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gory 해석의 허용

Allegory 해석의 허용에 대한 나의 의견이다.

(1) 성경에서 해석해 보라고 한 경우

내가 아는 바로는 이런 예는 딱 한 번뿐이다.
(따라서 의미가 없다. 재미로 이 말을 썼다)

(요한계시록 13: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

짐승의 숫자 666의 해석: 성경에서 세어 보라고 했다.
그러니 무엇이라 해석해도 시비 걸 필요 없다.
많은 사람이 해석할 것이고 얼마 후 “허허“하고 웃고 무시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각 개인의 선택이다.

(
내 생각에는
“해볼테면 해 봐라“하는 말은 반의적 표현으로
“틀림없이 못할 것이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3: 18)은 “한번 해 봐라 다 틀릴 것이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 말도 틀렸을지 모른다.
)

그래도 성경 다른 곳의 교훈과 대립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면 “해석이 이러니 어떤 불의한 일을 하자” 등등.

(
나는 666을 포함한
요한계시록의 해석은
아, 재미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

(2) 성경에 해석이 없는 경우

예를 들면, 아가서의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 이것은 문학적인 표현으로
이것은 Allegory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 해석이 성경의 다른 부분에는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가서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이런 경우가 시문학에는 상당히 많다.
시 문학은 포괄적, 추상적, 은유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때가 많다.

성경에 직접적인 해석이 없으므로,
성경 다른 곳의 교훈과 대립되지 않는 범위에서 알레고리의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그 해석을 다 믿을 필요도 없다.
그걸 해석하고 “이것이 유일한 해석이며 성경의 유일한 교훈이다“라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면 그분의 말을 믿지 말아야 한다.

(3) 자기 개인에게만 국한하여 적용하는 경우

알레고리를 해석한 본인 자신에게 만 국한하여 해석, 적용하는 경우,
이 경우
잘 했으면 자기가 잘 한 것으로 좋고, 뭔가 잘못되어도
자기 자신에게만 국한되고 남에게는 별 영향이 없으니 문제가 확대되지 않는다.

이 경우도 성경에 이미 해석이 되어 있는 경우에는 재해석 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경 다른 곳의 교훈과 대립되지 않는 범위에서 알레고리의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내 글 “성막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출애굽기의 알레고리의 해석이다.

여기서, 나의 알레고리와 해석은 다음과 같다.
(홍해를 건넌 것): 내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은 것
(40년간 광야 생활): 하나님께 가기까지의 살아있는 동안 나의 인생길.
(성막): 하나님께서 나의 안에 계시기 원하셔서 내 안에 임하여 계심.
이것은 분명히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알레고리칼하게 해석한 것이다.

나 자신이 그렇게 여기고 근신하여 살겠다는 것이지 일반적 원리로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분도 그렇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는 반대하지 않는다.
또 이것이 출애굽사건의 유일한 의미이며 해석이라고 전혀 주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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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Allegor로 해석하고 그것을 듣는 사람이(청중이)
그 해석을 한 사람 혹은 그 외의 누구인가에게
그의 해석을 따라 무언가를 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자기의 주장을 따르고 실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거의 확실히 거짓이며 위험하다.
그 저의 가 매우 의심스럽다.
직 간접적으로 특정인에게 돈, 특권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내포되어있으면 틀림없이 거짓이다.

나는,
알레고리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을 일단 경계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도 그렇게 해석한 것이 있으면서… 자가당착의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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