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마음의 꽃 (모자이크 성경 해석)

모자이크 성경 해석 오류의 예를 들어본다.
어려운 예는 아니지만 지루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분께 다음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이야기는 이단 교주 이야기는 아니다.

***** 인용문 *****

아래 이야기는‘어린이 동화에서 가져왔습니다.
***************************
어느 나라에 지혜로운 임금님이 계셨습니다.
하루는 그 임금님이 신하들을 불러 백성들에게
여러 종류의 꽃씨와 화분을 골고루 나누어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 가장 예쁘게 꽃을 가꾼 한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임금님이 나누어 주신 꽃씨를 심어 피운 꽃이어야만 했습니다.

임금님은 1년이 되는 날 여러 신하들을 데리고 가지각색의 꽃이 핀 마을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집집마다 핀 예쁜 꽃을 보는 임금님의 얼굴이 슬퍼 보였습니다.

임금님이 마을의 꽃을 다 보고 돌아가려고 할 때,
꽃 없는 화분을 들고 서 있는 한 소년을 보셨습니다.
소년은 겁에 질린 듯 울먹거리고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왜 화분에 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소년은 “임금님이 주신 꽃씨를 심고 정성껏 물도 주고 볕도 쬐어주고 하였지만
싹이 트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소년의 말을 들은 임금님은 환하게 웃으며 “이 소년에게 큰 상을 내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소년 앞에 몸을 낮추고 말하였습니다.
“꽃을 피운 모든 사람은 정직하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너 하나만 정직하였구나. 사실 내가 보낸 그 꽃씨는 익힌 씨앗이었느니라.”
****************************

우리의 타락한 몸은 분명 썩어질 몸이고 (고전15장)
심지어 이 몸은 죽은 몸이다 고 까지 말씀하셨지요 (엡,롬)
그렇다는 건 이 몸은 절대 스스로 싹을 틔울 수 없는 죽은 “씨” 란 것이지요.

[로마서 3:10-12,20]
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열매로 알고 있었는데,
율법은 지켜서 열매로 가져오라고 준 것이 아니고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기위해 준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봅니다.

[롬 7:18-19]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이렇게 인간은 죽을 몸, 썪어질 몸에 갇혀 있는 한
절대 하늘 임금이 원하시는 꽃을 피울 수 없으며 열매를 맺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 몸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서 그들 삶을 대신 사실 때에만
그들의 몸인 가지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지요.

[요한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이 그 가지에서 떠나버리면 비록 그가 열매를 맺어도 그 열매는 죽은 거예요.
열매는 나무줄기 것이지 가지가 스스로 키워 소유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늘임금님이 원하시는 열매나 꽃을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에게 붙어있는 거예요.
이걸 연합이라고 해요.
인간의 열심과 노력에서 나오는 열매는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주시지 않으면 나는 열매는 커녕 싹도 틔울 수 없는 피조물인데,
제 안에 선물로 주신 예수라는 열매가 없다면 저는 절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라 칭호를 받을 수 없는 자입니다.
라는 정직한 피조물의 처음자리의 고백 을 들고 하나님 앞으로 가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정직한 고백을 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때로는 열심도 부리게 만드시고
또는 게으르게 놔두시기도 하시며 삶속에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케도하시고
때때로 그들 속에 사시는 예수의 열매를 나타나게도 하세요.
그러나 그건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결국,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오롯이 드러내고
죽은 흙에 불과한 자신의 처음 자리를 인정하고 수긍함을 목적으로 이 땅에 창조된 거예요.

[골로새서 1:16 ]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예수가 주되심을 증명하고 드러내기 위하여 창조된 게 만물이에요.
이렇게 우리는 예수를 위해, 예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임을 깨닫고
자연과 만물이 사람을 위해 창조 됐다고 믿는 신의 자리에서 내려와
제단아래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찬송해야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기는커녕 시장에서 각종 꽃과 과실을 사다가
화분에 주렁주렁 매달고 상 받기를 바라고들 있는데,
하나님이 정작 원하시는 열매는 그런 게 아니란 겁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천국백성의 현실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이 역사와 인생을 허락하신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열심을 부려
변하고 성숙하여 왔는가에 대해서는 사실상 관심이 없으세요”.

왜냐면 나중에 다 새것으로 바꾸어 줄 거거든요.
오히려 그런 것보다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의 능력은 얼마나 대단한 것이며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여
하나님 절대 의존적인 존재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아버지만을 의지하는
어린아이들이 되어주기를 바라시는 겁니다.

어린아이는 아버지 손만 꼭 잡으면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거잖아요.
내가 그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 달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언약에 핵심이 무엇인가요?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되고 너는 나의 자녀가 되는 것 그것이 언약의 핵심 아닙니까.

예수님도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셨어요.
어린아이는 다 천국 들어간다는 말이 아니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부터 울고 찡찡대고 거짓말하고 얼마나 욕심내는지 다들 아시잖아요)
천국에 아이들은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이란 의미에서
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 못 들어간다고 하신 것이 지 애들 본받으라고 한 그런 뜻 아닙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선악구조로 상황을 판단하고 선악의 분별을 하며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려는 시도를 할 수 없는 자들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혹시 인간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열매가 나왔다고 한다면
그 열매의 주인이 누구라는 말입니까. 예수님이지요.
그렇게 예수님에 의해 맺는 열매를 가진 자들을 살았다고 하고 그들을 “산자” 라고 합니다.
한 알의 밀알로 썩어 죽어버린 예수에 의해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열리게 된다가 십자가구원이잖아요.
그걸 아는 자들은 진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씨는 예수밖에 없구나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씨는 예수임을 알게 됩니다.

****** 인용문 끝 *****

이것은 모자이크 해석, 역 알레고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그런 용어가 있는지는 모릅니다)
알레고리칼 성경해석은 성경 본문의 텍스트를 우화(알레고리)로 보고
자기 주관을 이야기에 대응 시켜 제 맘대로 해석하는 것인데

이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자이크 + 역 알레고리이다.
성경과 무관한 이야기(알레고리)를 자기 생각대로 만들거나 인용한다.
그 이야기를 성경 대신에 본문(텍스트)으로 한다.
(
모자이크 밑그림을 미리 그려 놓는다.
이 경우에는 모자이크의 밑그림도 없이 뒤죽박죽이다.
그냥 연상되는 대로 말한 것 같다.
)

성경의 내용을 알레고리의 강조하고 싶은 곳에 대응시킨다.
(성경을 뜯어서 모자이크 밑그림에 붙여서 새 그림을 만든다)
다음은 “그 이야기 -> 성구 대응 -> 주장“이렇게 진행된다.

매우 위험성이 높은 논리 전개이다.
성경의 교훈과 일치할 수도 일치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성경의 교훈과 이곳저곳 일치하고 있지만
성경 전체의 흐름과는 아무 연관 없이 뒤죽박죽이다.
자기의 주장에 끼워 맞추려고 노력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장하는 내용도 명확하지는 않다.

깨달음을 강조한 것도 포함하고 있다.
뭔가 연결성이 떨어지는 혼란스러운 주장이다.

이 이야기는 “마음의 꽃”이라는 동화로 시작한다.
이 동화는 내가 초등학교 때 도덕교과서 혹은 동화책에서 읽은 것이다.
원래의 내용은 …

(
.(1) 임금님이 신부를 비밀리에 뽑는다
.(2) 나라 처녀들에게 꽃씨를 하나씩 나누어 주고
…..1년 후 가장 아름다운 꽃은 피운 처녀를 신부로 맞아들이겠다고 한다.
.(3) 1년 후 모든 처녀가 아름다운 꽃을 피운 화분을 들고 섰지만
…..한 처녀는 아무것도 없는 빈 화분을 들고 섰다.
.(4) 임금님은 빈 화분을 든 처녀를 신부로 택한다.
.(5) 씨는 무쇠였고 임금님은 마음의 꽃이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원했다.
)

제목: 마음의 꽃
교훈:“정직 = 마음의 꽃” 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쇠 씨가 – 삶아서 죽은 씨로 바뀌었다.
의도적으로 동화를 바꾸었는지, 우연히 그런 것을 골랐는지 모르겠다.
옛이야기, 신화는 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신데렐라 -> 콩쥐팥쥐 이야기처럼…
그래서 성경의 알레고리를 푸는 것의 반대 방향인
동화, 우화, 알레고리를 먼저 말하고 거기에 성경을 대입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물론 성경을 알레고리로 푸는 것도 성경에 풀어 놓은 것만 안전한 해석이고
성경이 해석하지 않은 알레고리의 해석은 위험성이 높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는 “마음의 꽃” 동화의 내용도 바꾸었고
거기에“씨”를 죽은 씨 -> 육신적인 사람. 살아있는 씨(그리스도?)로 바꾸어 풀었다.
“씨= 그리스도”는 맞지만 “살아있는 씨“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육신=죽은 씨“라는 말도 성경에 없다.
씨는 그냥 “씨”, 하나님의 축복의 근원 인 것이다. [창세기 12:2]
성경적 개념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의미를 뒤틀어 바꾸었다.

물로 나도 이런 비슷한 알레고리를 말한 적이 있다.
“시냇물과 양치기 소년”에서
그러나 나는 알레고리에 성경을 대입한 적이 없다.
성경의 교훈이 알레고리의 해석과 같다고 말했다.

 (시냇물과 양치기 소년)

 

이 동화(알레고리)를 저변에 깔고서
성경을 동화의 내용 하나 하나에 대입하는 것은 대단한 오류이다.

“싹티울 수 없는 삶아내어 죽은 씨 = 우리의 몸“ 이라고 대입 해석 했다.
매우 이상하나 정말로 나쁘지는 않다. (고전 15, 엡, 롬을 봐도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의 추측에 의한 주장이라는 것이 오류이다.
성경에는 그런 말이 전혀 없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열매다” 고 오해 한다 했는데
[로마서 3:10-12,20]
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성경 어디에도 “율법을 지킴이 열매다“고 한 적은 없다.
성경을 자세히 읽지 않고 자기 선입관으로 말했다고 생각 된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열매로 알고 있었는데” … 이런 말은 성경에 없고
율법은 지켜서 열매로 가져오라고 준 것이 아니고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기위해 준 것이라는 말입니다.“…이 말은 앞부분은 없고 뒷부분은 성경에 있다.
자기 생각을 교묘하게 섞었다.
그래도 이 부분은 그렇게 심각하게 나쁘지는 않다.

이 구절은 죄를 떠난 삶을 살고자 몸부림을 치며 노력하는 사도 바울과 같은 분의 처절한 노력을 의미하며 그것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데 그래서
[로마서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결론을 내리는데
자기의 주장 “죽은 씨“를 강조하기 위하여 내용을 약간 바꾸었다.
딱히 뭐라고 반박하기도 어렵게 살짝 … 이게 문제다.
[로마서 7:18-19]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살아 있는 씨를 주장하기 위하여 성경 이곳저곳을 연결했다.
이것은 같은 단어나 공통점을 연결하여 주장하는 “연상논리의 오류”이다.
맞는 것과 그릇 된 주장이 섞여있다.
그래서 이것이 위험하기도 하다.

신비주의 비슷한 주장도 나온다.

“이렇게 인간은 죽을몸,썪어질 몸에 갇혀 있는한 절대 하늘임금이 원하시는 꽃을 피울수 없으며 열매를 맺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 몸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서 그들 삶을 대신 사실 때에만 그들의 몸인 가지를 통하여 나타나는것이지요.”

맞는 주장, 고개 갸우뚱한 이상한 주장, 그릇 된 주장을 섞어서 한다.

마지막에 말만 맞게 했는데…
“창3:15 에 보시면 여인의 “후손”은 (제라)씨 seed란 뜻이에요.

이 분은 아마, 자기 생각에 빠져있거나, 남의 말귀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분일 것이다.
이런 분의 말을 좋다고 듣는 분이 계시다면 그것도 매우 문제가 된다.

이 주장은 변조된 동화가 본문(텍스트)이 되고
성경이 그 본문을 설명하는 보조역할을 하고 있다.
접근 방법의 심각한 오류이며 잘못된 접근 방법이다.
자기의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성경을 인용해 가져다 붙이는 잘못된 방법이다.

이 경우는 주장하는 바가 체계도 없고 성경만 여기저기 인용하여 뒤죽박죽인데
다른 경우는 주장하는 바가 매끄럽게 연결 되는 경우 많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경계해야한다.

또한 성경적으로 맞는 주장이라 할지라도 모자이크 접근 방법은 잘못 된 것이다.
물론 그런 접근 방법으로 성경적으로 맞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는 없다.

자기의 예화 주장에 성경을 끌어 들이는 것은 위험하며 매우 주의해야 한다.
이런 사람 많을 것이다.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