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베드로 그 후 (요한복음 21:17 이후)

   

사도 베드로 그 후 (요한복음 21:17 이후)

“베드로”라고 불리고 싶었던 제자 (2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어도 뭔가 감이 잡히지 않아 옛 시절 어부로 돌아간 시몬 베드로와 제자들.

[요한복음 21:2-3]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베드로를 포함해 최소 7명의 제자들이 함께 있었다.
밤새도록 고기잡이에 헛되이 힘쓰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요한복음 21:15-19]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에게는 이 상황이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 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비슷하게 거북한 상황이 되었다.
아직도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부르신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아니고
그에게 세 번 물으셨다.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세 번 말씀하셨다 내 양을 먹이라.

(
양은 내양(예수님의 양)이다.
사도 베드로(목회자)의 양이 아니다
베드로(목회자)의 양 보다 훨씬 더 귀하신,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의 양이다.
예수님께서는 “내 양”이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셨다.

목회자의 양이라면 키우고 숫자 늘려서 유익을 추구함 성공의 길이겠지만,
하나님의 양이므로 그리하면 배임, 횡령이다. 양을 먹이고 돌보는 임무를 잘 감당하고
주님(목자장)의 상급을 기대해야 하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것을 너무도 잘 알아서 장로(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베드로전서 5:1-4]
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아마도 이때(요한복음 21:17) 예수님의 말씀이 사도 베드로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을 포함한 장로(목사)를 “목자(shepherd)“로 부르고 예수님을 “목자장”이라 불렀다.

혹, 성도를 자기 소유 양떼라고 여기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로
자신을 올려놓는 사이비 교주 같은 중한 죄를 범하는 것과 다름없다.
물론 사도 베드로는 바로 뒤에 성도(양)의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여기서는 언급을 피한다-
)

그리고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장래를 구체적으로 예언하셨다
(다른 제자들에게는 별로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요한의 아들 시몬”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었다.
“요한의 아들 시몬”이 “베드로”가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요한 1:42]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예수님의 약속이며 동시에 예언을 베드로에게 이루신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씀을 베드로 뿐 아니라 다른 여섯 제자들도 다 함께 들었다.

내 생각에는… (성경에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므로)

베드로는 비록 예수님을 부인 했지만 그래도 제자들의 리더(구심점)였다.
베드로가 고기 잡으러 간다니 여섯 명 모두 함께 가겠다고 따라 나셨다.
부활 하셨어도 예수님을 마음에서 잃은 그들을 엉뚱하게 인도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때, 만일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씩이나 주님의 양을 먹이라 명하지 않으셨다면
혹은 베드로 요한 만 있는 데서 그 말씀하셨다면
초대 교회의 지도권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예수님을 증오하는 자들과 제자들 앞에서 저주하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를 누가 지도자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마태복음 26:74,75]
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요한을 지도자로 세우자고 할 수도 있었겠고.
설령 요한이 베드로를 지도자로 인정하자고 지지 하더라도
요한과 베드로가 서로 짰다 고 할 수도 있고,
상황이 매우 복잡해 졌을 것이다.

사탄은 욥을 시험에 빠트리려고 하나님께 요구한 것 같이
[욥기 1:11,12]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베드로와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뒤흔들려고 요구했다
욥은 성공했고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실패했다.

제자들 모두 다 넘어갔는데 베드로가 대표로 책망을 받는다.
주님께서는 기도로 그들을 지켜주셨고
베드로는 “돌이킨 후에 형제를 굳게 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누가복음 22:31-32]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여기서도 베드로는 “베드로”가 아니고 “시몬”이다

베드로가 공적으로 (저주를 하며) 예수님을 부인한 것을 제자들 (아마도 거의) 모두 들었는데
그 베드로에 대한 주님의 공적인 선언 이자 신임을
그 자신을 포함한 일곱 명의 제자들이 모두 같이 들었다.
베드로의 초대 교회 수장의 임무는 제자들 사이에서 전혀 문제가 없게 되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데 내적 불협화음은 큰 문제였을 것이다.
베드로가 아닌 제자가 수장이 된다면 먼저 구조 재편 위한 내부 갈등이 있었을 것이고
요한이나 야고보 그 외의 외적 문제가 없는 제자가 수장이 되었다면
초기의 복음은 강성을 띠고 포용력 없는 경직된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가롯 유다나 별 다름 없이 역사 뒤로 물러났을 것이고
구원의 복음은 사람의 연약함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안으로 위축되는
배타적인 작은 집단의 전유물이 되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베드로가 수장이었기에 연약하고 흠 있는 사람도 넓은 아량으로 받으며
내부의 갈등을 해결했을 것이다.
“주님을 세 번씩 부인한 베드로도 주님께서 받아 주셨는데,
우리가 이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 하랴” 했을 것이다.

사도 바울 같은 강직하고 열심인 성품은 그렇게 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마가 요한을 놓고 바나바와 대판 싸우지 않았겠는가? (cf 사도행전 15:37-39)

[요한복음 21:15-19]은 주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을 “베드로”가 되게 하신 장면이다
[요한 1:42] 의 약속을 이루셨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께서는 결정적 흠이 있는 사람도
돌이키게 하시고 믿어 주시고 변화시켜 쓰시는 분이시다.
”요한의 아들 시몬”을 “베드로”가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물론 흠이 없는(?) 사람도 사용하신다.

깨끗한 그릇이 되기에 힘쓰면(돌이킨 후) 주인이신 주님은
당신의 주권적 결정에 따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사용하신다.
[누가복음 22:32하]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요한의 아들 시몬”을 “베드로”가 되게 하신 주님께서 내게도 그리 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베드로전후서를 읽어 보면
노년의 베드로는 겸손하고 사랑이, 확신과 소망이 가득한 사도가 되어있다.
그의 글 어디에도 젊은 때 혈기 넘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늙어갈 수록 멋있어 지신 분, 이 분을 닮고 싶다.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봐도 상당히 유식해(?) 지기도 했다 (베드로후서 3:10-13)
어떻게 벧전 1:8-9, 벧전 3:10-11 같은 글을 쓰셨을까?
(아내와 함께 좋아하는 마음 따뜻한 말씀)

그리고 그 메시지가 이성에 호소하여 논리를 따지지 않고 직설적으로 선포된다.
진리는 논리적으로 변증할 필요가 없다 권위를 가지고 선포하면 된다.
물론 불완전한 이성을 지극히 의존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사도 바울 같은 분은 진리를 논증 한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 중 어려운 부분이 더러 있다 하셨다. 그러니 그냥 믿으라고 …

사도 베드로의 다음의 권면들은 모두 간결하고 직설적이다.
논리를 설파하지 않는다.

[베드로후서 3:15-16]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베드로후서 3:10-13]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

[벧전 1:8-9]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3:10-11]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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