.

경건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과 주님만을 사랑하는 주님의 종이
죄를 미워하는 주님의 종이
너무나도 아쉽고 참 많이 필요한 때다.
네가 그런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
물론 보이지 않게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심을 믿어 의심 않는다.
이 시대에 믿음의 남은 자가 있음을 믿는다.
)

“눈을 들어 하늘보라”찬송가 (2절)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 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죄를 대속하신 주님 선한 일꾼 찾으시나
대답할 이 어디 있나 믿는 자여 어이할꼬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주님의 은혜로 헤쳐 나가야 할 현실이고…

(
비록 평신도라 하더라도
이런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내가 한 말에 대하여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보아도 나도 형편없는 같은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두서없는 이런 글을 쓴다.
안 해도 다 아는 진부한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닌가?

나도 이런 글을 쓰면서 두렵다.
“이것이 어떤 형태로든 내 이야기가 되면 어쩌나?”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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