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를 쪼개지 않아서(성경의 문맥)

   

창세기 15:9,10 이하에 보면
아브람이 하나님께 제물을 준비한 기록이 나온다.
삼 년 된 암소, 암염소, 숫양 그리고 산비둘기 새끼, 집비둘기 새끼이다.
암소, 암염소, 숫양은 반으로 쪼개었는데 비둘기들은 쪼개지 않았다.

그런데 이어서 창세기 15:13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400년 동안 객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 다고 하셨다.

이것을 창세기 15:13 과 15:10을 바로 인과관계로 연관 지어 아브람이 비둘기를 쪼개지 않아서 (그 벌로) 그의 자손이 400년간 종살이를 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상당히 많은 사람(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정말로 그럴까?
올바른 성경의 교훈인가?
성경을 앞뒤로 자세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창 15:9,10)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창세기 15:9를 읽어 보면
“삼 년 된 암소, 암염소, 숫양 그리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라”고 하셨지 쪼개라는 명령은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셨다.

(창 15:13,14,17)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런데 10절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과 13절 “이방에서 자손이 객이 되는 것“ 을 직접 연결하는 것은 일단은 논리의 비약이다.

그런 말대로라면, 잘못은 아브라함이 했는데 …
아들 이삭 – 손자 야곱 – 증손자들인 야곱의 12형제 가족이 애굽에 내려가 징계를 받았다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논리의 모순이 아닌가?

14절에서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라는 말씀은 축복으로 보이는 데 이것은 징계를 받았다는 생각과 모순이 아닌가?

성경의 앞뒤를 읽어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 객이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인 것을 알 수있다.
그것을 개인의 죄와 징계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며 논리상으로 많은 무리가 있다,

또, 맹세의 희생 제물을 반으로 쪼개는 것 당시의 언약을 맺는 경우의 관습이어서 그 관습대로 반으로 쪼개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은 없었다.)
예레미야 34:18-20을 읽으면 그렇다.
(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은 없었어도 내포된 명령이라고 한다면
사람마다 그런 방법으로 성경의 명령을
늘이고 줄이고 뒤틀고 왜곡할 여지가 너무나 많다.
권력 있는, 말빨 좋은 사람이 우기면 하나님의 뜻이 된다.
반대한다.
)

(예레미야 34:18-20)
18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19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20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그리고 비둘기 새끼는 반으로 쪼개지 않는 것이 제사 드릴 때에 이스라엘에게 주신 명령이다.

(레위기 1:14-17)
14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15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다가 그것의 머리를 비틀어 끊고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피는 제단 곁에 흘릴 것이며
16 그것의 모이주머니와 그 더러운 것은 제거하여 제단 동쪽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17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위기 5:7,8)
7 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에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8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창 15:10)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위, 레위기를 읽고 생각해 보면 창세기 15:10의 이 구절은 아브람이 그 당시의 관례대로 “새는 쪼개지 않았다“ 즉 잘 한 일이다 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같은 내용을 편견을 가지고 보면 무죄를 죄라고 오해하여 판단할 수 있다.
새를 쪼개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아브람이 비둘기를 쪼개지 않아서 (그 벌로) 그의 자손이 40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한 것이라고 말을 할까?
교회에서 믿음 좋다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종종 본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가정)은 이렇다.

과거 언제인가
어느 유명한 설교자(교부 혹은 목사)가 아브람이 새를 쪼개지 않아서 후손이 애굽 종살이를 했다고 설교(주장)했다.
그 설교가 멋있어 보여서 다른 설교자(교부 혹은 목사)와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그 말을 옮겼다.
그런 말을 하는 설교자, 목사를 포함한 모두 다 성경 앞뒤를 읽어보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 주장을 하신 분들이 너무 유명하셔서 “그 분 말씀이 당연히 맞는 하나님 말씀이겠지…”라고 믿고
성경은 감히 찾아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눈으로 읽는 성경 말씀 보다 설교자의 말을 우선시 한 것이다.
(
이거 순 나의 상상이다.
)

그러나 그런 태도는 옳지 못하다.
성경의 직접적인 기록 보다 설교자, 교단의 교리가 앞서서는 안 된다.
교인들이 성경을 주의해서 읽지 않고 사람의 그럴 듯한 말만 받아 들여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과거 아브라함의 자손이 벌 받아 애굽 종살이를 했건 말건 나에게 상관 있으랴 마는
사람의 틀린 주장을 이렇게 성경의 교훈으로 매사에 받아들이고 사는 것은 성경을 삶의 기준으로 살려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심코 알고 있는 교훈에는 (교리 포함) 이 같이 성경의 뜻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성경을 따라 살려는 그리스도인은 주의해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문맥을 따라 읽어야하는 이유이다.
성경의 문맥에 집중해야 한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뢰아 교인들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사도행전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
비슷한 이야기로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쳐서 그 벌로 가나안에 가지 못했다는 말도 있다.
Link를 Click.

반석을 두 번 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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