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번제단. 제물을 드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사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2. 물두멍. 더러운 손발을 씻는다.
죄를 고백하며 일상의 죄의 문제를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3. 진설병(빵). 제사장들은 이 빵을 먹도록 했다.
영의 양식인 주님의 말씀을 매일 같이 먹는다.
4. 금 촛대. 안을 늘 밝게 비춘다.
하나님의 자녀는 빛 된 선한 삶을 살아야한다.
5. 향로. 늘 꺼트리지 않고 향을 피우게 했다.
항상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6. 지성소. 언약궤를 둔곳.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곳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나타나시는 장소.
언약궤는 십계명(하나님의 말씀)을 넣은 상자.
그 언약궤를 덮는 덮개가 속죄소이다.
속죄소(시은좌, 언약궤 덮개)의 중간 두 그룹(천사)의 날개가 만나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임하신다고 하셨다.
(출애굽기 25:20-22)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레위기 16: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사람에게 자기를 보이신다는 의미라고 믿는다.
(이 경우에는 십계명을 기록한 돌판 이었다)
꿈속, 환상 중, 기적 등 다른 그 어느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보이시기 원 하신다 믿는다.
예수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지키는 자를 사랑하시어서
그에게 주님을 나타내신다고 약속하셨다.
(누가복음 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꿈속에 임하신다면 대 제사장은 잠을 자야 할 것이니
지성소에는 침대가 있어야 할 것이고.
환상 중에 임하신다면 환각제를 먹거나 마셔야 할 테니
환각제 단지와 환각제 흡입 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미 대륙의 어떤 종족은 신탁을 받기 위해 환각제를 사용한다는 말이 있다.
환각 중에 그들의 신을 만나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
주님을 모신 그리스도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알레고리가 아니다.
구약에 나타난 성막에 관한 모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고 성막을 이해하는 예표(Symbol)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삶의 그림자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본체이며
성막은 그림자이다.
예표, 상징, 그림자를 사용한 설명이다.
본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성막에서 지성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주님 앞에서 경건한 삶의 그림자이다.
(골로새서 2:16,17)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성막을 보고 뭔가 다른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오류이다.
신비주의 무당 노릇이 되기 십상이다.
(
인터넷에서 성막기도 부흥회 등등의 제목을 보았다.
이것이 성막의 비밀을 깨닫고 은혜 받는 방법 등을 말하는 것이라면 …
전혀 의미 없다.
본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하나님의 자녀가…
그림자를 따라 뭔가 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 내용을 읽지 않았다.
그것을 읽고 글을 쓰면 특정인을 비난하는 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번제단, 물두멍, 진설병, 촛대 … 언약궤 등등의 이름을 써서 기둥에 붙여놓고.
번제단 이라 쓴 곳에 와서.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며 감사 합시다.
주의 제단에 산제사를 드릴 결심을 하십시다.
우리 하나님께 우리를 번제로 드릴 결심을 하고 -헌금을 약속 합시다-
.
.
등등을 했다고 하면.
참여하는 사람이 마음에 감동이 있을지 모르지만
본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하나님의 자녀에게 그림자놀이를 시키는 웃기는 일이다.
사기 가능성 매우 높다.
이런 것에 속으면 안 된다.
나의 상상의 이야기다. 그런 일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이다.
본체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로 구속의 사업을 완성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불필요한 오해, 억측을 없이하기 위하여
성막도, 성전도, 언약궤도 세상 사람의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셨다 생각한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계속적으로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자
슬퍼하시면서 실로의 성막을 떠나셨다.
(시편 78:56-60)
56 그럴지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57 저희 열조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가서
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예레미야 26:6)
내가 이 집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언약궤도 없애 버리셨다.
아마도 느브갓네살의 예루살렘과 성전 파괴 때 사라졌을 것이다.
(예레미야 52:12,13)
12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 구년 오월 십일에 바벨론 왕의 어전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13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 하셨다.
“언약궤는 다시는 없을 것이다” 라고.
언약궤는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없애버리셨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 재건한 성전에는 언약궤의 언급이 없다.
다시는 만들지도 않았다.
(예레미야 3:15,16)
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1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신약시대에 그 성전도 없애버리셨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다.
(마태복음 24: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주님, 하나님께서는
내 속에 내 주하셔서 나를 성전 되게 해 주시고 나와 교통하기를 원하신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후서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내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내 주님의 품안에서 하나님의 존전(지성소)으로
언제나 나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신다.
(에베소서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주님을 섬기며 교통했던 것처럼
나는 그래서 왕 같은 제사장이며 제사장다운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담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을 때
먼저 찾아 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
(창세기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에게 찾아 오셔서…
내안에 거하셔서 나를 하나님의 성전 되게 하시고
내안에 거하셔서 나를 제사장 삼아 주시고
내안에 거하셔서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계시며
내안에 거하셔서 나로 하여금 언제든지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시고
내안에 거하셔서 내가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는
나의 주님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세우신
진정하고도 완전한
최후의 하나님 성전이이다.
(
교회당 건물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단한 오류이다.
누구는 언약궤가 세상에 다시 나타나고,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재건될 것을 기대할지 모른다.
내 생각에는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신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언약궤는 나타나거나,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성전은 재건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 그리스도인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진정하고도 완전한 최후의 하나님 성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성전의 실체는 하나님 계신 천국에서 실현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 천국이 바로 성전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 곳에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며 찬양할 것이다.
혹시 모른다. 만약에 만약에
주님을 마음에 모신 그리스도인이 하나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진 날이 있다면
그 때는 언약궤(가짜)도 나타나고, 새로운 성전을 짓게 될지도.
아마도 그때는 세상의 종말이 되지 않을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언젠가는 적그리스도가 거룩한 곳(성전?)에 서게 될 것이라고.
그가 선 거룩한 곳은 이미 하나님의 성전이 아닐 것이다.
아마 나는 그 때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성전이 왜 필요할 것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 본다.
또, 머리와 입만으로 생각하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