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와 무남독녀

(하나님 앞의 실책에 대한 세 사람의 선택)

다들 아는 것이지만, 나의 말은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야고보서는 말(혀) 사용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야고보서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나를 포함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말, 행동의 심각한 실수를 한 사람이 많다.
사사인 입다, 왕인 사울 또 다른 왕인 다윗을 생각한다.
그들의 말, 행동의 실수에 대한 반응과 처신에 대하여 생각한다.

(1) 입다 : 자기가 말 한대로 함.

입다는 적군 암몬과 전쟁하러 가면서 하나님께 서원한다.
그 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을까 이상한 서원을 한다.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서 이기게 해주시면”
“내 집에서 나와 영접하는 자를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사사기 11:30-37]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37 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내가 나의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처음으로 뛰어나와 그를 맞이한 사람은 바로 그의 무남독녀 딸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서원 한 것은 지키라고 하셨다.
[민수기 30: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그 서원을 지켜도, 지키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는 경우는 어떤가?
그 서원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경솔한 서원이었다는 말이다.
잘못된 서원이라도 지키는 것이 옳은가 지키지 않는 것이 옳은가?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입다의 서원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했다.
[레위기 27:28,29]
28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29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성경을 읽어보면 온전히 바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셨다.
사람이 정해서 사람의 생명을 바친 것은 입다의 경우 밖에 없다.
예를 들면, 여리고 성, 여리고 성에서 재물을 훔친 아간,
가나안 땅의 나라와 성들, 사울이 전멸시킨 아말렉 등등
온전히 바칠 대상은 하나님이 정하셨다.
사람이 아니었다.

[여호수아 6:17] (개역개정) 온전히 바쳐야하는 여리고 성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여호수아 7:13] 아간 이야기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여호수아 10:40]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 진멸하는 것 = 하나님의 명령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온 땅 곧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진멸하였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것과 같았더라

그런데 입다는 자기가 결정했다. 누가 될지도 모르면서.
그래야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이라 생각했을까?

만약에 입다가
자신의 경솔함을 하나님께 자백하고 은혜를 간구했다면
“하나님 경솔한 저를 처벌하시고 딸은 살려 주세요.
저는 이스라엘의 사사도 싫습니다“라고 했다면 어찌되었을까?
물론 성경에는 없는 가정이기는 하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흔쾌히 받아 주셨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유는 모르지만 입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두 달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은혜 간구할 시간도 그냥 보내었다.
[사사기 11:37]
아비에게 또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용납하소서

그 두 달 동안 그는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했을까?
하나님께 어떻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까?
다른 사람들, 제사장들과 상의를 했을까?
모르긴 하지만 아마 그렇게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자기의 무남독녀 외동딸을 번제로 드렸다.
생각만 해도 참혹한 일이었다.
하나님을 잔인한 분으로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도 슬프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켰으면
“아멘- 할렐루야!”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이 되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해마다 입다의 딸을 위하여 4일 씩이나 우는 날을 만들었으니
그게 무슨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는가?
성경은 입다가 서원을 지킨 것이 결과적으로 덕이 되지 못했음을 간접적으로 말한다.
내가 잘못 뱉어낸 말을 지켜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사기 11:40]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모세는 범죄 한 이스라엘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용서하지 않으시려면 자기 이름을 하나님의 책에서 빼달라고 매달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지 않았던가?
[출애굽기 32:12,31,32]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자기가 경솔히 낸 말 대로 한 것이 잘한 일이 아니다.
자기의 실수, 실언, 경솔, 죄를 딸의 생명으로 해결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죄를 담당해 주시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
하나님께 엎드려 매달렸어야 한다고 믿는다.
“제게 벌을 주세요, 제가 죽어도 좋습니다 죄 없는 딸은 살려 주세요”
이렇게 하나님께 구했어야 한다.

(2) 사울: 어물쩍 넘어감.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과 이스라엘 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이 위기의 때를 믿음으로 타개한 사람이 왕자 요나단이다.
[사무엘상 14:6,7]
6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병기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블레셋을 공격하는 요나단과 병기든 자)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단숨에 전세를 역전 시킨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때 사울 왕은 흥분하여 과격한 말을 한다.
[사무엘상 14:24,27]
24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수하는 때까지 아무 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백성이 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27 요나단은 그 아비가 맹세로 백성에게 명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꿀을 찍고 그 손을 돌이켜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요나단은 모르고 있었기에 숲속에서 꿀을 찍어 먹었고…
그래서 … 결국은 죽게 되었다. (사무엘상 14:24-46)
사울은 요나단을 죽이겠다했으나 백성들의 만류로 어물쩍 넘어간다.
[사무엘상 14:44,45]
44 사울이 가로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사하였음이니이다 하여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하나님께서도, 백성들도 사울의 결정이 경솔함을 알려 주었다.
이 사건은 더 이상의 문제는 만들지 않았지만 왕으로서의 체면을 또 손상된다.
그는 자기의 말실수의 결과를 그냥 우물우물 넘어갔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일이기도 하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면 아마 그의 왕권은 더 길었을지 모른다.

(3) 다윗: 하나님께 매어 달림.

사무엘하 11,12장 에는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 밧세바를 빼앗은 일화가 나온다.

하나님의 징계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심하게 앓는다.
다윗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를 구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살려 주시기를 금식하며 기도한다.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렸다.
아이가 죽고 나니 더 이상 금식하지 않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음식을 먹는다.
어찌 보면 간사하기도 하다.
[사무엘하 12:16-20]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 이레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의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의 죽은 것을 고할 수 있으랴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함이라
19 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 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사무엘하 24장에는 다윗 왕이 인구조사를 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군대의 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사건을 일으키다.
[사무엘하 24:11-14]
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2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13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일동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하게 하소서
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번제를 드리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에게 셋 중 하나를 고르라 하신다.
(1) 7년 기근 (2) 3개월 적에게 쫓겨 다님 (3) 3일의 전염병

다윗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 납작 엎드린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처분만 바란다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하겠노라고.
하나님께서 자비롭게 해주실 것이라고.
징계를 받아도 사람 아닌 하나님께 받고 싶다고.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전염병으로 이스라엘을 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시고 그는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사무엘하 24:25]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말을 듣게 된 요소라 생각한다.
[사도행전 13:22]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죽어갈 때에도
다윗이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 후 징벌을 선택할 때에도,
그래서 역병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창궐하였을 때에도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그 앞에 납작 엎드려 은혜를 구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신다고 말한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그 은혜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징계하실 때에는 정말로 참다 못하셔서
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징계하시는 것이라 믿는다.

다른 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은혜롭고 자비하신 내 주님 앞에서 조차도
“이렇게 까지 구하는 것은 염치가 없지 않은가?”
“이런 것까지 구하는 것은 거시기 하지 않은가?“
“보다 성숙한 믿음의 모습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가?”
마음속에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헛된 자존심, 교만을 차동한다.
알량한 자존심의 나만 그럴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염치 불구하고 담대히 나가는 믿음이 필요하다.
즉시, 겸손히, 납작 엎드리는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 아들은 어렸을 때
“엄마 보고 싶어 막 오다가 오줌 쌌쪄. 엉 엉”하며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이와 같은 믿음이 필요하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에베소서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생각나는 찬송가 두곡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크신 이름.

God is so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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