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連理枝)

(Appllachian trail체서 만난 연리목)
 


연리지, 연리목은 …
부부의 상징적 모습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그렇게 아름답지 만은 않은 듯하다.
나에게는 오히려 처절해 보인다.

서로 상처를 주고
서로 그 상처를 보듬어 안고
서로 그 상처를 치유해 가면서
둘이면서 하나가 되어 나무가 커간다.

이제는 떼어 놓으려하면
그것이 서로에게 아주 큰 상처가 된다.
그것이 연리지, 연리목이다.

부부 사이가 그런 것 같다.

오랜 동안 찌지고 볶고 서로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서로 보듬어 주며 세월과 함께 치유되고

이제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서
떼어 내면 둘 다 큰 상처를 입는 그런 사이
그것이 부부인 것 같다.

처음 만나서
젊음의 정렬이 사랑인 줄 알았다가
서로 부대끼며 살다가
헤어지지 않았으니 (못했으니)
신의, 신뢰, 의리를 지킨 것이 된다.
(
비록 할 수 없이 했다 해도 오랜 세월 지나면 자랑스럽게 말한다.
뭐 내가 자랑할 게 뭐가 있겠나?
능력 없어 한 남자 한 여자에 매어 산 것이 뭐가 자랑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서로서로 제 한 몸 희생해서 상대를 구제해 주었다 할지도 모른다.
)

비록 바라던 이상적인 상대는 못 되어도
이제는 떼어 놓을 수 없는 나에게 꼭 맞는 상대가 된 그 사람.

이제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서
찐한 정이 든 존재.
아마 우리 한국 사람에게만 있는 정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장모님은 사람은 정(情)으로 산다고 말씀 하셨다

이제는 다른 누구와 비교는 할지언정 바꿀래야 바꿀 수 없는 존재
(
다른 누구와 자신이 비교당할 때마다 부부의 상대방은
말도 못하고 속으로 상처를 부여안을 것이다
)
그게 연리지 같은 부부일 것이다.


연리지는 서로 상처를 주며 둘이면서 하나가 되어간다.
얼마나 서로 상처를 주며 오래 붙어있으면 연리지가 될까?
10년, 20년, 30년?
오랜 세월 후에는 서로 부여안고 큰 나무가 되어간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야! 연리지 참 신기하다. 멋있다”라고 한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물론 평생토록 아무런 갈등이 없이
아름답고, 멋있고, 행복한 부부도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이 연리목은 한쪽은 계속 상처를 입고 있었다.
상처를 주는 쪽도 하나가 되어 성장할 때까지는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벧전 3:1-7)
1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7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부부는 매일 함께 기도를 한다.
그런데 다툰 날은 함께 기도를 할 수가 없다.
혼자 기도하기도 어렵다.
부부싸움하고도 기도가 잘 되는 거룩한(?) 남편, 아내가 있을까?

(창 3:16) 개역개정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에덴동산을 쫓겨날 때부터
아내는 맘대로 남편을 쥐고 흔들기를 끊임없이 원하지만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을 자존심으로 그것을 원치 않고 뻣대고 힘으로 누른다.
이래저래 부부는 서로 부대끼며 상처를 주게 되어있다.

(잠언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언 17:14)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잠언 19:13)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잠언 2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5:24)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언 27:15)
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공격적인 상대와 화목하려면 최소한 한편이 상처를 감내해야만 가능하다.
아내(다투는 여인)만 잘못했다고 몰아세울 일이 아니다.
(물론 남편이 항상 양보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잠언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나를 힘들게 하는 부부의 상대방은 나의 인품을 단련하는 조련사라고 생각하라.
물론 그래도 속은 좋지 않겠지만

누가 악처 크산티페를 둔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
결혼을 할까요 말까요?
소크라테스: 결혼을 하라
왜요?
착한 여자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요
고약한 여자를 만나면 나처럼 철학자가 될 것이다.
(
요새 이런 말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이다
)

요새는 맘에 안 맞으면 이혼하는 세대이니
이런 나의 생각은 박물관에나 가야 할까?

오랜 길을 함께 돌아돌아 여기까지 올라온 우리는 44년 연리지이다.
2020년 5월 어느 날, Tallulah 폭포 1000 피트 계단을 함께 오르내리다.
계단의 숫자는 2-3000개는 되었을 것이다.

Summer Solstice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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