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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시편 94:18-19]18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19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낀 때에나의 마음에 와 닿은 말씀 나는 어렸을 때에 몸이 참 약했다.몸의 균형을 못 잡고 자주 넘어졌다.겨울 날 누님과 밖에 나가면 땅은 얼어 있고 자주 넘어졌다.얼음 위에서 몸의 균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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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科學)과 신학(神學) Science and Theology (2)

내 신앙의 공리(公理 axiom)라고 하면 …하나님은 …(1) 살아계시다(2) 절대 선(善)이시다(3) 성경을 통해 인간의 언어로 내게 말씀 하신다(4) 나의 이성과 논리는 내가 의존할 수 있는 최후 수단이나 결코 완벽 하지 못하다.(공리라고 하면내가 진리임을 증명할 수는 없으나 진리로 받아 드리면다른 것의 설명이 쉽고 실제로 유익하다. 이미 말했음) (1)을 부정하면 무신론(無神論), 공산주의공산주의의 역사 실험은 비극적 실패로 끝났다. (2)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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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科學)과 신학(神學) Science and Theology (1)

과학은 현상의 관찰을 통해 공통점을 찾아내고그것을 논리적으로 체계화(이론화)하고 검증하여 원리를 정립한다.객관적, 무의 상태에서 출발한다.사람의 관찰과 이성적 논리 사고에 의존한다.그리고 그 원리를 근거로 다음의 원리를 정립한다. 기독교 신앙은 과학적인 방법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몇 가지 강한 믿음(가정)에서 출발한다.예를 들면 하나님은…(1) 살아계시다(2) 절대 선(善)이시다(3) 성경의 인간 언어로 그 뜻을 전 하신다.등 이다. [히 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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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烏瞰圖) (3)

나 ?당하고 한참 뒤에 깨닫는 나는 참 어리석다. 이번은 괜찮겠지 하고 또 당하니 더욱 한심하다.정치, 사회,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황 판단 정말로 못한다.쉬운 말로 감이 떨어진다, 눈치가 없다 하는데…(나는 오감도 장님 아이니까) 이런 한심한 내가 경험으로 믿는 것이 있다6.25 동란 (어린 때 부모님이 고생),4.19 혁명 (1960 초등 4년),5.16 구테타 (1961 초등 5년),1.24 군부대 사태 (1968 고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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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烏瞰圖) (2)

불길한 숫자 13.13명의 아이들이 눈 가리고 골목을 질주한다.길이 뚫렸거나 막혔거나 막다른 골목이나 마찬가지다.불안, 초조, 공포, 시간도 촉박하다.숫자는 13이건 1,300 이건 130,00이건 그 이상이건 상관없다. 그냥 많고 불길한 수이다. 이상이 88년 전 24세의 나이에 본 현실인데.오늘의 현실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첫째 아이가 인도자(선동자)이고 다음 아이가 추종자(바람잡이).모두다 장님. 그런데 모두 함께 뛴다. 첫째는 다른 아이들을 속이는 사기꾼 야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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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烏瞰圖) (1)

오감도(烏瞰圖)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제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제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제4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제5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제6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제7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제8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제9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제10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제11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제1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제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13인의 아해는무서운 아해와 무서워 하는아해와그렇게 뿐이 모였소.(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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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때 감동이 없었어도 (6) 믿고 싶어도 안 믿어져…

(6)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믿고 싶어도 안 믿어져…) 예수님을 믿고 난 후…전도하고(주로 학교에서), 성경 공부 인도를 하면서종종 만나는 질문은 이것 이었다.이 질문은 반대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한편으로는 예수님을 믿기 원하나다른 한편으로는 뭔가가 이상해서믿지 못해 답답해서 하는 진지한 질문이었다.나는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었지만타당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했다. 성경을 읽다가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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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때 감동이 없었어도 (5) 언제 구원 받았을까?

언제 구원 받았을까? 사람 혼동시키는 짓궂고 얄궂은 질문 이다.그러나 이런 질문, 이런 짓궂은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평소에 당연히 여겼던 사실이나 상황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하여 정리하게 해주는 좋은 역할을 한다. 내 대답은…“중요한 것 아니니 신경 쓰지 말자“이다. 그런데 권위 있는 신학자가 이 말을 했다면 “아 그런가 ”하고 논쟁이 끝나는데나 같은 사람이 이 말을 하면 “네가 뭔데 건방지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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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때 감동이 없었어도 (4) 회개. 왜 그게 인상 깊을까?

믿을 때 감동이 없었어도 (4) 회개. 왜 그게 인상 깊을까? “그러면 죄를 (낱낱이) 회개하고 구원 받는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우리의 정서에 자리를 잡았을까? 성경에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이 엄연히 있다. 그래서 일까?성경을 한번 살펴보았다. (일단 신약에서…) [마태복음 3:2]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4:17]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27:25]백성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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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없었어도 (3) 쓰린 추억-심각한 죄의 회개

믿을 때 감동이 없었어도 (3) 쓰린 추억 – 심각한 죄의 회개 “심각한 죄의 통회”에 대하여 나는 쓰라린 추억이 있다.어떤 친구(?)를 만났는데, 나에게 “예수님을 영접 했나” 물어서 “Yes”했더니,이리 저리 꼬치꼬치 묻다가”눈물을 흘리며 심각하게 죄를 회개 했냐“하며그렇지 않으면 구원 받지 않은 것이니제 말대로 회개하고 예수님 영접하라는 것이었다.(아주 심각하고 집요하게)그리고 그때 좀 더 나이 많은 한사람이 더 합세해서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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