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구 글짓기와 오병이어

   


국어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중세를 배경으로 로맨틱한 이야기”를 써 보라고 하셨다.

다들 낑낑대며 글을 쓰는데
맹구는 금방 척 써서 내었다. 그 내용은…
“공주가 임신을 했다”

놀란 선생님, 거기에 “미스테리” 요소를 넣으라 하셨다. 또 척 써왔다.
“공주가 임신을 했다. 범인은 누구일까?”

이번엔 “활극적” 요소를 더 넣으라고 하셨다.
“공주가 얼굴에 멍이 든채 임신을 했다. 범인은 누구일까?”

“SF적” 요소를 넣으라고 하셨다.
“별나라 공주가 얼굴에 멍이 든채 임신을 했다. 범인은 누구일까?”

이야기는 살을 붙일수록 재미가 있어진다.
이상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요한복음 6장에는 5병 2어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께서 굶주린 500명의 사람들을 먹이시려 하실 때 …
한 소년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 왔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 본문으로 이렇게 하는 설교를 들었다.

전설에 의하면 …
“가난한” 한 소년이 자기가 싸온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드렸단다.
거기에 더하기를
“다리를 저는 가난한 소년”이라 하고
또 이야기를 보태기를
“홀 어머니가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이라 했다.

그러면 이야기는 이렇게 된다.

“홀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사는 한쪽 다리를 저는 어린 소년이
그 홀어머니가 정성껏 싸주신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점심식사로 가지고 다리를 절며 와서 예수님 말씀을 들었다.
내가 배고풀 때 예수님께서도 시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배고픈 것을 참고 주님께 드렸다.(헌신했다)“

그러므로 듣는 우리(여러분)도 우리 주님께 지금 있는 것으로
(남 보기에는 별것 아니라도) 주님께 헌신해야 한다.

매우 감동적이고 뭉클한 이야기가 된다.
내 기억 속에도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런데 이것은

“한 소년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 왔다“라고 한 성경의 서술에
풍부하게 살을 붙여서 만든 이야기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는 성경에 없다.
(
원참, 내가 늙기는 늙었다.
과거의 기억에 매어 사는 것인지 뭔지…

성경에 없지만 그것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니 뭐라고 하지 말라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런 사람과는 의논이 되지 않는다.

요즘은 이런 종류의 설교가 없기 바란다.
)

덧붙인 이야기가 성경의 교훈을 풍부하고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기 쉽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성경의 주된 교훈으로 탈바꿈을 하는 것을 반대한다.
맹구의 글짓기가 된다.
맹구 글짓기 설교 듣고 싶지 않다.
(
내게 설교 비판을 한다고 뭐라 하지 마시길.
뭐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먄
)

그런 것을 허용하면 성경의 문맥의 교훈이 아닌 가상의 이야기가 교훈이 되기 쉽다.
내가 설정한 가정(덧 붙인 이야기)이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 예에서는 심하게 성경에서 벗어나지는 안았지만
많이 벗어나거나 전혀 다른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성경 말씀이 변질 되는 것이다.
성경 문맥의 교훈을 변질시키는 것을 반대한다.

감동은 주었으면 성경의 문맥의 교훈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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