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을 두 번 처서? (성경의 문맥)


민수기 20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 가데스에서

마실 물이 없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 가기 바로 전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모세는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하시지도 않았는데
반석을 두 번 쳐서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 성경공부 시간에 누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의외로 그렇게 말하고 설교를 하는 사람(목사?)이 많았다.
그러니까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교인도(열심인 교인) 많을 것이다.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 가 찾아보았다.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낸 것은 두 번이다.
출애굽기 17장과 민수기 20장이다.

두 번 다 반석을 지팡이로 쳤다.
출애굽기 17 장에는 몇 번 쳤는지 기록이 없다
(
대개 한 번만 쳤다고 짐작하는 듯하다.
뭐 한 번이라고 해도 좋다.
횟수는 상관이 없으니 기록하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한다.
)
수기 20 장에서는 두 번 쳤다고 기록되어있다.
(한번만 쳐야 되는 데 두 번 쳤나 ? 하고 생각한다)

(출애굽기 17:6.7)
6.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민수기 20:1-13,24)
1 정월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서 백성이 가데스에 거하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 장사하니라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 하였도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 모세와 아론이 총회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대로 여호와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하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24 아론은 그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연고니라

여기에서 반석을 두 번 쳤다는 기사를 보고 거기에 집중하여 (꽂혀서)
아! 하나님께서 반석을 한번만 치라고 하셨는데 두 번 치는 불순종을 하여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것이 틀림없어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성경에는 반석을 두 번 쳐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기록은 없다.
이 사건과 관련된 성경구절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민수기 20:12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민수기 27:14 “내 명을 거역하고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신명기 32:51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
시편 106:33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이 구절 중 어디에도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쳐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말은 없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록 되어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민수기 27:13,14)
13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 것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1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신명기 32:50,51)
50 네 형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51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

(시편 106:32,33)
32 저희가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저희로 인하여 얼이 모세에게 미쳤나니
33 이는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반석을 두 번 친 것이 지나친 과잉 반응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원인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모세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 그렇게 기록하셨을 것이다.

속으로는 반석을 두 번 친 것이 괘씸한데 겉으로는 “내 영광을 나타내지 않아서”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너무도 이상하지 않은가?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믿는다.
사람처럼 본심은 뒤로 숨기고 겉으로 다른 이유를 말씀하는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후세에 성경을 읽는 우리를 위하여서라도 분명하게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반석을 두 번 쳐서 그랬다고 이해하는 것은 오류이다.
나의 짐작, 선입관으로 성경의 기록을 무시하거나 오도하는 것이 된다.

오랜 기간이 흐른 뒤에 시편기자도 시편 106:33 에서
분명하게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라고 말한다.(해석했다)

이와 반대되는 예를 들면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큰 소리로 기도하셨다.
그 이유는 둘러선 무리가 믿게 함이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요한복음 11:41-43)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심에도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실천하시었다.

그런데 모세는 불행히도 단 한번 이점에서 실수를 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점을 지적하시었다.

성경은 성경이 해석한다.
성경에 있는 것과 다른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말로 변조하는 것이다.
유명인, 권위자(목사?)임을 앞세워 달리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동이며
성경을 읽지도 않는다는 증거이다.

자기 선입관으로 성경을 곡해하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성경의 문맥을 떠난 성경의 이해는 성경의 이해가 아니다.
성경 내용 일부를 발췌 변경하여 자기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다.

마귀는 창세기 3장에서 하와에게,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 그 방법을 사용했다.
마귀가 한 것과 같은 짓을 성도가, 목사가 오류로 라도 범해서는 안 된다.
요즘의 많은 매스컴, 정치인 등등이 하는 거짓말과 같은 것이다.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주의 종)이라고 자처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읽고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유명한 누구의 말을 멋이 있다고 반복할 것이 아니다.

성도가 이런 것을 분별하려면 성경 열심히 읽어야 한다.
설교를 들은 다음에는 그것이 그런가하고 성경을 찾아보고 생각해야 한다.
사도행전에서 베뢰아 교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도행전 17:11)
만일 주의 종의 말씀 틀린 곳을 찾으려고 하는 나쁜 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 말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본분을 망각한 교만한 자일 것이다.
(
이 바쁜 세상에 안타깝게도 그런 교인 찾기 어려우니 설교 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말씀의 선포(설교?)는
예배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나님께 경배하러 오는 것이지 설교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조금만 맞고 많이 틀린 의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에 갑자기 설교자의 지식, 지혜, 영성(?)이 정지해서 정말 할 말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온 교우가 그대로 다 같이 읽어도 매우 좋다고 믿는다.
인간의 생각으로 오염된 말 보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듣는 것이 낫다.
)

요즈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설교에 이런 엉터리가 참 많아서 분별력이 중요하다.
나의 이 주장도 역시 인터넷에 올라와 있으니 성경에 제대로 있는 것인지 확인해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잘못을 잘못이라고 알려 주면 나도 나의 의견을 정정할 것이다.
(
목사도 아닌 것이 … 하고 권위로 밀어 붙인다면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이 혹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천박한 종교 이기주의자라고 할 것이다.

)

나의 주장을 목사, 설교자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생각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거짓, 변조된 교훈이 너무나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 “반석을 두 번 쳐서 그랬다”는 애교 수준이다)
성경의 내용을 변경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성경의 문맥을 벗어난 주장 해석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 내용에 아름다운 피부와 같은 내용을 추가하지 않는다.
뼈대가 되는 중요 내용을 변경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뼈대를 변경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피부를 입혀도 그것은 괴물이다.

그렇게 성경의 내용을 변경하며 설교하는 것을 성도는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려면 평소에 꾸준히 성경을 잘 읽어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경 문맥의 중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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