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장 5절의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를 생각한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 로 시작하여
(5절)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 라고 한다.

무례히 행지 아니하며 ?

사랑으로 무례히 행동한다는 것은 무슨 뜻 일까?
이런 경우가 많이 있으니 이 구절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으니까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서 내 모든 것을 받아주니까
그에게 무례히 행동해도 내게는 위험이 없다고 믿으니까
내 감정의 절제 없이 말과 행동 함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사랑하니까 무례해도 좋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우리말에는 “흉 허물이 없는 사이” 라는 말이 있다,
아주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말은 서로 매우 가까우니까, 사랑하니까
흉, 허물도 다 이해해 준다는 말이다.
(내가 상대방을 그렇게 이해해 준다는 말)
그것을 내가 상대에게 무례한 말이나 행동을 해도 된다는 말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전인수 자기 편한 대로 하는 억지 생각이다.

아주 가까운 사이에 무례하게 대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예 1)
내가 어렸을 때에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부를 때 “XX 새끼야“ 라고 욕으로 불렀던 것을 기억한다.
옛날 못살고 무식하게 살았던 때여서 그랬을까?
무례했다.
그런데 오히려 예의를 갖추어 말하면 멀리 느껴지기도 했다.
하긴 그 시절, 말끝 마다 상스러운 욕을 섞어서 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왜 그랬을까?
내 생각에는 아마도 같은 학교 같은 반에 있는 동안, 그리고 서로 가까운 사이에는
서로 무례하게 대해도 서로의 관계가 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에 상대가 내게 무례하게 행동했고
나는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했고
나도 그렇게 행동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반 한 학교에 있는 동안은 좋든 싫든 매일 얼굴을 보고 지내야 할 사이가 아닌가?
그러니 마구 대하기도 하고 그런 대접을 참기도 하며 지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상황은 사랑 보다는 선택의 여지없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이에서 생긴 일이겠지만
사랑이라는 개념까지 확장해도 무리가 없다고 본다.

(예 2)
옛날이나 지금이나 집(가정)에서 아이들이 부모에게
떼쓰고, 징징거리고, 심술부리고, 버릇없이 굴고 …
등등의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을 본다.
(
내 경험만 그런가?
다른 많은 가정은 안 그런가?
내가 우리 아이들을 잘못 교육해서 그런 것일까?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다.
)
그런데 그 아이가 학교에 가서는 조용히 얌전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이 있다.
밖에서는 찍 소리도 못하고 지내다 집에 돌아 와서 부모 형제에게는 버릇 없이 굴고 짜증을 낸다.
무례하다.
왜 그럴까?
아마도 부모, 엄마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받아 주고, 참아주고
나에 대한 사랑이 변치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서 그런 것일까?
“부모가 나를 어쩌랴” 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은 부모에 대한 사랑이 아니다.
부모를 향한 매우 무례한 행동이다.

(예 3)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 중에 밖에서 회사에서는 죽은 듯 지내다가
집에만 돌아오면 폭군이 되는 남편의 이야기가 많이 있었다.
생활 주변에도 소설 속에도 …
집안 아내와 자식 등 식구들은 내게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무의식 중에 알아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었을까?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바뀐 요즘은 그 반대가 되어서 아내가 남편에게 마구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현실에서나 드라마 에서나.
나를 사랑하면 네가 참고 당연히 받아주어라 하는 격이다.
이런 것도 물론 사랑이 될 수 없다.
사랑을 빙자한 지독한 이기심의 발로 일 뿐이다.

(예 4)
내가 직장 생활을 한 4-50년 전에는 상사는 아랫 직원을 인격적으로 모독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급 직원이 내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고 여겨서 제 성질을 부리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신입 직원도 마음대로 꾸짖지도 못한 다던데.
기분이 나쁘면 회사를 그만 둔다고 하니 말이다.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상대라고 여겨서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잘 못이다.

(예 5)
기독교계에서도
이단이거나, 이단이 아니어도 그런 경항이 있거나, 지도자의 권위가 강하게 행사되는 곳에서
지도력의 발휘가 구성원의 삶에 무례하고 강력하게 행사 되는 것을 많이 본다.
그 때 해당 구성원은 오랜 동안 정신적 육체적인 타격을 받는다.
타격을 받았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타격을 받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정신적 육체적 타격을 주고받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분이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도 지도자, 조직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구성원은 심하게 다루지 않는다.
교묘하고 야비하다.
그래도 말로는 사랑을 강조한다.
혹은 하나님의 뜻을 대행한다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무례히 행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예를 그만 열거한다.

사랑한다고, 상대를 믿는다고 하며 상대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면
그 상대는 마음속에 깊은 고통과 타격을 받게 된다.

대인관계에서, 사랑의 이름으로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한다.

인간의 심성은 아주 많은 경우 야비하다.
상대가 강하거나 내게 해를 끼칠 능력이 있다고 느끼면
본능적으로 조심하고 거리를 둔다.
어쩔 수 없이 가까워지면 예의를 차리고 조심한다.
비록 사랑하지 않아도 결코 무례히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가 내게 위해를 전혀 끼칠 수 없다고 느끼면
자녀가 부모에게 느끼는 심정도 그렇다
(부모가 나를 사랑해서 내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무례한 언행이 나오기가 매우 쉽다.

사랑한다고 하는 상대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린도전서 13:4의 사랑이 온유하다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여 자기의 능력을 절제하여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례히 행치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이 없이 무례히 행치 않는 경우가 아주 많지만
사랑한다 하면서 무례히 행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사랑, 참 어려운 단어이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나한다는 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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