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원 경륜-1(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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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생각해 본다,

성경은 구약 창세기로 장엄하게 시작한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우주 – 세상(지구) – 만물 – 에덴동산 이야기의 창조 등
잘 아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 바벨탑 이야기 등 먼 옛날 온 인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때까지 …
하나님은 온 우주, 온 인류의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누누이 강조 한다.

그런데
성경을 계속 읽어 나가면
창세기 12:1에 처음으로 아브라함이 등장한다.

(창세기 12:1,2)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그리고 성경에서, 인류 역사의 흐름은 단 한 사람 아브라함의 때에 거대한 댐에 막힌다.
댐의 작은 수문과 같은 아브라함에게만 집중된다.

성경을 읽다 보면 인류 역사의 흐름은
아브라함 때에 와서 거대한 댐에 막힌 것 같다.

그리고
아브라함이라는 수문을 통과한
작은 냇물을 따라 역사가 흘러간다.

유대인의 역사가 성경의 역사다.

아브라함이 누구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 약속하신다.

아브라함 이전까지의 하나님은 온 인류의 하나님이셨던 것 같은데
이때부터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다.
성경의 초점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만 집중된다.
성경의 역사는 히브리인, 유대민족, 이스라엘의 역사로 바뀐다.
아주 작은 어느 민족의 역사로 갑자기 축소된다.
(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는 유감스러운 일로 보인다.
 유대인을 부러워하는 사람 많을 것이다.
)
(출애굽기 3:6상)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신다.
온 세상의 하나님이 아니고 이스라엘(유대인)의 하나님이다.
(
 배달민족인 한민족 그리고 세계의 모드 민족은 섭섭하고 억울할지 모른다.
)
인류 역사의 거대한 물을 댐에 막고 댐의 조그만 틈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라는 냇물이 되어 흐르는 것 같다.
세상의 인류의 역사에는 관심 없고 졸졸 흐르는 냇물 같은 이스라엘 역사만 나온다.

창세기 12장부터 말라기 4장(마지막장)까지 오직 유대민족(이스라엘)만 있다.
다른 민족은 들러리로 등장할 따름이다.

 

아브라함이 BC 2,000년경에 살았다고 하면 예수님 탄생까지
약 2000년간 성경의 역사는 오로지 이스라엘의 역사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위대한 민족이 아닌
노예, 짧은 독립, 분열, 포로, 나라도 없는 별 볼일 없는 민족의 역사다.

창세기 12장부터 구약 마지막 책 말라기 까지 성경의 중심은 유대인이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방인)은 끼어들 자리는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라고 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언약)이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야곱의 12 아들 – 이스라엘(유대) 민족을 통해서

아주 작은 냇물처럼 역사의 흐름을 따라 가늘게 흘러 흘러간다.
온 인류의 역사는 관심이 없다.

아브라함 이후 성경에 기록된
구약의 율법, 모세의 율법도 유대인에게만 주신 율법이다.
구약 성경의 역사는 유대 민족의 역사다.
구약 성경의 예언, 선지자는 유대 민족과 그와 관련된 것을 예언이다.

구약 성경의 모든 기록은 창세기 12장부터 구약 마지막 책 말라기를 지나
신약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오직 유대 민족의 기록이다.

유대인 아닌 사람(이방인)은 전혀 끼어들 자리가 없다.
먼 동방의 한국 사람을 위한 자리는 더 더욱 없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에베소서 2:11,12)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NO! NO! 너희는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다.“ 라고
(
 이방인은 율법을 지켜야할 의무도 없다.
 그들에게는 율법을 주시지도 않았다
 물론 지키지도 않았고 지킬 필요도 전혀 없다.
 그래서 유대인에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다.
)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세기 12:2)
이 약속은 오로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으로 보인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 등의 서자가 많이 있었어도
그 약속은 적자인 “이삭”에게만 이어지는 약속이었다.
아브라함의 서자들에게 조차 허락하지 않는 약속이니 이방인에게는 더 말 할 것도 없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성경의 약속)은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었다.
율법도, 예언도 모두 그렇다.
간간이 희미하게 드러나는 메시야의 약속도 유대인을 위한 것이었다.
(구약 성경은 유대인 아닌 다른 민족과 전혀 관련이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신다.
(출애굽기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오랜 세월 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지나 이스라엘(유대) 민족이 출애굽을 하면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유대민족)에게 율법을 주신다.
그리고 율법을 지킬 것을 명령하신다.

예수님 탄생까지 성경은 오직 이스라엘 민족의 기록이다.
선지자는 오직 이스라엘 및 그와 관련된 것들만 말한다.
오늘 우리는 성경이 만민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지만
율법, 역사, 선지자 모두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전개 된다.

유대민족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지키기 위해
할례를 받도록 명령을 받았다.
율법을 지키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들에게 율법은 꼭 지켜야 하는 강제성이 있었다.

선지자들은 그들(유대인)을 향해 경고하고 예언 했다.

그들이 기다리는 구세주, 메시야도 당연히 유대민족의 메시야였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 민족에서 이스라엘의 메시야가 올 것을 믿었다.
그 메시야는 율법으로도 흠이 없는 분이어야 했다.

성경 예언의 중요한 곳 마다 메시야의 예언이 있다.
유대인들은 2000년간 그렇게 그들의 메시야를 기다려 왔다.
구약 성경의 모든 기록은 유대인의 기록이며 동시에 메시야를 기다리는 예언의 기록이다.
(
 간혹, 그 메시야가 세상 만민을 위한 메시야라는 것이 가끔씩 희미하게 기록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세상 만민의 메시아 예언이라고 이해하기에는 예언할 당시에는 참으로 무리가 있다.
)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벽히 이루셨다.
그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고 유대인의 메시야가 되시기에 완벽하셨다.
마태복음에 하신 예수님 자신의 선언이다.
“나는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을 완전케 하려고 왔다.”

(마태복음 5:17,18)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신약 성경의 세례요한은 메시아 예언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엄밀히 말해서 세례요한은 구약 시대의 사람이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메시아를 예언한 마지막 선지자라 하신다.
세례 요한 자신도 그렇게 말한다.

(마태목음 11:13,14)
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가복음 1:2-4-8)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누가복음 7:27-28)
27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16:16,17)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요한복음 1: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구약 성경을 보면
유대인 아닌 이방인에게 구약의 하나님의 언약/약속은 없다.
유대인 아닌 이방인에게 구약의 하나님의 율법도 해당 사항이 없다.
직접적으로 언급한 내용이 거의 없다.

(
 나(그리스도인)와 구약은 어떤 관계일까? 
 나(그리스도인)는 구약 성경에 존재하는 걸까? 
 그렇다면 구약 성경 어디에서 부터 일까?

 나는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성경을 하나님께서 내게도 해주시는 말씀이라 믿는다.
 그 내가 성경을 읽으며 이런 의문을 갖는다.

 그래서 내가 읽고 이해한 성경 내용을 정리하여 기록한다.
 나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나의 대학시절 전공과목은 응용물리학이다.
 그것도 학부만 시월유신 때 다녔다.
 어떤 해는 일 년 중 절반이 휴교를 했다.
 공부 제대로 못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그 뜻을 성경을 통해 내게도 충분히 알려 주신다 믿어
 성경(한글)을 읽고 결론을 내린다.
 물론 내 견해에 영향을 끼친 분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사람의 견해가 스스로 정립되기가 어찌 쉽겠는가?

 나의 견해에 오류가 확인되면 이 글을 수정할 것이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에 믿음 깊고 훌륭한 분(학자) 많을 것이다.
 SNS를 하며 발견한 사실은
 일반 교인만 아니라 목사들도 나와 똑 같은 성경을 읽는데
 생각하는 것이 전혀 다른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생각에 반대하는 분 계시리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성경을 원어로 읽기를 도전할 것이다.
 –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혹은 나의 능력이 가능하다면 –
 다른 분들의 생각 및 글도 읽을 것이다.
 그 때에는 나의 의견이 달라질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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