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기도

모세, 아브라함, 야곱의 기도를 생각한다.

모세, 아브라함은 민족을 향한 사랑, 혈족을 위한 사랑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고 매달렸다.
야곱은 자기의 복을 위해 천사(하나님)을 잡고 매달렸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속된 말로 체면 불구하고 하나님께 개겼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가 아니라 확실한 답을 들을 때까지 매달렸다.
용서하시는 증거를 거듭 거듭 구했다.
아브라함도 그랬지만
모세의 기도는 정도가 훨씬 더 심하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 들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도 빙빙 돌려가며 증거를 더 요구했다.
그만큼 모세는 동족 이스라엘 죄악이 큰 것을 절감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진노가 크신 것도 절감하고 있었다.

모세가 40일간 산위에서 하나님을 만나 십계명 돌 판을 받아 산을 내려 온 때였다.
40일 동안 지도자 모세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
모세는 진노해서 십계명 돌 판을 (무엄하게) 깨뜨려 버렸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전멸 시켜버리겠다고 하셨다.

그때 위대한 사랑의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출애굽기 33:12-20)
12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데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15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위에 섰으라
22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모세와의 기도, 하나님과의 대화는 처절해서 가슴이 울컥한다.
모세의 심정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나만 그런가?)
분노한 아버지에게 큰 누님(형님)이 사정사정 매어 달리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말로만이 아니고 정말로 용서해 주시는 지 확인하는 것 같다.
하나님이 품으신 분을 정말로 푸셨는지 확인하고 싶다.
혹시라도 분이 덜 풀리셔서 나중에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실까 염려하는 것 같다.
“정말로 진짜로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시는 거지요?”
라고 하기에는 너무 죄송해서 이리 저리 돌려서 말을 한다.

“제게 은총을 주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주의 길을 보여 주세요”
“제게 은총을 주신 것처럼 이 족속을 백성으로 여겨주세요”
“하나님께서 함께 가지 않으시면 저희도 올려 보내지 마세요”
“함께 안 가시면 하나님께 은총 입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동족을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체면이고 뭐고 없다.
그냥 마구 (개기면서) 떼를 쓴다.
(
성경을 조금 읽었을 때
모세의 이 심정을 짐작 못하고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왜 모세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나 생각했다
)

하나님도 그 심정 다 알고 계신다.
“그래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할게 염려 마“ 라고 하시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 얼굴 보여 주세요”
막 판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까지 떼를 쓴다.
하나님은 그것도 들어 주신다.

성경은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야기했다고 기록한다.
(출애굽기 33: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
모세의 기도는
인류를 위해 피땀 흘려 기도하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한다.
“아버지 하나님 제가 하나님과 끊어질 지라도 인간들을 용서하고 받아 주소서”
“저희가 하는 일을 저희가 알지 못하나이다”
)

그 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너 내가 써준 십계명 돌판 화나서 깨뜨려 버렸지?
네 맘 내가 잘 알아.
그거 다시 써 줄게 돌판 새로 깎아가지고 올라와.
하신다.

(출애굽기 3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깍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모세와 하나님의 대화는 참으로 은혜스럽고 감격스럽다.
이런 지도자(믿음의, 사회의, 정치의)가 간급하게 필요한 시대다.

나 자신도 내 가족, 주변 분들께
모세와 같이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솔직히 나는 그런 사람과는 참 거리가 멀다)

(
부모 된 자에게 자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무한 책임이다.
영광을 받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자녀로 인하여 자랑스럽고 기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지 못해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영혼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
그가 맡은 영혼은 하나님 앞에서 무한 책임이다.
그로 부터 어떤 형태의 영광, 유익을 기대하지 말아야한다.
주시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다.
아니 주셔도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큰 기적을 직접 목도한 이스라엘도 모세를 수시로 저버렸다.
그런 이스라엘을 위해 모세는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았다.
비록 내(우리)가 그렇게 하지는 못할 지라도
내(우리)가 추구해야할 마음속의
이상형 모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아브라함의 기도)



창세기 18장에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직전에
조카 롯을 위하여
아브라함이 빙빙 돌려가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장터에서 물건 값을 염치없이 깎고 또 깎는 것 같다.
체면이고 뭐고 없다.

(창세기 18:12-32)
20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24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 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이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이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식구만은 구해 주셨다.
(창세기 19: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야곱의 기도)


 

창세기 32장에는 400명의 무장한 부하를 거느리고
자신과 가족을 향하여 오는 형, 에서가 두려워서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천사와 씨름하고
축복해 달라고 질질 끌려가며 매달려 간구하는 모습이 나온다.

(창세기 32:24-26)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의 기도가 처절하고 대단하다고 생각 하고 기도의 본으로 보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야곱의 기도와 아브라함, 모세의 기도는 그 질적인 면에 있어서 확연하게 다르다.

야곱의 얍복강가에서 기도는
기도의 모범으로 삼기에는 무언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기도 않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온유한 지도자 모세와 그의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를 생각한다.

출애굽기를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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