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기도


주님,
생각해 보면

오래 전
철모르는 어린 나이에
성경에 약속된 영원한 생명이 좋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약속이 좋아서

지옥 가지 않고
주님과 영원히 산다는 약속이 좋아서
주님을 믿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제가 생각해도
매우 이기적 이지요
그런 저를 그때나 지금이나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읽으며

(창세기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세기 5장에서
에녹이 300년을 변함없이 주님과 동행하며 살았다는 성경 구절을 보고
어린 나이에 그게 참으로 멋있다고 느껴서
그렇게 살아 보고 싶어서

나도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어여삐 보시고
저의 그 기도 들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주님 모시고
이 세상에서 살아오면서
감히 드러내 말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속으로
돈을 좋아했습니다.
명예를 사랑했습니다.
(위선입니다)

권력은 ….
저와는 아주 멀리 있다고 여겨서
미리 겁먹고 포기했던 것일까요?
아마도 권력은
감히,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감히, 사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은근히 속으로 좋아했던
돈, 명예 별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런 속이 얕은 존재인 저를
오늘 날까지 뭐라 꾸짖지 않으시고
손 붙잡고 와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필요한 만큼
제가 죄에 빠지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재물도
항상 허락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이율배반적인 욕심입니다)
그 은혜 감사드립니다.

어렸을 때 외우며 주님께 기도했던 성경 구절을 기억합니다.

(잠언 30:7-9)
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예레미야 9:23,24)
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솔직히
어렸을 때는 이 두 말씀을 기억하며 하는 기도가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는 채
멋있다고 느껴서
이 성경 구절을 외우면서
이렇게 살겠다고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기도 들어 주셨습니다.

그것 말고 이렇게 주님께 구할 걸 하는 생각 가끔 합니다.
이런 기도가 옳지 않다 생각하고 있으며
저의 성향과 다르니 이런 기도는 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만약 그랬으면 어땠을까 생각 합니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구요.

(역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주님을 믿고 살아오면서
주님께 감히 구하지는 않았지만
주님께서 제 마음을 알아서 허락해 주신다면
저의 노력과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양손에 부와 명예 둘 다 붙잡았으면 하고
때때로 마음속으로 갈등하며 엎치락뒤치락 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지켜주시지 안으셨으면
저는 죄를 지어도 한참 짓고 살아왔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유혹에 넘어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저를 시험에 들지 않게 지켜주시는 은혜를 감사합니다.

(마태복음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백세시대라고 해도
이제는 나이를 먹어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세상 부, 명예는 제게 불가능하다 여겨서 일까요?
그런 것에서 마음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완전히 자유롭다고 장담은 못합니다마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나이 듦의 은혜인 줄 믿고 감사합니다.
늙어서 제가 자랑하고 의지했던 저의 변변찮은 능력들이 쇠잔함과 함께
헛된 욕망이 좌절되고 절제 되는 것을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그 욕망들을 포기하겠습니까?
나이 듦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필요한 모든 공급의 근원이 되시기에
주님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사모했습니다.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는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젯밥에만 마음이 있다”는
말과 같이 주님 보다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간의 나이 70 작은 나이가 아닌 데도
사심이 없다고 장담을 못하는 부끄러운 존재입니다.
아직도 속물입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양파 껍질 까듯이 까고 또 까는 비생산적인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주님. 이제는
주님만 사랑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길 원합니다.
주님만 사모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믿을 때도 주님의 은혜였고
그 믿음을 유지하는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의 이 이중적이지만
그 속에 아주 작은 진실이 있는 것도 주님께서 아십니다.
주님 가상히 여겨 받아 주시옵소서.

(시편 104:34)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

주님
은혜로 저를 빚으셔서

주님만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도록
은혜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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