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성경의 섭취5)

(시편 1:1,2)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순종하고 따라야할 명령이다.

묵상, 명상, 상상, 공상, 참선 …
모두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성경의 묵상을 여호수아 1:8로 정의한다.
“성경에 기록한대로 지켜 행하기 위하여 성경을 깊이 생각하는 것”

(여호수아 1:7,8)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 말씀의 묵상은
어떤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의 방향과 목표가 분명한 것이다.
이점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묵상과 차이가 있다.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한다”
무슨 의미일까?
여호수아는 여호수아 1:7에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명령을 하나님께로 받았다.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순종하기 위해서는 묵상이 필요했다.
무엇을 깨닫기 위한 묵상이 아니라 순종 실천을 위한 묵상이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을 성공적으로 순종 수행하기 위한 묵상이었다.

성경시대 2000 – 6000년 전의 우리나라도, 동양도, 서양도 아닌
중근동지역의 문화 풍습 속에서 그때 그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때 살았던 여호수아가 주야로 묵상해야만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기록한대로 지켜 행할 수 있었다면
나는 더욱 더 그래야 할 것이다.

그 당시 하던 것을 21세기 오늘의 관점에서 그 시대로 돌아 가 지킨다는 것도 비논리적이고
오늘의 관점에 맞추어 편하게 내 맘에 맞게 고쳐 지키는 것도 비 성서적일 것이다.

그 옛날 방식으로 문자 그대로 지키려는 열심과 믿음으로 힘쓰는 분이 혹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 바보야 그렇게 꼭 막혔냐?”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랑하시어서 축복하시고 인도하시고 깨닫게 해 주시리라 믿는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그렇게 하라고 다그치면 문제가 될 것이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는 것”
이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믿음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옛날(5-6000년전?) 그 당시의 여호수아가 그랬다면
오늘을 사는 나(우리)는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이것이 묵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 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기 위함이다)

묵상은 대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자녀일 수도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필요로 하여 사랑하는
“돈“일 수도 있고,“명예”일 수도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묵상의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
개역 개정 성경 시편 119편에 “묵상”을 모두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로 바꾸어 놓았는데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뭐, 중얼중얼 해도 묵상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정서로는 도저히 묵상이 아니라 암송의 반복이나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이 느껴진다.
)

묵상의 대상은 성경 말씀이며
목표는 온전한 순종이다.

대상이 없는 묵상은 상상의 나래를 편 공상일 뿐이다.

(1) 듣고 – 묵상할 수 있고
(2) 읽고 – 묵상할 수 있고
(3) 공부하고 – 묵상할 수 있고
(4) 암송하고 – 묵상할 수 있다.

앞의 4가지 방법과 병행하여 자동적으로 묵상이 된다.
성경의 내용을 이미 가지고 있지 않으면 묵상은 할 수 없다.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요한복음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주님의 계명(말씀)을 가지고
(
듣고, 읽고, 공부, 암송…
묵상을 하여
)
주님의 말씀을 지키면(순종하려면)
하나님, 주님의 사람을 받을 것이며
주님께서 주님 자신을 나에게 나타내 주신다.
(
주님을 더 잘 알게 된다.
깨닫게 된다.
믿음의 발전이 있다

찬송가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Blessed assurance)” 2절에서는
“Perfect submission perfect delight”
“완전한 순종 뒤의 완전한 기쁨“
라고 노래했는데 …
한글 번역에는 “주안에 기쁨 누림으로”라고 뜻이 퇴색되게 번역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uyf1YQvcwY
)
라고 이해된다.

여호수아 1:8 과 요한복음 14:21 은
4000년 정도의 시간 간격이 있는데도 매우 비슷하다.
거기서 2000년이 지난 오늘 날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묵상의 대상은 성경 말씀이며
목표는 치우치지 않은 온전한 순종이다.

묵상의 방법 질문들이 있는데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름을 기억 못 하는 어느 분의 묵상 지침인데
우리교회 BIBLE TIME(성경읽기 Program)의 묵상 가이드 이기도하다.

1. 고백해야할 죄 (Sin to confess)
2.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사실 (Learn about Jesus)
3. 주장해야 할 약속 (Promise to claim)
4. 순종해야 할 명령 (Command to obey)
5. 따라야 할 본 (Example to follow)
6. 피해야 할 잘못 (Mistake to avoid)
7. 감사해야할 일 (Thankful for today)

성경 말씀의 내용 중에 나에게
이 7가지 중 몇이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생각이 막히는 분들을 위한 질문인데
이 7가지 질문에 모두 답을 찾는 다는 것은 무리이다.
아무 것도 생각이 안날 수도 있고
7가지가 모두 떠오를 수도 어쩌다 간혹 있을 것이다.
그냥 지침이지 꼭 이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7가지 질문에 모두 답하려는 분은 성경의 묵상, 순종의 연습이 잘 안 된 분일 것이다.
그 태도는 좋으나 너무 마음에 부담이 된다.
어느 방법에 집착하는 것은 좋지 않다.
방법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묵상을 위한 성경 습득 방법 중 제일을 뽑는다면 나는 성경읽기를 추천한다.
그것도 정독 보다는 다독을 …
많이 읽을 것을 …
지루해도, 이해가 안 되어도….
많이 읽을 것을 …

내 스타일은 초식 동물처럼 기회 있을 때 많이 읽고 틈틈이 묵상하는 것이다.
(묵상, 반추, 되새김 질)

장점은 성경의 내용을
균형 있게 왜곡 없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 전체를 보는 시야가 생기기 때문이다.

문맥과 떼어서 한 단어, 한 구절만 묵상을 하면
이상한, 편견이 들어간 이해를 하기가 매우 쉽다.

유명 신학자 그런 분들이 불교 힌두교 도교 등등 비슷하게
오묘한 깨달음과 묵상을 연결하여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묵상에 대한 정의를 읽어 보면 아주 복잡하고 읽고 나서도 뭔 말인지 어리가 어지럽다.

아마도 아직까지도 영지주의 비슷한 영향인 아닌가 한다.
헤르만 헷세도,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도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묵상은 명백하다.
하나님을 더 잘 아는 것 보다는,
하나님께 어찌하면 온전히 순종하느냐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있다고 본다.

깨달음 지혜를 추구했던 하와와 아담은 죄로 갔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이루고자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셨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교회에도 뭔가 뒤틀린 묵상에 대한 개념이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몇 구절 QT 하면서 묵상을 깊이있게 하라고 하면 …
뭔가 심오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으로 움직게 된다.
오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QT가 잘못은 아니다…

(어떤 질문에 대한 답변)

성경이 말하는 묵상은 심오하지 않은 것 같아요. 기록된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순종하려면 나(남들 말고)는 어떻게 하나? 정도로 직설적입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봐도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스스로 속이고 견강부회하고 등등, 복잡한 논리를 전개하는 것 같아요. 다른 종교 어찌하는지는 살펴볼 여력 없습니다

뭔가 우리 능력에 넘치게 심오하면 실천이 어려워요, 실천적인 것은 비교적 단순할 수 밖에 없는듯. 하긴 내 머리가 그정도를 넘지 못하거든요.

좋은 것을 담기 위해서 덜 좋은 것을 비우는 것이지요 그냥 비우기만 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위기를 만나면 중요한 것이 뭔지 확 들어나서 덜 중요한 것 마구 버려서 자신을 비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자신을 비우는 분은 현인, 철인, 성인이 되겠지요. 저같은 필부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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