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왕된 불행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는다)


왕 되기 전 사울은 참으로 멋있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왕 되고 권력을 잡은 뒤 그는 점점 더 추악하게 변해갔다.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그는 …

미스터 이스라엘급의 준수한 미남자였다
(사무엘상 9:2)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종(사환)의 의견을 들을 정도로 마음이 열린 사람이었다
(사무엘상 9:10)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 있는 성으로 가니라

자신의 처지, 입장에 대한 겸손한 견해를 가진 겸손한 사람이었다
(사무엘상 9:20-21)
20.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의 온 집이 아니냐
21.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모욕을 참을 줄 아는 겸손한 인내의 사람이었다.
(사무엘상 10:27)
어떤 비류는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성공 후에도 자기를 모욕한 사람도 품을 줄 아는 너그러운 마음을 소유했다.
(사무엘상 11:13)
사울이 가로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그러나…
왕이 되고 2년이 흐른 후에

(사무엘상 13: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이 년에

왕권이 견고해지자, 그는 나쁘게 달라졌다.
(사무엘상 15:17)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권력욕이, 물욕이,
권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다.
(사무엘상 15: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택하실 정도로 그는 괜찮은 인물이었다.
왕이 된 후 하나님께서 후회하실 정도의 매우 나쁜 인물로 변했다.
그 이후에 그는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치닫는다.
왜 일까?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왕)


점점 더 나빠지다가

전쟁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자신과 아들들이 모두 전사한다.

(사울 왕의 최후)


그로서는 왕이 되지 않는 것이 그 자신과 온 집안이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왕이 된 것은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불행이었다.

물론 역사는 한번 정해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만약 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다.
그래도 생각하게 된다.

사울의 경우, 그가 행사할 수 있는 권력에 걸맞게 그 성품이 변화하지 못한 것이 비극이다.
마치 시냇물과 양치기의 이야기에서 시내에 홍수가 넘친 것과 같다.

시냇물과 양치기

우리(나)는 하나님의 능력 보다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거룩하신 성품을 더 사모해야한다.

나는 생각 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믿는(생각하는) 사람에게
(감히 말하지만 나도 그런 사람의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허락하신 자원, 능력, 환경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맞게 주신 최선의 자원, 능력, 환경이라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많은 것을 맡기시지 않은 것은 그것이 그 때 나에게 최선이기 때문이라고
(재산, 능력, 명성, 권력… 무엇이든지)
또,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셨을 때는 …
당연히 감사한 일이지만
더욱 더 겸손하고 조심하고 몸을 도사려야한다는 것을…
그 자원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신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 내게 잠시 맡기셨다는 것을 절감해야한다.

마치 이런 것과 같다.
회사 재무 부장에게 회사 돈을 관리 집행하는 권한을 맡겼는데
그 돈 한 푼이라도 자기(가족, 친구…)를 위해 쓰면 공금 횡령의 범죄다.
허용된 범위 내에서 직원들 회식을 사면 정당한 집행이다.
상대 거래처 직원에게 식사를 사면 영업 촉진비의 집행이다.
(물론 그 때 자기도 함께 먹는다)

하나님께서 공적으로 내게 맡기신 것으로 조금이라도 내가 유익을 보면
하나님 앞에 공금 횡령의 범죄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40일을 금식하셨어도 돌로 떡을 만들어 드시지 않으셨다.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이신 그 분께서…
사도 바울은 남의 병은 고쳤어도
하나님께 세 번이나 자기 육신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기도했어도
“No”라는 응답을 받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이렇게 할 의지가 없으면
이 세상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며 사는 게 옳다.

(
그래서 나는 주의 종이라 하는 사람이
누리는 특권과 특혜에 대하여
그것이 하찮은 것으로 보일 지라도
극심한 알레르기를 느낀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간에
그런 것을 좋아하거나 누리려면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을 떼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지 말라
“왜 주의 종은 이렇게 살아야 되나?”라는
질문을 하고 싶으면 하나님의 종이라는 명칭을 떼시라!

나는 그래서
목사의 납세 거부를 반대하며,
부유한 교회의 세습을 반대 한다,
“그런 비판은 하지 말라 누워서 침 뱉기다“ 라는 주장을 반대한다.

뭐가 주님을 따라 간다는 것인가?
그러면서 어떻게 남들에게 주님을 따라가라고 외칠 수 있는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찬송을 부르며
주님과 사람을 섬겨 살겠다고 선언하고
주의 종에게 이 정도의 특혜도 안 되나 라고 생각함은 모순 아닌가?

물론 그들이 존경 받아야 한다는 점은 백번 동의 한다.
그러나 “존경 = 물질,특혜”의 개념은 반대한다.

“겸손히 희생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종이 많다”는 사실, 나도 인정한다.
그리고 그런 분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그런 분들의 예를 들어 그 뒤에 숨지 말라.
그들은 그들이고 나와 당신은 나와 당신이다.

이것이 어디 성직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랴.
모든 공직자에게도 똑같이 요구 되는 말인데…
(정치는 영- 감이 없다)
해도 너무 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교회에 꾸준히 출석을 하면서
나 같은 생각을 하는 교인은
참 골치 아픈 환영 받지 못하는 교인일 것이다.
그러려면 가나안 성도나 할 것이지
왜 교회 나오나 모르겠다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

사울의 최대의 불행은 왕이 되었을 때에
왕이 되기 전의 겸손과 절제를 망각하고
마음으로부터 그 권력을 놓지 못하고 연연했기 때문.
그는 왕이 되지 않는 것이 더 나았다.

시냇물에 홍수와 같은 넘치는 자원(resource), 권력은 결국은 저주가 되는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노래했다.
주님과 그 구원만으로 만족하겠다고.
(하박국 3;17-18)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모든 자원(재산, 능력, 명성, 권력… 무엇이든)의 주인이시며 주권자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 가지고 내 것처럼 유세(속된 말로 지랄)을 떨지 않겠다.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
(욥기 1:21-22)
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내게 다짐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항상 최선의 것으로 공급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매일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며 나 자신을 설득하며 살자.
(마태복음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세상을 살면서 영안은 항상 흐려지게 마련이다.
매일 매일 영의 안목을 새롭게 하며 살아야 하겠다.

(요한계시록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하나님의 능력, 지혜, 부요… 이런 것들 보다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사모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지 못할 때마다 받을 비난과 조롱을 감수한다.
그것이 주님을 닮겠다고 선언한 사람의 짐 아닌가?
(물론 나, 부끄럽게도 비난, 참 많이 받는다)

(사무엘 상)을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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