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과 은사 (Talent & Gift)

나는 은사(Gift)? 재능(Talent)이 많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정말 그런가?
은사(Gift)는 무엇이고 재능(Talent)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재능(才能, Talent):


(국어사전적 의미)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

(나의 정의)
하나님께서 우선적으로 나를 위하여 주신 남보다 나은 능력.
나에게 우선적으로 좋고 남에게도 유익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자연계에서 …

(치타: 뛰어난 재능을 받은 아름다운 동물)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만물(동물)에게 그에 맞게 특별한 능력(재능?)을 주셨다.

토끼, 사슴, 노루: 살아 남기위한 빠른 발
치타: 사냥을 위한 빠른 발
개, 늑대: 사냥을 위한 뛰어난 후각
독수리, 매: 높이 나는 능력과 뛰어난 시력

(박쥐: 뛰어난 재능을 받은 멋진 동물)


박쥐: 초음파 레이다

흰개미: 나무를 먹어 소화시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능력
쇠똥구리: 쇠똥을 먹어 자연으로 되돌리는 능력
지렁이: 유기질 흙을 먹어 농사에 좋은 토양으로 바꾸는 능력
식물: 물, 공기, 태양 에너지로 유기물(먹을 것)을 생산하는 능력
등등…

자연계에서 이들은 서로 조화, 균형을 이루며 공생한다.
내게 있는 독특한 능력으로 내가 살고 주위에도 균형을 이루어 유익을 끼친다.
자연계의 생물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능력(Talent)이다.
자연계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한다.

인간 세계에서…


사람에게는…

음악(목소리, 악기 연주), 운동, 공교한 손재주, 뛰어난 두뇌 등등을
사람에 따라 주셨고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의지하여 자랑하고 산다.


대장장이, 도자기 만드는 사람, 농부, 어부, 예술가, 상인…

모두 자기의 특징적 재능 Talent를 사용하여 직업을 삼아 자기의 삶을 영위하고
서로 서로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끼친다.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고 칭찬을 한다.
그들이 그로인해 유익,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서로 도와가며 공존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의 재능, 능력, 직업이 자랑스럽다.

재능은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하여 발휘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끼친다.
(
재능을 자기만 위해서 사용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재능을 범죄에 사용하는 경우이다.
)

재능(Talent), 하나님께서 우리(피조물) 모든 에게 주신 은혜이다.
재능은 선천적인 것이 대부분이고
후천적으로 훈련에 의해서도 개발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의 장점만을 자랑하지 말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라고 하신다.
(예레미야 9:23,24)
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사 (Gift):


은사(Gift)는 재능(Talent)과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은사가 어떤 것인지, 굳이 비교하여 예를 들자면
국가에서 경찰, 검찰청장, 군인, 법관, 공무원 등등을 두거나.
회사에서 영업부장, 재무부장, 공장장, 연구원 등을 임명하는 것과 비슷하다.

주는 자(주권자, 임명권자, 국민, 사장)가 자기의 목적을 위해
할 수 있는 능력과 그것을 행사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회사의 직책과 직위)

재무부장이 되고 싶은 사람이 많아도 사장 뜻에 맞는 사람만 재무부장에 임명한다.
경찰 지원자는 많아도 국가는 일부의 사람을 선별하여 경찰로 임명한다.
어떤 직책은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다른 직책은 소수의 사람만 필요하다.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은 주인, 결정권자이다.

은사는 바로 그런 것이다.

(
직책: 맡긴 일의 기능, 종류이며
직위: 맡긴 일의 한계 즉 권위를 부여 한다.
세상일도 그렇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이것을 마구 휘두르면 범죄자가 된다.
성령의 은사도 마찬가지다.

재능은 다르다. 많은 재능은
잘하면 잘할수록 잘한다고 박수치며 칭찬한다.
잘할수록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니까.
)

은사의 주인 = 성령(하나님)


은사의 주인은 하나님(성령)이시다.

은사(Gift)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 교회를 성숙한 믿음에 세우기 위해 성도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특정 은사를 사모할 수는 있으며 그래도 좋다
그러나, 그것을 허락하고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은사를 주시는 것은 성령님의 주권인 것이다.

(고린도전서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분은 하나님이고, 사람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야”

내가 어떤 은사를 갖고 싶다고 흉내 내고 연습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성령의 목적, 필요에 의해 내게 허락하신 것이 나의 은사이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은사도 내것이 아니다.
그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것을 가지고 내 것인 양 자랑하는 것은 죄이다.
그것을 내가 남용, 오용하는 것은 주인의 뜻에 어긋나는 범죄이다.
경찰이 총으로 시민을 살해하는 것과 같은 범죄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은사를 회수할 권한을 가지고 계시다.

은사의 목적


하나님의 자녀, 교회를 성숙한 믿음에 세우기 위해서 특정인에게 주신다.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나를 위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성도를 세우기 위해 주신 것이다.

재능(Talent)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 지으신 세계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로 주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주신 것이다. (재능과 은사의 큰 차이점이다)

그러나 은사는 나를 위해 주신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은사는 내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재능도 넓은 의미로 하나님이 주셨으니 내 것이 아니기는 하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은사를 임시로 맡은 청지기이다.
은사는 주시는 분(성령)의 결정 사항이다.
회사 돈, 공금, 직위, 공무원의 직책 같은 것이다.

(에베소서 4:11-12)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은사의 사용.


목적에 맞게 행사해야한다.

하나님의 자녀, 교회를 성숙한 믿음에 덕을 세우는데 써야한다.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죄악이다)
자기가 영적으로 우월한 사람임을 나타내는 데 써도 결코 안 되는 것이다.
자기가 그것으로 어떠한 종류의 유익을 얻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이 점에서 재능은 은사와 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백화점 화장품 코너 직원의 화장한 모습이 형편없거나
미장원 가서 미용사의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 화장품 가게, 그 미용실은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저도 잘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잘해 줄 것인가 하는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재능은 나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면 남에게도 기쁨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재능은 우선적으로 나를 위해 주신 것이다.
)

은사의 오용, 남용의 비유를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회사에서 나를 재무부장을 시켜서 회사의 돈(공금)을 회사를 위해 사용하도록 맡겼다.
그 돈을 단 1 cent 라도 나나, 내 가족을 위해 쓰면 공금 횡령의 범죄이다.

(2) 국가에서 나를 경찰로 임명하고 내게 시민을 지키라고 총을 주었다.
그것으로 사람을 위협하여 무엇인가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면 범죄다.
시민 앞에서 총을 꺼내 들기만 해도 자기가 지켜야 할 시민을 위협한 범죄이다.
자기의 권위를 과시하라고 맡긴 총(은사)가 아니기 때문이다.그는 총을 잘 쏘기 위해 사격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시민에게 육체적 정신적 피해가 없는 사격장에서 만 해야한다.

(3) 물론 시민 앞에서 언제나 행사 해야만 되는 직책도 있다.
청소부, 우편배달부 같은 공무원.
이런 직책은 유익을 주는 봉사의 기능이 거의 대부분이고 자기의 권위는 적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공무원)

그래서 교회에서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최고의 은사에 대해서는 좋다고는 말하면서
그것을 사모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교회에서 몸으로 힘들게 봉사하는 분은 많은 경우
세상에서 내세울 뭔가 없는 분이 경우가 많다.
그저 몸으로 힘든 일 을 해서 봉사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
나는 세상에서 잘난 분들이 교회에서는 몸으로 하는 사람의 봉사를 할 것을 적극 권고한다.
세상에서 대접받고(?) 살았으면 교회에서 성도를 봉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사랑의 은사도 아주 조금 실천해 보고…

은사의 사용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질서있게 해야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서 통역이 없으면 방언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고린도전서 14:27,28)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베드로전서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에베소서에 나오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
성령께서 마련하신 은사이며 직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목표인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에
써야 하는 것이며 개인의 유익 영광을 조금이라도 얻으려한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공금횡령과 같은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 행위라고 생각한다.

(에베소서 4:11-13)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고린도전서 12:7-11)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나를 위하여 은사를 사용하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나를 위하여 은사를 사용하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의 수건만 갖다 대어도 병이 낫게 했던 사도 바울은 제병을 고치지도 못했다.
세 번이나 하나님께 간구하고도 “No”라는 응답을 받았다.
그의 신유의 은사는 자기의 병을 고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었다.
(주님 그 것 하나 정도는 봐주시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아니다)
(고린도후서 12:7-9)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려 하심이니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5000명을 먹이신 주님께서도 자신은 40일 금식후 주리신 때도 돌로 떡을 만들어 드시지 않으셨다.
(마태복음 4:2-4)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그래서 나는 교회에서 다른 교우 들이 있을 때
큰소리로 방언 기도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

은사의 충돌 방지

성경은 은사의 충돌을 피하여 질서 있게 은사를 사용하라고 명령한다.
요새는 그런 일이 별로 없어서 사람들이 관심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고린도전서 14:26-40) 일부만 인용 함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은 다른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찌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40.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은사를 거두심


은사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은사를 받았는데 은사를 주신 목적이 달성했거나
은사를 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그 은사는 거두어 가신다.

내가 경찰이었는데 더 월급이 많은 직업으로 바꾸거나 사직을 하면
당연히 총을 반납해야 한다. 계속 가지고 있기만 해도 범죄이다.

성경은 은사는 그친다고 선언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3:8-10)
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성경은 그치지 않는 영원한 은사는 오직 “사랑” 뿐이라고 말 한다.
나는 “사랑”을 은사로 사모하는, 혹은 자랑하는 그리스도인은 별로 보지를 못했다.
아마도 자기 희생이 결정적으로 필요한 어려운 은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좋은 최고의 은사인 “사랑”을 사모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름답다.

은사는 목적이 달성되면 더 이상 필요가 없으므로 거두어 가신다.
은사의 목적은 성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에베소서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예를 들면…
집(교회 건물)을 짓는 것을 생각해 보자.
(1) 산을 깍아 터를 닦는다. (다이나마이트, 불도저, 포크레인 필요)
(2) 기초를 놓는다. (큰 돌, 시멘트 믹서기)
(3) 벽돌 쌓기
(4) 지붕 얹기, 마루 깔기 (망치 드릴…)
(5) 내부 페인트…
단계 단계에 따라 필요한 도구가 다르다.
건물 내부 페인트를 할 때에 불도저로 밀고 들어오면 집을 망가트린다.
큰일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은사는 그치며
교회사적으로도 은사는 그친다고 생각한다.
벌서 성경에서도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로마서에서 은사가 다르다.
언급이 안 된 것도 있다.
고린도전서의 은사가 우리 보기에 가장 다이나믹하다.
그러나 원시적이고 거칠다.
아마 고린도 교회가 전반적으로 초기 성장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의견에는 현대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중요성과 권위가 커지는 이때에…
하나님의 교회가 성숙하고 완성되어 가야 하는 이 시대에…
초대 교회 시대의 은사 중 많은 것이 별로 필요하지가 않다.
시대적으로 교회에 도움이 안 된다.
어떤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건물의 완성이 가까운 때에 기초 닦는 다이나마이트를 터트리면
건물을 부술 뿐이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초대 교회 시절의 폭약을 터트리는 것과 같은 강력한 은사는
지금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성령께서 허락하시겠는가?

그때의 하나님이 지금도 동일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금도 그때와 동일한 은사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말씀에 대한 이해와 믿음 순종 그리고
“사랑”의 은사가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는 시대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그것을 사모하라고 하시는 때라고 생각한다.

문명세계, 말씀의 중요성이 강조 되는 이 때에 그런 은사 사모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거 받으면 어덴가 쓰고 싶을 텐데 쓸 기회 없으면 얼마나 허전하겠는가?

그러나
미개발, 문명이 낙후된 오지에서
선교를 하는 경우를 가정하면…
무당이 판치고, 사탄이 가짜 기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곳에서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에게
초대 교회 시대의 그런 은사를 성령께서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도를 보호하고, 말씀의 권위를 높이며, 성도를 믿음에 세우기 위하여.

또 다른 예로는
과거 공산 소련에서
어느 전도자가(아마도 빌리그레이엄?) 전도집회를 하는데
러시아어로 통역하는 사람이 공산주의에 맞게 내용을 변경해서 통역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 설교자가
러시아어 방언으로 설교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
사실인지는 모르나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 같이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모인 교회에서
한 성경을 같은 언어로 읽고 찬송하는 그 장소에서
방언의 행사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요즘 교회의 모임에서 방언이 아주 적은 것이라 생각한다.
방언이 성도의 건강한 믿음에 필수라면 성령께서 누구에게나 주실 것이다.
그러니 예를 들어
“우리 지금부터 30분간 다 같이 방언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십시다”
혹시 이런 일이 있다면 대단히 우수운 일이 될 것이다.

(
은사는 성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수단으로 주신 것이다.
은사가 목적이 되어 은사로 영광을 돌리자는 것은 넌센스이다.
“은사주의”가 은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 은사주의라는 말이 그런 뜻을 강하게 의미 한다 –
목적과 수단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은사주의”를 반대한다.
)

성령의 은사는 성령께서 성도의 믿음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주권적으로 주시고 주권적으로 가져가신다.

그러니까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수단이지
믿음의 증거나 표적이 아니다.
은사를 행사하는 사람이 더 경건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민수기에서 발람의 나귀를 보라

(민수기 22: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
(베드로후서 2:16)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말하자면 말 못하는 나귀가 방언으로 사람의 말을 했다는 것인데
여기서 나귀가 경건하고 믿음좋다 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래서 은사를 믿음과 경건의 척도로 중시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누가복음 19:40)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우리 주님은 필요하다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게(방언을 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내 생각에는“사랑”이 외의 모든 은사가 다 마찬가지 이다.
(
방언하는 분을 모욕하고자 하는 뜻은 전혀 없다.
결국은 그 말이 그 말 아니냐 ?
방언하는 사람은 나귀나 돌이라 말하는 거 아니냐?
라고 말할 지라도.
)


재능과 은사에 대한 다른 비유


백화점 화장품 코너를 지나갈 때 그 점원의 화장한 모습이 형편없거나

미장원 가서 미용사의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 화장품 가게, 그 미용실은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재능은 나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면 남에게도 기쁨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재능은 우선적으로 나를 위해 주신 것이다.

나의 은사는 무엇일까?


나의 은사가 무엇인지 많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말씀인 것 같다.
나는 신학을 한 것도 아니다.
성경의 원어를 공부한 것도 아니다.
공과 대학에서 물리학(응용물리학)과를 다녔다.

책(신학서적 포함)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다.
내 책장을 보면 책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별로 안 읽으니까.
책은 초등학교 때 동화책을 많이 읽었고.
고등학교 다닐 때 까지 읽은 것이 전부다.(거의 교과서 수준)
Blog에 내가 하는 시의 해설도 거의 교과서에 나온 것이다.
(
책은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책을 많이 읽었다
늙은 지금도 종종 만화책을 읽는다.
난 무식한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

(
책 별로 없는 내 책장. 내 책 전부.
왼쪽은 거의 아내 책
오른 쪽은 거의 성경과 사전.
)

그런데
성경은 읽었다면 많이 읽었다. (현재 51회 통독)
나는 내가 성경을 읽는 만큼 말씀을 사모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면
읽은 성경의 내용과
내가 초등학교 대학까지 학교에서 공부했던 내용과
인생을 살면서 경험했던 것들과
예수님 믿고 생활을 하면서 경험했던 것들 등등이
머리속에서 정리되면서 성경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건전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된다.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다)

아마도 말씀을 사모하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이것은 나의 시간 투자, 노력,
타고난 사고와도 무관하지는 않아서
재능과 은사가 뒤 섞인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다.
)

내가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은 것은
누구에겐가 말을 해서 전달해야 하고
그래야 덕이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자의건 타의건 자랑(질?)이 되고 만다.
적당한 경우에 때에 맞는 이야기를 크게, 명료하게 말 해야
덕이 되는 것이 말씀의 은사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이것은 가르치는 은사와도 같은데
아무 때나 지적하며 가르치면
듣는 사람이 매우 기분이 나쁜 때가 많다.
교만하다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다.
은사의 사용은 이래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

또한, 유감스럽게도
교회에서 이것을 발휘하기는 매우 조심스럽고 쉽지가 않다.
요 주의 인물로 주목 받기가 매우 쉽다.
나도 이것을 잘 안다.
(
내 생각에는
종교계도 질서라는 이유로
정신적, 영적인 영향력의 분산을
매우 꺼려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질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잘못된 교훈을 방지하고자 하는 조치일 수도 있고
이기심으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행위일 수도 있다
)

다행히 face book 이나 Blog가 있어서 조심스럽지만
여기에 글로 표현할 수가있다.

아무쪼록 읽는 분들의 믿음과 개념에
도움이 되면 더없이 기쁘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냥 무시하거나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내게 허락하신 은사(?)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주님을 만나면 주님을 뵙는데 무슨 지식이나 깨달음이 더 필요할 것인가?
나의 나이가 이제 70을 바라본다. 청년 나이는 아니다.
나이가 더 들고 육신이 쇠해지거나 혹시 치매가 온다면
나에게 무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남아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은혜로 맡겨주신 동안 섬기는 데
조심하여 감사함으로 사용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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