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왕같은 제사장일까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직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이 선언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성경에 선언을 했으니 “아멘”하고 받아들이면 문제 없다.
그래도 이해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만이 하나님의 지성소(존전)에 나아 갈 수 있었다.
백성을 위하여 기도를 했고 제사를 드렸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 갈 수 있는 자격을 허락 받았다.
(에베소서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에서 은혜의 보좌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상징인 지성소의 속죄소는
시은좌(施恩座,Mercy Seat) 즉,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자리라는 뜻이다.
거룩한 하나님 앞이라는 뜻이다.
그 은혜의 보좌 앞에 제사장의 자격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라고 히브리서는 격려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 우리에게.

이것은 성경(베드로전서 2:9)의,
하나님의 선언인 것이다.
(이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는다면)

성경의 이 선언을
“만인 제사장 설(說)”
이라고 말하여 원칙, 진리가 아닌
여러 주장 가운데 하나인 설(說)이라고 변경하여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하나님께 대한 불경이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게 거룩한 제사장이다.
겸손하고 책임 있는 존재여야 하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존재이며
당당한 존재여야 한다.
(
성직자나 평신도의 구분이 없다.
이런 구분은 기독교가 오래 계속 되면서
전통, 제도, 질서유지의 필요 등에 의해 생겨났을 뿐이다.
물론 나는 그런 제도상 구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성경 본래의 의미를 인간의 제도와 전통으로
와전, 변질, 망각 시키는 것을 배격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하신 명령인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의 명령에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론 나도 이 명령 앞에서 송구스럽다)

(보충 설명)

성막 혹은 성전이 있었던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들은 두 번째 장막(지성소)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첫 장막(성소) 까지 만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는 예를 했다.
(히브리서 9:1,2,6)
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6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둘째 휘장 뒤의 장막은 지성소이다.
하나님의 임재,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이다.
(히브리서 9: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이 지성소는 그해의 대 제사장만 들어가서 하나님을 뵐 수 있는데
그것도 일 년에 한번만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히브리서 9: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이 성소에서 섬기는 제도는 완벽한 것이 아니며
예수님이 오셔서 그것을 완성하실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유효했다.
(히브리서 9:8-10)
8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예수님이 대 제사장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구약 율법의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닌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다.
그림자 지성소가 아닌 하나님의 존전인 하늘로 직접 가셨다.
(히브리서 9:11-12)
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그리스도인은
주님 품안에서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일 년에 한 번만이 아닌, 언제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가 자주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기뻐하신다.
구약의 제사장과 구별되는 엄청난 특혜이다.
(히브리서 9:13-14)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구약의 제사법을 통해 하나님께 나가려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을 무시하고 주님을 십자가에 또 못 박아 현저히 욕보이는 행위이다.
히브리서 6:4-6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6:4-6)
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법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나아가 구약에 언급한 여타의 율법 행위로 하나님께 나가려는 행위도 동일한 죄이다.

따라서 에베소서 3:12과 히브리서 4:16의 선언이 성립한다.
영원한 대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고
그리스도인은 우리 주님 안에서 그 공로를 의지하여
제사장 되어서 하나님의 존전(하늘의 지성소)에 기쁘게 나아갈 수 있다.
(에베소서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리스도인에게 구약 제사장, 대제사장이란 말은 상징적인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대 제사장, 제사장을 구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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