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충만

(재능과 은사”의 계속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성경의 명령이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그런데 명령은 있으나 어떻게 하면 성령의 충만의 방법은 성경에서 찾기 어렵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예는 성경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행동을 따라 하면 그것이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성령이 충만해서 방언을 했다니까
나도 방언을 하면 성령이 충만한 것이 아닌가?
성령 충만의 가면을 썼다고 해서 내가 성령이 충만한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은사와 개인 적인 경건, 성령 충만은 무관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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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과 은사

성경에 나타난 성령 충만의 예를 찾아 본다.

(1) 세례요한, 엘리사벳, 사가랴 그리고 예수님의 예
따라 해보기 쉽지 않은 예이다.

(누가복음 1:15)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누가복음 1: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누가복음 1: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누가복음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사도행전에 나타난 제자들의 성령 충만의 예.
이것들은 성령 충만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Output)이지 어떻게 성령의 충만을 받느냐(How)가 아니다.
따라서 성령의 충만의 방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도행전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4: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사도행전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사도행전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행 6: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행전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사도행전 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사도행전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3) 제자들은 기도 한 후에 성령이 충만해 졌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를 한 후에도 맹숭맹숭한 것 잘 알고 있다.
기도 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것인가?

(사도행전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4) 사도 바울의 경우 아나니아의 안수 후에 성령이 충만해 졌다.
아나니아 같은 주의 종을 찾아야 되나?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
(
내가 안수해서 성령 충만을 받게 해준다고 하는 사람은
종교 사기꾼일 가능성이 매우매우 크다.
그러니까 헌금(돈)을 내라고 …?
)
사도 바울과 아나니아의 특이한 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도행전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그런데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은 성경의 명령이다.

(에베소서 5:18-20)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에베소서 5:18)은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분명히 명령하고 있다.
성경의 명령이다.

그런데 다음의 성경 구절을 보면…
(골로새서 3:16,17)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에베소서 5:18)의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와
(골로새서 3:16)의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의
결과가 똑 같다.
주의해서 생각해 보아야하지 않겠는가?
왜 그럴까?

(에베소서 5:19-20)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골로새서 3:16하,17)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의 역사가
예수님을 증거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즉, 성경 말씀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의 충만,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것은
성령 충만의 필요조건 이라고 믿는다.
말씀에 불순종하는데 어떻게 성령의 충만이 있을 수 있겠는가?
(
구약 시대에는 불순종해도 동물에게도 성령의 역사(충만?이 아님)가 있었다.
발람의 나귀가 말한 것과 사울왕의 예언이 그런 예이다.
)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4:29,31)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성령은 근심하실 수 있다. 그래서는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없다.
언제 성령이 근심하시는 지는 명확하지 않을 수 있으나 앞뒤 구절을 보면…
“더러운 말,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훼방(하나님을 비방함), 악의“
이런 것들이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은 문맥상으로 보아 분명하다.
명확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이리 많은데 모르는 것에 관심 둘 필요 없다.

(데살로니가전서 4:16-20)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성령(의 역사하심)은 불을 끄듯 소멸될 수있다.

그래서는 성령의 충만은 있을 수 없다.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도 여기 한번만 나오기 때문에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그것이 무엇인지 합리적인 믿음으로(?)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아마도 거의 “주님께서 내게 어떤 선한 일을 하도록 마음속에 동기를 불러일으키실 때에”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내가 그것을 주저주저하며 거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가 아니고 (이사야의 태도)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일 것이다. (모세의 태도)

아마도 앞 뒤 구절의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반대 되는 행위들도 “성령을 소멸하는 행위”라고 생각된다.

논리적으로 성령의 충만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풍성히 거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 역사가 나타나는 방법은(예를 들면 성령의 은사의 나타남 같은 것은)
오로지 성령님의 주권 사항이다.
내가 신경을 쓸 일이 아닌 것이다.

성령 충만의 첫 계단은 “말씀의 충만“이다.
“성령 충만=말씀 충만” 이다

첫 계단을 오르기 전에는 두 번째 계단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물론 성경을 섭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
제가 찾을 수 있는 성경 구절은 다 찾아서 기록했습니다.
보시는 분이 성경에 입각해서 객관적으로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혹, 관련 성경 내용 중 빠진 것이 있으면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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