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2진 부호 (기도)

컴퓨터는 2진 부호이다
“1” 아니면 “0” 이다
01010011100011…

어떻게 이걸로
복잡한 정보를 전달하고 재현할 까?
신기한 일이다.

우리가 쓰는 PC, Smartphone, Game기
모두 컴퓨터이고 모두 2진 부호로 필요한 일을 한다.
“1” 아니면 “0” 사실이다.


아기도 2진 부호이다.
 

울지 않으면 웃는다. (기저귀 차고) 

주로 우는 경우가 많다.
배고파도,
응가 했어도,
어디가 아파도,
졸려도 (잠투정 한다고 말한다)
그냥 응애 응애 하고 운다.
뭔지 모르지만 불편해서다. 

(노련한?) 엄마는 아기가 왜 우는지 알아서 해결해 준다.
엄마는 어떻게 그걸 알까?
신기하다.
신기해야 하는 데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걸 모르면 엄마가 “초짜라서 잘 모른다” 한다. 

(기도 시작에 대한 내 생각)

(
여기부터는 읽지 않고 넘어 가시겠군요 하하
)

어떤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기저귀 찬 아기다.
좀 큰 기저귀 혹은 작은 기저귀를 찬 것이 차이일 뿐. 

이것을 기도 했는데
그대로 응답이 안 되고
저것을 기도해도 도 안 되고
시간은 가는데 불안 초조하다
속이 상한다 

남의 유창한 기도는 번쩍이는 황금 열쇄 같고
떠듬떠듬하는 내 기도는 쇠로 만든 녹슨 열쇄 같다.
절대로 문이 안 열릴 것 같다. 

그런데 …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보면
문제는 해결 되어있다.
혹,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즉, 응답 받은 것이다.
내 녹슨 열쇄로도 문이 열렸고 문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 

아기는 무조건 운다.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어서.
쓸데없이 울면 엄마는 그냥 아기를 달랜다.
감정적인 안정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아기는 그렇게 쓸데없이 울지는 않는다.
“우는 아이도 다 속이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도움은 오직 엄마 밖에 없으니
엄마가 어딘가 있다고 믿고 울어댄다. 

아기(기저귀 찬) 그리스도인, 무조건 응애응애(기도) 해야 한다.
하나님 뭔지 모르지만 가슴 아파요 힘들어요 하고
하나님 앞에서 우는 것 하나님께서 마음 쓰고 보신다고 믿는다. 

“기도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마태복음 7:7-10]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속된 말로 하나님 앞에서 앙- 하고 울라는 말.
뭘 몰라도 힘들어요 하고 울라는 말씀이다. 

사람이 들으라고 기도하지는 말아야한다.
“내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네가 듣고 어떻게 좀 해 주면 안되겠니?”
하는 느낌을 주기 아주 쉽다.
그것은 하나님께 하는 기도(?)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부끄럽지만 나는…
“하나님 힘들어요”하고
“하나님 심심해요”하기도 한다.
논리적 모순이다.
나는 모순적인 부끄러운 존재이다.
이런 신앙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도
기도하지 않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
물론 기도도 성장해야 한다.
) 

예수님 제자도 엉뚱한 요청(기도)를 한 예가 성경에 있다.
[마가복음 10: 35-40]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그래도 주님께서는 심하게 꾸짖지 않으셨다.
대신 즉시 “NO!”하고 응답을 주셨다.
다른 제자들이 많이 화가 났었지만… 

일단 잘하는 기도를 고민하기 보다는,
떼라도 쓰는 걸 안 하는 것 보다 좋아 하시리라 생각한다.
응애 응애 하면서.
우린 하나님 앞에서 기저귀 찬 아기라서 말이다.
큰 기저귀냐 작은 기저귀냐가 차이가 아닐까? 

그러다가
점점 성숙한 기도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평소 생각인…
“이런 기도 하지 마세요” 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이런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기저귀 차고 있는
하나님의 어린 자녀라는 신분에 의지하여 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기도라도 출발점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
여기에 하지 마시라는 기도의 Link가 있습니다.
Link를 Click 하면 글이 보입니다.
)
들어와도 복 나가도 복 (성경의 이해와 적용)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성경의 이해와 적용)
야베스의 기도 (성경의 이해와 적용)

[신명기 28: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명기 28:13]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욥기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역대상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그래도 이런 기도를 하시는 분은 성경 꽤(?) 읽은 분.
이런 분은 하나님 앞에서 더 성숙한 기도를 해야 하니까
이런 사리에 맞지 않는 이기적인 기도 하지 말자라는 것이다.
그래도
기도 않는 것 보다 훨씬 나으니
이것 밖에 기도할 것이 생각나지 않으면
이렇게 기도하는 것도 괜찮다는 의견이다.
권장하지는 않지만. 

아- 나도 기도 잘 못하는데…
내 기도는 녹슨 열쇄 같은 기도 인데… 
아직도 기저귀 차고 앙- 양- 하는 기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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