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구약: 39 신약: 27)은
구약 창세기 1장부터 신약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이야기이다.
성경의 중심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볼록렌즈를 지나는 빛이 렌즈의 어느 곳을 통과하든지
모든 빛이 초점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렌즈의 법칙)
볼록렌즈를 지나가는 빛은 초점을 통과한다.
렌즈의 중심을 통과한 빛은 꺾이지 않고 똑바로 초점을 통과한다.
렌즈의 중심 가까이 통과한 빛은 조금 꺾여서 초점을 통과한다.
렌즈의 중심 멀리 통과한 빛은 많이 꺾여서 초점을 통과한다.
성경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다면
성경을 읽은 것이 아니다.
성경은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고 기록한다.
(고린도전서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
사족이지만
나는 고린도전서 2:13. 한 구절만 떼어서 말했는데,
문맥상, 신령한 것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을 이해함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으면 신령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일, 이 구절 하나만 인용하여 무슨 개인적 특별한 경험(?),
무당 입신 체험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성경 문맥을 떠나 자기가 소설처럼 만든 것을 신령하다 한다면
대단한 오류이다.
성경을 문맥을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하는 거짓된 해석이 된다.
성경 문맥에서 몇 구절만 딱 떼어내서 맘대로 말하는 것은
거짓 기사로 비난 받는 신문의 가짜 선동 기사와 같다.
문맥을 벗어나 몇 구절 떼어내 말하는 것(사람)을 주의해야 한다.
)
성경의 내용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복음서(예수님의 기록)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행하신 것을 말한다.
신약의 기록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혹은 풀어서 기술한다.
구약의 기록은 비유적, 상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 한다
예수님과 시간적으로 멀수록(구약) 비유, 상징이 많아 즉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구약에서 이해가 어려운 비유는 주의해서 예수님을 넣어 생각하면 꽤 많이 알 수 있다.
(
성경을 전체적으로 통독할 필요가 있다.
국어 독해력이 떨어지는 내 경우에는
아주 많이 읽을 필요가 있었다.
한두 번 읽어서는 좀 어려웠다.
물론 한두 번만 읽고도 이해하는 뛰어난 분 있을 것이다.
)
성경에는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쓴 것도 있다.
그런 것만 주의 하면
모든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증거하고 있다.
어떤 것은 좀 빙빙 돌아서 어떤 것은 직접적으로…
구약에서 이해가 어려운 곳에 “예수님”으로 넣어 생각하면 참 많이 이해된다.
물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의 성경 구절들은 구약이 예수님을 설명한다고 하는 말씀이다.
*** 예수님 자신의 주장이다 ***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누가복음 24: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KJV)V)
And beginning at Moses and all the prophets, he expounded unto them in all the scriptures the things concerning himself.
(누가복음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예수님은 성경(구약)이 예수님에 대하여 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성경, 모세의 율법, 선지자의 글, 시편 이 다 예수님을 가리켜 기록된 것이라 하셨다.
구약에 나타난 많은 것들은 상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다.
(
나는 이런 것을 상징적 표현(Symbolic presentation)이라 말하고 싶다.
이런 말이 신학에 있는지는 모른다.
나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이 Symbolic presentation은 Allegorical Interpretation과 비슷하나 미묘한 차이가 있다.
Symbolic presentation은 거의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로 대치하면 그 해석이 딱 맞아 떨어진다.
Symbolic presentation이라는 말은 요즘은 설명하기 쉽다.
Smart phone, Computer, K-Pop 등이 대중화 되면서 icon 이라는 말이 통용되기 때문이다.
이 Smart phone의 icon이 바로 Symbol이다.
Smart phone의 카메라 icon을 누르면 Smart phone이 카메라로 바뀌는 것과 같다.
성경의 해당 Symbol을 주의 깊게 성경의 다른 부분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Symbol 요즘 말로는 icon이 된다.
Allegorical Interpretation은 해석자의 자유로운 상상과 주장이 중요하다.
그래서 위험하다.
)
성경이 예수님을 이야기 한다는 것의 몇 가지 만 예를 들어본다.
*** 흔히 아는 예 ***
(
이것은 Allegorical Interpret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상징적 표현(Symbolic presentation)이라 하고 싶다.
신학에 이런 용어가 있는지는 모른다.
)
(1) 창세기의 여자의 후손과 뱀의 머리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여자의 후손 =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
히브리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뱀(사탄)를 없이 하셨다고 기록한다.
(히브리서 2:14,15)
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2) 아담의 가죽 옷 =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상징
(창세기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곧 시들게 될 무화과나무 잎으로서는 벗은 몸을 가릴 수가 없었다.
아담과 하와의 벗은 몸을 가릴 가죽 옷을 위하여 짐승을 피 흘려 죽여야만 했다.
그 짐승은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어린 양이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의 죄에 대한 희생의 상징이다.
그리고
아담은 예수그리스도의 반대(역:逆) 상징이다
(로마서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3) 노아의 방주: 창세기 7장
방주에 들어간 사람은 살았고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
요점은 방주에 들어갔느냐 아니냐의 차이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아니냐가 영생과 멸망의 차이를 가져온다.
*** 구약 예언의 그리스도에 의한 성취 ***
(1) 가롯 유다에 대한 예언
(시 109:8)
그 년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
예언의 성취
(사도행전 1: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예언의 성취
(히브리서 1: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3)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시 118:22,23)
2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예언의 성취
(마태복음 21: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시 118:25,26)
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26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예언의 성취
(마태복음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아람어 ‘호산나’(hosan-na)의 음역으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시편 118:25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구원을 간구하는 짧은 기도였다.
초막절 의식에서 제단에 물을 부을 때 레위인들은 시편 118편을 찬양했으며
제사장들이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옵소서”를 외쳤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했는데(마 21:9)
이는 메시아를 대망하던 백성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 외에 많은 예가 있는 데 성경을 읽으며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 구세주의 사랑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TpxykgGMvE0