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의 먼지를 (성경의 문맥)


우리 주님께서 (마태복음 10:14,15)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

“너희를 영접하지도, 너희 말을 듣지도 않거든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이 말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 한번 씩 나온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는 말이다. (한두 번 정도?)

(마태복음 10:14,15)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마가복음 6: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누가복음 9: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누가복음 10:10,11)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주님께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저주하라고 하신 말씀인가?
(나도 그렇게 생각한 때가 있었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여겨진다.

나 어렸을 때, 어느 부흥회에서 강사가 이 구절을 가지고
“아!, 주의 종이 발에 먼지를 털고 떠나니까 그것 참 무섭대요?
글쎄 그 집이 폭삭…어쩌고 저쩌고”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 것은 성경 전체의 문맥을 잘 못 이해한 잘 못된 해석이며 적용이다.
옛날(5-60년전)에는 그런 식의 설교가 꽤 많았다고 생각한다.
(
그런 비슷한 설교 지금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발의 먼지”, “발의 티끌”로
인터넷 Google, Youtube를 검색해 보면 나올 것이다.
인터넷 Youtube에 떠도는 말 설교 주의 깊게 받아 들여야 한다.
나의 이 글도 인터넷에 떠돌 텐데, 참, 나도 모순이다.

이런 글을 쓰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한다고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보는 시선을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믿는 우리가 남이 하는 말 아닌, 자기의 눈으로
성경을 읽고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글을 쓴다.

내 글이 비판, 비난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이 글을 무시하기 바라며,
내 견해를 비판해도 달게 받겠다.
비판 했으니 비판 받는다 생각한다.
)

그런데,
실제로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사도행전 13:50,51)에 주님 말씀대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이 믿지 않고 핍박했을 때
“이고니온”으로 떠나가면서 발에 티끌을 떨어 버렸다고 기록 했다.

(사도행전 13:50,51)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그러면 어떻게 이해해야 옳은 것일까?
성경은 전체의 문맥을 따라 이해해야 할 것이다.(모든 글이 다 그렇다)
한 단어 한 문장 만 가지고 내 선입관을 주입하면 하면 오해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한 하나님이 쓰신 한 성경에서 (우리의 믿음이다)
이곳과 저곳에서 하시는 말씀이 서로 충돌한다면
(성경을 기록한 분들이 그것을 그대로 기록했으니)
우리는 그것을 둘 다 조화롭게, 억지나 무리가 없이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도행전 13:50,51 에서는 두 사도가 주님의 말씀대로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는 것이지 저주를 했다는 말은 없다.
복음을 전하는 의무를 다 했으니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은 없다는 뜻이다.

그들은 분명히 복음을 전했고 그 이후의 책임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발의 먼지를 떨어낸다는 말은 최선을 다했다는 선언이지 저주의 표현이 아니다.

(
내가 생각해도 나의 글은 어떤 관점에서 성경을 읽으면,
평신도가 성경이 말하는 것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다 보니
잘못된 이해를 그 반대의 예로 들게 된다.
그러면 비판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데
읽으시는 분이 이해를 해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
)

실제로 우리 말 성경을 보면 주님께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도시 사람들을 저주하신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11:20-24), (누가복음 11:42)의 화 있을찐저“ 라는 말이 그렇다.

(마태복음 11:20-24)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가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KJV)
20 Then began he to upbraid the cities wherein most of his mighty works were done, because they repented not:
21 Woe unto thee, Chorazin! woe unto thee, Bethsaida! for if the mighty works, which were done in you, had been done in Tyre and Sidon, they would have repented long ago in sackcloth and ashes.
22 But I say unto you, It shall be more tolerable for Tyre and Sidon at the day of judgment, than for you.
23 And thou, Capernaum, which art exalted unto heaven, shalt be brought down to hell: for if the mighty works, which have been done in thee, had been done in Sodom, it would have remained until this day.

(누가복음 11:42)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
(KJV)
But woe unto you, Pharisees! for ye tithe mint and rue and all manner of herbs, and pass over judgment and the love of God: these ought ye to have done, and not to leave the other undone.

Woe [명사] woes 고민, 문제, 비통, 비애

그런데 다시 더 읽어보면 저주의 말씀이라기보다는 책망의 말씀이다.
앞으로 고통, 비애, 고민 등이 있을 것이라는 책망이다.
이 말씀은 복음을 전 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을 경고한 것이지 저주가 아니다.

복과 화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서 저주가 왜 필요하시겠는가?
그냥 화를 내리시면 될 일이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고 은혜를 베푸시려고 오신 분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그 외의 많은 구절에서 축복을 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하신다.
다음의 구절들을 보면 그렇다.

(로마서 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주님께서는 고난을 받으셔도 욕하거나 위협하지 않으셨다.
(베드로전서 2:22,23)
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고 및 격려하신다.
(베드로전서 3:9,10)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베드로전서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그런데 어떻게
주님께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저주하라고 하신 말씀일 수 있겠는가?

에스겔서에서 말한 것처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전한 제자들(우리,나)에게는 그들의 사망에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최선을 다해서 전하려고 힘썼다는 뜻으로 “발의 먼지를 털라”고 하셨다고 생각한다.

(에스겔 3:17-19)
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이 내용은 신약성경 전체를 흐르는 생각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신약 전체를 읽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성경을 여러 번 많이 읽어야 한다.
성경에 대해서 쓴 책이 아니고,
성경에 애해서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고,
성경 자체를 많이 읽어야 한다.

“발의 먼지를 떨라”= “저주 한다” 라고 이해하는 것은
성경의 문맥을 무시한 오류이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주님의 복음을 확실히 전했다는 뜻이고 할 만큼 했다는 뜻이고 결과는 당신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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