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평 (성경시대의 상황과 풍습)

     

책 별로 안 읽는 나, 어쩌다 책 한 권 읽었다.
“성경시대의 상황과 풍습”

성경 읽으며 그 내용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성경시대의 문화, 풍습 관련 지식을 좀 얻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실망이다.

383쪽 분량의 책을 다 읽고 나니
심하게 표현하면
쓸 만한 것 있는가 하여 쓰레기통을 샅샅이 뒤지고 허탕 친 기분이다.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
이 책, 추천하지 않는다.

(
내 초등학교 책에 이런 동시가 있었다.
아기 다람쥐가 …

알밤인가 하고 조약돌도 줍고
알밤인가 하고 솔방울도 줍고

꼭, 그런 기분이다.
속은 기분이다.
)

이런 책은 읽지 마시기를 바란다.
(그런데 제목만으로 책이 어떤지 어찌 알겠는가?)

저자가 성경을 읽었는지 아닌지 정말 모르겠다.
성경 내용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쓴 곳이 아주 많이 있다.
다른 사람의 말, 글을 성경과 관계없이 옮겨 썼나 하고 생각한다.
미국 목사라고, 책을 많이 썼다 해서 올바른 지식을 전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번역도 문제가 있다.
아마도 성경을 전혀 읽지 않은 비 그리스도인이 번역했다는 느낌이다.
국어 어휘력도 부족해서 엉뚱한 단어를 쓰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 곳에 책갈피를 넣었는데 가진 책갈피가 모자라서 페이지를 접었다.

요즈음은 정보, 지식의 홍수 시대이다.
홍수 때에 마실 물이 부족한 것처럼
거짓 지식, 불량 정보, 함량 미달 정보가 넘쳐나서 바른 교훈을 찾기 어렵다.
(“물, 물, 물” 이라는 제목으로 이 주제를 썼다. Link)

성경적으로 바른 교훈을 찾아내려면
내가 성경을 열심히 문맥을 따라 읽어서 기본이 되어있어야 한다.
그래야 오염된 거짓 지식과 바른 교훈을 분별할 수 있다.
믿는 자가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하는 이유이다.

고물상, 거라지 세일, 쓰레기 속에서 쓸 만한 것을 찾으려면
해당분야의 분별력,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다음에 내가 읽은 이 책의 잘못된 부분을 일부 옮긴다.

(36쪽)

(
어린이의 가장 가까운 친척은 형제와 자매였다.
어떤 형은 야고보와 요한처럼 사이가 좋았으나, 어떤 형제간은 그렇지 못했다.
이러한 경우는 예수님과 다섯 이복 형제 그리고 성경에 나타 않은
이복 누이와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 13 : 55;요 7 : 5)
그들은 후일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되었을지라도 대체로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
(행 1:14, 보통 가톨릭 신학에서는 이들을 사촌이나 혹은 다른 친척이라고 생각한다).
)

기가 막히는 황당한 설명이다.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이 마리아 말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이복동생들을 낳았다는 말인데
어떻게 이런 말(주장)을 할 수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들은 어머니 마리아가 낳은 자녀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성경을 전혀 읽지 않고 다른 사람(신학자?)들의 주장을 옮기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런 말을 미국 목사가 쓴 글이라고 받아 들여야 하나?

번역한 사람의 오류라고 생각하기에도 내용이 너무 지나쳐서 그렇게 보기 어렵다.

 

(44쪽)

(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맛이 없는 소금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신 것이다
(Eugene Deatrick은 “성서 고고학 제25권에서 이것이 화학적 변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소금의 맛을 되찾는 방법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사용하신 것이다.

어떤 경우든지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어 버린다면, 거름에도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눅 14: 35).
많지는 않았지만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에서는 똥더미에 소금을 뿌렸다.
그것은 아마도 발효를 서서히 시키기 위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결국 주인은 거리에 쓰레기와 같이 소금을 버릴 것이며, 사람들은 그것을 밟고 다닐 것이다 (마 5:13).
또한 예수님은 지붕 위에 던져진 소금은 흙을 단단하게 하며 지붕이 약해지는 것을 막는다고 말씀하셨다.
)

소금이 맛을 잃는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가정하여 말씀하신 가정법이다.

Eugene Deatrick 의 화학적 변화라고 하는 말은 화학의 기본을 모르면서 하는 말이다.
만일 소금이 화학적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이미 화학적으로 소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저자의 의견이 옳다.

성경의 이해에 불필요하게 과학 상식을 인용해서 무리가 따르는 것이다.
왜 말씀하시는 문맥을 따라 가정법으로 이해하지 않고 화학을 끌어 들이는가?
과학 맹신인가, 열등감인가?

또한 저자 William L. Coleman은 다음 같이 썼다.
“예수님은 지붕 위에 던져진 소금은 흙을 단단하게 하며 지붕이 약해지는 것을 막는다고 말씀하셨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위의 문장 인용처럼 출처를 밝혀야 할 것이다.
혹시 외경에 있나?
나는 이분이 성경도 읽지 않고 혹은 모르고, 이말 저말을 생각없이 인용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133쪽)

(
성서의 율법은 근친 상간적 기질 때문에 수차례 결혼의 관계를 맺는 것을 금했다
(레 18:6 이하; 신 22:30).
극히 드문 경우 중 하나로 과부가 고인의 형제와 결혼하는 수혼 (levirate, 嫂婚)이 있었다.
이 율법을 을 어긴 사람들은 사형을 당했다.
)

형제의 미망인과 결혼을 거부해서 사형 당한다는 말은 성경에 없다.
저자가 역시 성경을 읽지 않았거나 성경에 무식하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이 목사라니 …

신명기 25:5-10을 보면 사형시킨다는 말은 없다.
[신명기 25:9,10]
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편의상 9-10 절만 인용했다.

(142쪽) 중간: 번역의 문제

“포수기와 B.C 4세기사이에는 …“ 라는 말이 있다.
그 외의 몇곳에서도 포수기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것은 (앗수르, 바벨론, 로마) ”포로기” 라고 쓰는 것이 성경에서 일반적인 용어이다.
“포수기”라고 쓴 것을 보아서 번역을 한 분이 기독교와 성경에 전혀 문외한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국어 단어도 잘 모른다.
(366쪽) 첫줄, 마지막 줄에는
“연류”된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는 데 문맥상 “연루”가 맞는 말이다.
이외에도 사진에 보는 것과 같은 수 많은 오류가 있는데 일일이 나열하기를 원치 않는다.

 

나의 의견 …
William L. Coleman 이 분 책을 많이도 쓰셨다.
그런데 처음 읽은 책이 이러면 어떻게 다른 책을 읽을 수 있겠는가?
심각한 번역 오류라고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무리가 있다.

이런 책 읽지 맙시다.
“서울말씀사“ 지금도 영업하고 있을까?

문제는 읽어 보기 전에는 이런 책인 줄 모른다는 것.
그러니 성경을 열심히 읽어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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