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때 감동이 없었어도 – 6회에 걸친 내 이야기

 

믿을 때 감동이 없었어도 (Though, saved with No touch in my heart)

6회에 걸친 내 이야기
(번호와 제목을 Click하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1) 영접하는 자
(2) 죄의 회개?
(3) 쓰린 추억 – 심각한 죄의 회개
(4) 회개. 왜 그게 인상 깊을까?
(5) 언제 구원 받았을까?
(6)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내가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막연히 가지고 있던 의문들
어떤 것은 답이 확실했고, 어떤 것들은 물어보자니 스스로 거부감이 들어 못했고
당연히 내 마음을 알아서 말해주는 사람도 책도 없었다.

[요한 20:29]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보지 못하고 (따지지 않고) 믿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 하셨기 때문에
이런 것에 의문을 품으면 믿음 없는 형편없는 자로 보일까 두려워 그랬을까?

비록 완벽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이성과 논리를 동원하여 생각해 보는 것은
불신의 태도 같아서 금기시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즈음
거짓된 선생, 지도자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그들은 주님께서 하신 이 말을 인용하여 순진한 사람을 속이려 한다는 점이다.
그냥 (나, 내 말을) 믿으라. (아니면 믿음 형편없는 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 거짓 선생들에게도 적용하여 무조건 “아멘”하고 믿으면?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다.

어떤 자들은 이 말씀을 자기 편리한 때에 인용하여 마음 약한 그리스도인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여기에 올바른 자세가 필요하다.
무조건 의심하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성경의 기록과 그 말이 일치하는지 확인해야한다.

말세에 세상을 헤쳐 나갈 유일한 도구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성경 열심히 읽어야 한다.
누가 대신 읽어 내게 쏙쏙 넣어주기를 기대하면 속아 넘어가기 참 쉽다.

나는 생각한다.
비록 불완전 하더라도 이성과 논리를 동원하여 내가 읽고 이해한 성경 내용과 비교하여 판단해야 한다.

베뢰아의 교인들은 사도 바울 같은 대 사도가 전한 말씀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성경을 상고 했다” 하지 않는가?

[사도행전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성경과 이성적 논리를 동원하여 조심스럽게 살펴 볼 때이다.
우리 이성과 논리는 불완전하나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불완전한 것이고 일상생활에는 충분히 효용성이 있다.

그런 입장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믿음과 구원”에 관한 5가지 의문에 대하여 글을 썼다.

나의 생각과 논리가 항상 옳다고는 믿지 않는다.
내 생각의 부족한 부분이나 오류도 알고 싶다.
다른 분의 의견, 비판을 환영한다.
물론 논쟁은 원치 않는다.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태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사도행전 20:29-30]
29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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