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아들 계명성 (성경의 문맥)


[이사야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이 망하고 이스라엘이 자기들 고향으로 돌아 올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사야 14:3-5]
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4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학대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5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도다

성경의 본문(사 14:4)은 바벨론 왕에 대하여” 라고 하여 명백하게 바벨론(왕)을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 명백하게 써있는 문맥은 완전히 무시하고
여기서 “계명성=사탄“을 의미한다고 하는 말이 많다.
그렇게 성경 본문을 무시하고 말을 바꾸어도 되는가?
성경을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근거라고 하면서 그렇게 해도 되나?

어느 한 예언에 해당하는 사건이 역사적으로 반복하여 일어날 수 있으니
예언에는 이중적 의미의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계명성은 최종적으로 사탄을 의미한다고 하면 할 말 없다.

그러나 문맥에서 말하는 원래 의미를 무시하고 자기가 주장하는 의미를
강조하여 그것이 유일한 혹은 중요한 해석이라고 하는 것을 배격한다.

나도 예전 성경 공부할 때 “계명성=사탄“을 의미한다고 배웠다.
그것이 잘못된 이해라는 것을 요즘 성경 전체를 여러 번 읽으면서 느낀다.
과거 학습에 의해 주입된 선입관이라고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도 성경공부 할 때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이 구절을 계속 사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 할 것이다.
(왜 그 교재를 그렇게 썼을까?)

성경 전체에서 계명성이 저주를 받는 부분은 딱 한번 여기에만 나온다.
단 한번 나온 기록을 가지고 전체를 덮어씌워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타당성이 너무나 빈약하다.
오히려 새벽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샛별(계명성)처럼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 위해 잠깐 나타났다가 영원히 사라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이사야서에서 언급한 바벨론(신 바빌로니아) 제국은
100년 못되는 기간 존재했다가 페르시아의 공격으로 역사에서 사라진다.
이 대제국의 역사는 샛별 같이 잠깐 빛나다 사라진 100년 미만의 역사인 것이다.

성경 문맥을 무시하고 달리 선입관, 상상력으로 해석하는 것을 반대한다.
전통, 선입관, 초기 교육 등에 의한 관념의 세뇌는 심각하다.

이와 같은 해석은 “계명성=사탄” 이라는 밑그림을 먼저 그려 놓고
모든 해석을 거기에 맞추어 모자이크처럼 짜 맞추는 형태이다.
이런 해석이 매일의 삶과 관련된 분야까지 들어온다면 정말 위험한 일이다.
모자이크 짜 맞추기 성경해석을 반대한다.

[이사야 14:1-19]
1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에게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
2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의 본토에 돌아오리니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를 삼겠고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리라
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4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학대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5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도다
6 그들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치되 치기를 마지 아니하였고 노하여 열방을 억압하여도 그 억압을 막을 자 없었더니
7 이제는 온 땅이 평안하고 정온하니 무리가 소리질러 노래하는도다
8 향나무와 레바논 백향목도 너로 인하여 기뻐하여 이르기를 네가 넘어뜨리웠은즉
올라와서 우리를 작벌할 자 없다 하는도다
9 아래의 음부가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옴을 영접하되 그것이 세상에서의 모든 영웅을
너로 인하여 동하게 하며 열방의 모든 왕으로 그 보좌에서 일어서게 하므로
10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
11 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 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16 너를 보는 자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경동시키며
17 세계를 황무케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않던 자가 아니뇨 하리로다
18 열방의 왕들은 모두 각각 자기 집에서 영광 중에 자건마는
19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빠진 주검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이 계명성을 Lucifer(루시퍼)라고 썼다고 해서 사탄의 이름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
그런데
Lucifer(루시퍼) 라는 말은 모든 성경 번역본 중 오직 KJV에서 그것도 이사야 14:12에 딱 한번만 나온다.
물론 히브리어 성경도 루시퍼(천사 이름)가 아니다.
계명성이라는 말도 개역한글, 개역개정에 이사야 14:12에 딱 한번만 나온다.

이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대단한 모순이다.
Lucifer라는 말은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할 때 오류로 본다.
그리고 KJV를 번역할 때 Lucifer가 그냥 KJV로 넘어왔다고 본다.
KJV의 번역이 이 부분, 오류라는 말이다.
(
Latin Vulgate ISAIAS 14:12
quomodo cecidisti de caelo lucifer qui mane oriebaris corruisti in terram qui vulnerabas gentes
벌게이트 라틴어 성경은 분명하게 lucifer 라고 써있다.
라틴어 lucifer는 새벽별(morning star)이다.
그걸 KJV에서 라틴어를 그대로 번역 없이 옮긴 것이다. 왜일까?
한 걸음 더 나가 Lucifer라고 대문자로 시작하여 고유명사를 만들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KJV Study Bible로 여기를 읽으면 사탄 Lucifer에 대해서 매우 자세히 친절하게 써 놓았다.
깜빡, 속아 넘어가기 정말 좋다.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누가 KJV가 가장 훌륭한 번역이라 하는가?
)

누가복음 10:18의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과
이사야서 14:12의 “하늘에서 떨어졌으며”를 연관 지어 생각해서
“계명성 = 사탄“이라고 유추할 지도 모르는데
이것은 같은 말만 가지고 연상하어 이어 붙이는 연상논리의 오류이다.
장님이 코끼리 꼬리를 만져보고, 뱀을 만져본 후 코끼리를 뱀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누가복음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
하긴 그 정도로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도 대단하기는 하다.
)

아마도 이 부분은 King James Version의 최악의 오역일 것이다.
이 오역 때문에 무수한 웃기는 해석이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 = 빛나는 새벽별 = 계명성 = 루시퍼 = 사탄” 이런 연상을 하여.
“예수님 = 사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하는 사람도 보았다.
물론 불신자의 억지 주장이다.

이건 완전히 “원숭이 XX는 빨개…“ 식의 연상논리의 극심한 오류이다.
“LUCIFER” 라고 심하게 오역한 결과이다.

[KJV]
12 How art thou fallen from heaven, O Lucifer, son of the morning! how art thou cut down to the ground, which didst weaken the nations!
13 For thou hast said in thine heart, I will ascend into heaven, I will exalt my throne above the stars of God: I will sit also upon the mount of the congregation, in the sides of the north:
14 I will ascend above the heights of the clouds; I will be like the most High.
15 Yet thou shalt be brought down to hell, to the sides of the pit.
16 They that see thee shall narrowly look upon thee, and consider thee, saying, Is this the man that made the earth to tremble, that did shake kingdoms;
17 That made the world as a wilderness, and destroyed the cities thereof; that opened not the house of his prisoners?
18 All the kings of the nations, even all of them, lie in glory, every one in his own house.
19 But thou art cast out of thy grave like an abominable branch, and as the raiment of those that are slain, thrust through with a sword, that go down to the stones of the pit; as a carcase trodden under feet.

(참고)
הֵילֵ֣ל (hei·lel): a shining one (히브리어의 뜻)
[KJV] O Lucifer: heylel (hay-lale’) … the morning-star — lucifer.
[NIV] O morning star,
[NASB] O star of the morning,
[개역한글] 계명성

“계명성 = 루시퍼 = 사탄”은 분명히 선입관으로 문맥을 무시한 오류이다.

[이사야서 14:4]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이사야서에서 원래 말한 것처럼 문맥대로 바벨론 제국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계명성을 Lucifer 사탄으로 주장한 사람은 유명한 초기 교부 누구였고
또 유명한 다음 교부가 그것을 지지 했다고 해서
후세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훌륭한 그분들을 믿고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완전히 유명세에 마취되어서 “아하- 그렇군요” 하고 넘어간 결과이다.

다음에 중세에 와서 독일 문호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루시퍼가 악마 두목으로 나오고
베버의 오페라 파우스트에도 언급 되었을 테고
루시퍼는 천사 비서장(?)이었는데 하나님께 대적하다 쫓겨났다는 소설(?)도 나오고…
성경을 주의해서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진지한 그리스도인은 성경 말씀을 진지하게 일고 중립적인 태도로 읽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도행전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리스도인은 성경에 직접 기록이 없지만 우리가 믿는 개념(교리)들을
정말로 성경에 근거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정 교단에 속한 목사님들은 입장이 어렵다.
교단이 선언한 교리에 “Yes”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목사 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으로는 동의하지 않아도 그렇다고 말해야한다.
정직성, 양심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교인들이 정신 차리고 잘 생각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까지 진지하게 성경을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반론 제기 할 사람이 있을까 하여 비겁하게 한발 뒤로 빼는데
– 나는 갈등이 싫다 –
백번 양보하여 “루시퍼=타락 천사장=사탄“이라 하자
그래도 원래의 뜻인 “계명성=바벨론(왕)“ 이것을 우선적으로 이야기하고
루시퍼를 하든 말든 했으면 좋겠다.
아마 초기 교부들 생각에 바벨론은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이니 관심이 없고
미래에 일어날 사탄의 몰락에 관심이 있어서 그랬나?
그래도 그렇지 원래의 의미를 완전히 무시, 변경해서는 안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앵무새처럼 앞 사람 말을 반복해도 곤란하다.
그게 맹신이다.
나의 믿음으로 화합해야 할 것이 아닌가?
성경의 권위 앞에 겸손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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