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 14-18)
14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함께 산에 오르셨다,
산에서 모세, 엘리야와 이야기 하고 다른 제자들에게 내려오셨다.
큰 무리가 제자들을 둘렀고 서기관들과 뭔가 변론하다
그들이 예수님께 달려왔다.
예수께서 물어 보셨다.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제자들은 무엇을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었을까?
그런데 한사람이 급히 와서 말했다.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귀신이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하여 갑니다“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대화의 내용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아마도 제자들이 대답 했다면
“선생님 저희는 왜 귀신을 쫓지 못했을까요?”
“지난번에는 잘 했었는데?”
정도일까?
서기관 바리새인이 답했다면
“당신 제자들도 별거 없구만…”
정도일까?
그런데 이 아버지의 말은 예수님의 질문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제 아들 고쳐 달라고 왔는데 못 고칩니다”
이런 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급한 사람은 무조건 자신에게 긴급하게 중요한 것을 말한다.
그게 전후 사정에 맞는 지 틀리는 지는 상관없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고 다급한 외침이고 요청이고 어찌 보면 생떼이다.
이 아버지는 너무도 급해서 예수님의 질문과는 관계없이
“내 아들 고쳐주세요”하고 외친 것이다.
아마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그러나 내게 해결 방법이 없는 문제는
주님께 이렇게 다짜고짜 외쳐도 될 것 같다.
주님이 들어주셨으니까…
주님께서는 이 아버지의 외침을 들으시고 그 아들을 고쳐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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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것은 주제를 벗어난 이야기인데,
우리가 어떤 특정 주제로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상대의 말이나 질문, 원래의 주제와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반복 주장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
참 대화가 어렵다.
물론 예수님이 시라면 (능력이 많으시니까)
다 들어 주시고 해결도 해 주시겠지만.
사람인 나(우리)는
그럴 만한 역량이 없다.
그러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원 주제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그러면 논쟁이 되기 아주 쉽고
논쟁에서는 혹시 이겨도, 저도 마음속이 편하지 않다.
(
나는 대부분 진다.
그리고 이겨도 저도 기분 나쁘다.
이겨도 저도 사람을 잃기 때문이다.
이기면 상대가 기분 나빠 나하고 말하기 싫을 것이고.
지면 상대는 속으로 나를 무시하고 떠나기 십상이다.
이래저래 찝찝하다.
)
이런 분들과는 정말 이야기하기 거북하다.
나도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해야 하는데
자꾸 주제와 다른 곳으로 끌려가면 그렇게 된다.
주제로 돌아가려고 애쓰면 또 논쟁이 되고.
그럴 것 같으면 주제를 바꾸어서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생각한다.
요즈음.
나는 A를 주제로 말했는데
끼어들어서 B, C를 반복하는 사람 만나면 좀 불편하다.
이런 분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뭐 이것은 성경의 이야기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이야기이지만
성경에 그런 실례가 있는데
이 예화에서 이 아이의 아버지의 예가 그렇다.
이 경우는 주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끝이 났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토론 논쟁에서는 참 곤란하다.
나도 남의 말을 주의해 들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