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때 감동이 없었어도 (6) 믿고 싶어도 안 믿어져…

 

(6)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믿고 싶어도 안 믿어져…)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전도하고(주로 학교에서), 성경 공부 인도를 하면서
종종 만나는 질문은 이것 이었다.
이 질문은 반대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믿기 원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가 이상해서
믿지 못해 답답해서 하는 진지한 질문이었다.
나는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었지만
타당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했다.

성경을 읽다가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주의한 구절은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라고 외친 이 아버지의 말이었다.
이 얼마나 모순 가득 찬 외침인가?

(1) 내가 믿습니다 (믿음?)
(2) 나의 믿음 없는 것 (불신)
(3) 도와 주소서 (못 믿는 그것도 도와 주세요)

내가 주의한 구절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가 아니다.
우리는 제한된 존재이기에 능력 좋아한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을 강조하는 가보다 만…

아버지가 다급한 마음에 말을 했지만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아버지는 자기가 생각해도 믿음이 없으니까,
의심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불쌍한 아들을 고치기는 다 틀렸으니까?
만약에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분이라면… 어쩌나?
그래서 절박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예수님 제가 믿지 못하는 데 이 믿지 못하는 것도 어떻게 좀 해주세요 네?“
외치지 않았겠는가?

그러데 예수님께서는 다른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아들을 고쳐주셨다.
아버지의 고백을 믿음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말이다.
마음에 일어나는 불신, 의심 까지도 주님 앞에 내어 놓고
해결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 주님께 나오느 첫 걸음이라 믿는다.

“믿고 싶어도 안 믿어져”
이런 생각이 우리의 이성과 논리의 장난, 방해이다.
이성과 논리가 믿음을 가로 막는 대표적인 예.
경험에 기초한 이성, 논리로는 주님께 나올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속 어딘 가에서는 예수님께 나오고 싶다.
두 마음이 서로 갈등하는 예이다

이 때, 외치는 거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부끄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믿어지지 않는 마음조차 예수님께 맡기고 매달리는 것,
그것은 믿음이라고 확신한다.
예수님께서 이 아버지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지 않았는가?

[마가복음 9:22-27]
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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