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Context, 적용-Allegory

(사도행전 1:8)

(행 1:8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나안 정복 직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명령을 생각하면

(여호수아 1:7,8)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을 읽고, 이해는 했는데…
생활에서 순종, 실천 혹은 적용을 하지 않는 다면
종교(기독교)적 위선자가 될 것이다.

(
내 경험상 실생활에서 실천은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물론 깨닫고 이해한 것에서 끝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여기서는 순종이 중요한 경우를 생각하는 것이다.
)

성경의 교훈, 이해한 것을 삶에 적용, 실천, 순종하기 위해 묵상을 한다.

깨달음은 성경 묵상의 최종의 목표가 결코 못된다.
매우 중요한 목표이기는 하나 중간 목표이다.
성경 묵상의 최종 목표는 온전한 순종이라 믿는다.

올바른 이해는 올바른 순종을 위한 것이며
비록 이해가 안 되어도 믿음으로 순종할 것을 주님은 원하신다.
많은 경우 먼저 믿음으로 순종해야 올바른 깨달음이 온다.
그래서인지 찬송가(예수로 나의 구주삼고)에

“Perfect submission perfect delight” 라는 가사가 있다.
(
이점 순수 학문과의 차이점이다.
순수 학문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 목표이다.
예를 들면 내가 자주 말하는 물리학 같은 것이 그렇다.
)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한다.
묵상의 방향과 목표는 분명하다.
이점이 사람들이 직감적으로 생각하는 묵상과 성경 묵상의 차이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그 명령은 나(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순종, 실천, 적용을 위해서는 올바른 이해(해석)가 필요하다.
엉뚱하게 그릇되게 이해해서는 올바른 순종이 나올 수가 없다.
그릇된 순종, 실천은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역하는 것이 되기 매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며
성경 문맥(Context)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묵상은 필요하다.

나는 성경의 우의적(Allegorical) 해석을 매우 싫어한다.
엉뚱하게 제 맘대로 이해, 해석하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다.
성경의 문맥을 따라 해석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순종, 실천, 적용의 경우는 어떤가?

 

주님의 명령 사도행전 1:8 을 예를 들어 생각해 본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21세기, 오늘날, 유대 땅에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 내가
사도행전 1:8, 이 말씀을 가지고 문맥을 따라 순종 실천하려한다고 하자.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하여 비행기를 타고
예루살렘에 가서 전도하고,
사마리아 지역으로 가서 전도하고,
온 유대 땅 지역으로 가서 전도하고,
땅 끝가지 가서 전도한다면.
(물론 가정이다)
진지하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당장 생각할 것이다.

예루살렘부터 가서 전도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예수님 부활 당시의 제자들에게는 그래야만 당연히 맞는 말씀이다.

그런데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예루살렘 – 자기가 살고 있는 주변 혹은 가족, 친구
온 유대 – 자기가 살고 있는 주변의 더 넒은 범위 (자기 나라)
사마리아 – 자기가 싫어하는 원수 같은 곳
땅 끝 – 말 그대로 땅 끝처럼 먼 곳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이고 현실적일 것이다.

“예루살렘” = “자기가 살고 있는 주변 혹은 가족, 친구” 다 라고 해석하는 것은
이건 분명히 문맥을 따른 해석이 아니고 Allegorical 해석이다.
그리고 이것은 해석으로서는 잘못된 해석이다.
그 당시 제자들에게는 맞는 말이지만
오늘 날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예루살렘” = “예루살렘” 이지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니다.

사도행전 1:8을 가지고 복음 전파에 관한 실천, 순종, 적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을 해야 하는데 (수 1:8 처럼)

예루살렘 – 자기가 살고 있는 주변 혹은 가족, 친구
온 유대 – 자기가 살고 있는 주변의 더 넒은 범위 (자기 나라)
사마리아 – 자기가 싫어하는 원수 같은 곳
땅 끝 – 말 그대로 땅 끝처럼 먼 곳

이렇게 대음시켜 적용을 해야만 문제가 없다.
문맥을 따라 문자적으로 순종, 실천, 적용하는 것은 매우 큰 문제가 된다.
매우 어리석다.
(물론 그렇게 해도 주님께서는 칭찬해 주시리라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보다 더 이전에, 역사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환경에서 기록 된
성경 말씀에 오늘날 순종하려면 이해 해석은 문맥을 따라서 하는 것이 백번 옳지만
순종, 실천, 적용을 하려면 Allegorical 대응(mapping)이 옳은 방법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의 해석은 문맥(Context)를 따라서 한다.
적용은 나의 삶에 맞게 Allegorical하게 대응(mapping) 시켜 실천한다.
이것이 옳은 태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반대는 매우 큰 문제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순서를 바꾸면 곤란하다.
모두 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정리했을 뿐이다.

(
만약에 누가 행 1;:8 을 성경에 있는 그대로 순종하기 위하여
비행기 타고 예루살렘에 가서 전도하고
다음에는 사마리아 지역에 가서 전도하고 등등
했다고 하자.
분명히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귀엽고 대견스럽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시며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상상을 해 본다.
물론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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